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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May 04. 2024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꽁당 보리 축제

 내가 살고 있는 군산은 매년 오월 이 오면 꽁당 보리 축제를 한다. 배고픈 시절, 보리밥을 먹고 살아왔던 우리 세대는 꽁당 보리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 한편이 시큰해온다. 보리밥은 가난의 상징이기도 했다. 보리밥 속에  쌀밥은 어른들 몫이라서  나는  그때 얼마나 쌀밥이 먹고 싶었는지.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갈 때쯤 어쩌다 시골 큰댁에 가면 동네 애들이 보리밭 둔덕에 모여 나뭇가지를 모아 보리를 꺾어 구워 먹었다. 구운 보리는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그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 겉이 까맣게 구운 보리를 먹으면 입술도 까맣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서로 놀리고  웃고 떠들던 기억이 새롭다. 가난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행복했던 시절, 뒤 돌아보니 추억이다. 


 배고픈 시절의 상징이었던  보리,  보릿대로  불렀던 보리피리 소리는 그때만 들었던 또 하나의 낭만이었다. 모든 것이 자연과 함께 했던 날들이다.


지난가을에  추수했던  쌀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떨어진다. 그때 배고픈 시절을 보릿고개라고 했다. 아버지는 가족들 배고플 생각에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보리가 익어 가는  보리밭은  아버지에게  위안이었을 것이다. 지금에야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니 뒤늦게야 철이 든 것 같다. 배고픔에 서러웠던 시절, 보리는 우리의 희망이었다.


지금은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시대, 보리로 빵을 만들고 옛 추억을 되새기려 보리 밥집을 찾는 분들도 있다.  보리로 만든 음식이 건강식이라고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 그 꽁당 보리가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고 인기가 많아졌으니 세월 참 격세지감을 느낀다.


어제는 바람도 살랑거리고 햇살도 보송보송 한날이었다. 우리 시 낭송 회원들은 미면 보리밭으로 달려갔다.  푸르름이 가득한  보리밭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마음이 시원하다.  시낭송모임에서는  지난해부터 꽁당보리 축제 행사에 참석을 하여 시극을 하고 시 낭송을 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날이다. 무대에서 공연은 실제로 연습 때 보다도 맛깔나게 하고 있다.



점심 후 시 낭송 회원들 무대에 올라 진성가수의 보릿고개 노래에 맞추어 춤도 추고, 시극도 하고, 시 낭송도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어쩌다 시가 좋아 시낭송 모임에 발을 들여놓고 나는 별별일을 다 하고 살고 있다. 이러다 연극배우라도 되는 건 아닌지, 나이 80에 웃을 일이다.


정적인 다도 생활을 하고 글을 쓰면서 나는 또 다른 삶의 한 면에 물들어 가고 있다. 누가 인생은 연극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 또한 할 수 있어 감사한 일이라고, 산다는 건 참 모르는 일 투성이라고 나는 혼자서 자위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고 주어진 삶에 마음을 다하고 싶다. 어느 날 싫으면 말고, 누가 뭐라 할 건가. 내 삶인데.


                            시극 공연을 끝내고 시 낭송 회원들은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긴다

축제가 열리는 미성동 보리밭                                        고향 어르신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김성환 탤런트


김성환 탤런트의 고향이 이곳 군산 미성동이다.


어제 행사는 재주꾼 김성환 텔렌트가 와서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노래도 8곡이나 불러 고향 어르신들에게 축제의 흥겨움을 더해 주었다. 그런 연유에서 고향 찾은 김성환 탤런트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구수한 말솜씨와 언제 들어도 편하고 흥겨운 노래들은 고향 어르신에게 기쁨과 위로다. 특히 진성 가수의 보릿고개노래를 들을 때면 마음이 울컥해 온다. 예전 힘들었던 날들이 회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과 동생도 구경 나와 함께 추억을 만든다. 나는 보리밭 사잇길을 걸으며 보리밭 노래를 혼자서 흥얼거려 본다. 계절 여왕이라는 오월, 이 찬란한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누가 만들어 주지 않아도 내 삶의 주인공 나 인 것처럼 날마다 축제를 한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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