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 오면서 매일 산책길 만나는 나뭇잎들은 푸르름이 더해 초록 세상이다. 말 그대로 초록초록한 모습으로 변한다. 새로 나온 나뭇잎은 하루가 다르게 초록 색이 더해지고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초록으로 물들고 싶다. 오월, 계절의 여왕이란 말답게 산과 들은 온통 초록 세상이다. 초록은 희망과 평화를 의미하듯 눈길이 머무는 풍경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나뭇잎의 초록만이 5월의 주인은 아니다. 간혹 가다 숲 속에 피어 있는 꽃들도 나를 반긴다. 또는 산속 어느 나뭇가지에 앉아 우는 산비 들기의 구슬픈 울움소리도 5월 숲의 운치를 더해 준다. 마치 내가 선경의 세계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겨울 동안 나목으로 서있던 나뭇가지에 저토록 예쁜 나뭇잎과 꽃들이 피어나는지 그 신비함에 놀랄 뿐이다. 어쩌면 자연의 이치는 그토록 오묘할까.
삼라만상 자연의 변화를 보고 있으려면 신비 자체다. 예전에는 모든 것이 당연한 듯 생각했지만 나이 들어 바라보는 세상은 살아온 연륜만큼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모든 사물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아마도 세상 속 욕심을 내려놓은 뒤 마음이 한가롭고 사유의 뜰이 넓어진 탓일 것이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별스럽지 않은 작은 일조차 궁금하면서 생각의 꼬리가 길어진다.
공원 숲을 찾는 일은 산책을 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5월의 초록에 물들고 싶어 산책을 하는 건지 내 마음도 알 길이 없다. 걷다가 숨이 찰 때쯤 빈 의자에 앉아 쉬고 있으려면 무념무상의 된다. 눈에 보이는 풍경마다 모두가 감사할 뿐이다. 아름다운 봄날이 축제 같다. 마음이 한껏 부풀어 하늘을 오르는 풍선처럼.
자연의 색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사람이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다. 5월은 초록의 물결로 넘실거리고 세월은 달음질치듯 빨리도 달려가고 있다. 나이 들면 나이와 같은 속도로 세월이 흐른다 했는데 정말 그 말에 공감한다. 눈 깜짝 사이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간다. 아쉬운 마음에 어찌할까 속절없이 애만 태운다.
사는 일은 늘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 속 산그림자가 호수의 물속에 잠겨있다. 산 그림자는 온종일 물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산 그림자도 외로워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라고 했다. 노년의 삶은 때때로 외롭다. 나이 들면 만날 사람도 줄어들고 가야 할 곳도 많지 않다. 오로지 마음의 위로를 받고 기대고 살 수 있는 것은 자연뿐이다.
누가 알랴. 때때로 밀려오는 외로움을 벗하며 살다 보면 웃는 날도 있고 담담히 하루를 보내는 날도 있을 것이다.
숲은 안식과 치유를 받을 수 있는 장소다. 명상을 하듯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도 마음을 투명하게 해 준다. 산다는 것은 언제나 반복의 연속이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상을 살고 있으며 끝도 시작도 정해져 있는 것은 우리네 삶에서 아무것도 없다. 내일 일도 모르면서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가 아닌지.
남편과 함께하는 산책길 풍경을 마음에만 담아 둔다면 언제 날아갈지 몰라 사진과 글로 기록을 한다. 먼 훗날 추억으로 남을 기록은 우리의 삶의 흔적들이다. 오늘도 하루가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