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행사가 많은 달이다. 얄궂게도 5일, 어린이날에 비가 내렸다. 마치 여름 장맛비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올해부터 우리 집은 어린이날이라고 챙겨야 할 어린이가 없어 마음은 한가 했지만 조금은 허전한 것은 피 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나이 어린 손자들은 지난해부터 중학생이 되어 이제는 청소년이 되었고 그와 비례해서 우리는 더 늙어간다.
어린이날이면 가족과 함께 할 여행과 소풍으로 들떠 있었을 어린이가 있는 집은 낭패였을 것이다.
비 오는 날, 우리 부부는 하루종일 외출도 못하고 집안에만 있어야 했다. 언제나 그러하듯 남편은 거실에서 티브이하고 놀고 나는 서재에서 글을 쓰거나 아니면 책을 읽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한가롭고 편하긴 하지만 때때로 밀려오는 허전한 마음은 숨길 수 없는 쓸쓸함이다. 참 사람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이런 때는 양광모 "시인의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어려서는 어른이 그립고 어른이 되면 젊은 날이 그립다. 여름이면 흰 눈이 그립고 겨울이면 푸른 바다가 그립다. 헤어지면 만나고 싶어 그립고 만나면 혼자 있고 싶어 그립다." 사람은 그리워야 사람이라고 양광모 시인은 말한다. 사람은 가슴속 작은 뜰에 그리움을 담는 그릇이 따로 있나 보다. 나는 살면서 왜 그렇게 그리운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
자식들은 자기 자식을 그리워하겠지만 나는 딸들, 사위들, 손자들이 그립고 또 그립다. 부모 자식과의 관계는 서로 돌고 도는 그리움의 관계라는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들었다. 나는 내 자식들이 그립고 자식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그리울 것이다.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그리움의 대상이며 아니 무생물의 존재까지도 모두가 그리움의 관계다.
"돈도 그립고 사랑도 그립고 어머니도 그립고 아들도 그립고 네가 그립고 또 내가 그리운 것" 모든 것이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립다고 늘 그리움에 젖어 있을 수만 없다. 마음 안에 고이 숨겨놓은 보석처럼 간직하고 사는 것이다. 그 그리움의 끝은 세상과의 이별뒤에나 끝이 날 것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정호승의 시를 읽고 나는 내 마음을 다독이는 날이 많았다.
남편과 나는 딸만 셋 낳고 이제 아이는 그만 낳자고 다짐했지만 시어머니의 강요에 어쩔 수 없어 나이 들어 뒤늦게 낳은 막내딸, 유난히 애틋하고 마음이 쓰인다. 어제는 말도 없이 막내딸과 사위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언제나 그러하듯 미리 말도 하지 않고 군산집에 도착하고야 왔다는 보고를 한다. 늘 빠쁘고 힘드니까 내려오지 말라는 남편의 말은 듣지 않기 위해서다. 오지 말라고 말은 하지만 막상 오면 반가워하신다. 일 년에 두세 번 부모를 챙기는 일이 그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다.
군산 월명동에 있는 카페의 이곳저곳이 정감이 있어 사진을 찍었다
내일 모래면 어버이날, 자식들은 부모와 만남을 갖는다.
그리웠던 사람들은 만나면 반갑고 기쁜 일이다. 같이 점심을 먹고 바닷가 해산물 시장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월명동 젊은이들만 가는 카페에 가서 차도 마시고 함께 걸으며 여행하듯 시간을 보냈다. 둘만 있으면 꼼짝도 하지 않고 다니지 않은 거리를 자식들과 놀이는 즐겁다.
어린이들이 없고 나이 든 우리 부부가 어린이처럼 대접을 받는다.
휴일이라서 차가 막힐 것 같아 금방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서 마음 안에 다시 그리움의 보따리를 안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