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더욱이 팔십이 넘은 나이인 사람에게는 병과 가까이 있음은 당연하다. 아마도, 병들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난 7월 20일, 국가에서 시행하는 건강 검진을 했다.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검진 후 아무 일 없겠지 하고 안심하고 있을 때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한번 내원하라는, 병원 내원 후 의사 선생님 말씀이 위에 선종이 있으니 소견서 가지고 큰 병원을 가보라는 의사 말씀이다.
그 말을 듣고 놀라기는 했지만 어쩌랴 사람은 언제 어떤 상황이 찾아올지모르는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데 나라고 예외 일수는 없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암과도 친구하고 사는데 이 나이까지 무탈하게 살아온 것도 감사하지 않는가,놀란 가슴을 담담히 진정시킨다.
다음 날 소견서와 위 내시경 CD를 가지고 익산에 있는 대학 병원 소화
기 내과를 찾아갔더니 진료 후 수술이 밀려 10월 27일이 되어야 시술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 안에는 환자가 밀려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대답이다. 도리 없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일상적인 생활은 하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신경이 쓰였다.
기다리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은 온다
드디어 10월 27일 입원 준비를 해 가지고 병원을 찾아가서 입원을 하고 평소에 먹던 약을 가져오라고 해서 간호사 실에 전해 주었는데 그 약안에 먹으면 안 되는 약을 복용했다고 시술을 못한다고 말한다. 병원 측에서도 그 말을 해 주지 않아서 나도 몰랐다. 수술할 때는 다 아는 사실이라고 알고 있던 거다. 이게 무슨 벼락이람. 다시 예약을 해서 시술을 해야 한다고 하니 난감했다. 화를 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다시 예약을 해서 시술해야 하는 날은 12월 29일뿐이라고 하니, 더 위급한 환자도 기다린다고 나를 보고 더 말을 못 하게 간호사가 말한다. 어떻게 두 달을 기다리란 말인가, 의료대란의 심각성이 이런 거 구나, 위급한 환자들은 어찌하란 말인가.
고심 끝에 서울에 있는 딸들에게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둘째 딸의 민첩함으로 서울 고덕동 에 있는 대학병원에 12월 4일 시술을 예약하고 군산으로 내려왔다. 김장하고 마무리해야 할 집안일을 마친 뒤 예약 된 날 다시 서울에 올라갔다. 딸 셋은 저희들끼리 하루씩 당번을 정하고 엄마를 찾아올 거라고 엄마 염려 말라 안심을 시킨다.
정해진 날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서울 병원에 입원을 하기 위해 가방에 입원할 짐을 챙겨 서울로 향했다. 남편이 걱정되지만 집에 계시는 편이 나을 듯하여 혼자서 올라가야 했다. 막내딸이 버스 터미널로 마중 나와 점심을 먹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입원 절차는 곁에서 막내딸이 알아서 처리해 주니 든든하다.
요즈음 병원 입원 할 때면 코로나 유행 때처럼 보호자가 환자 간호를 못해 준다는 병원의 규칙이라서 간호 병동에 입원을 해야 했다.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면 된다고 말한다. 환자와 가족들은 병실 밖 휴게실에서 잠시 면회를 하는 형식이다. 오히려 보호자들도 번거롭지 않아 잘 된 일이다. 하루 종일 잠자리도 불편한데 곁에 있는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여행 온 사람처럼 케리어를 끌고 병실로 들어가 환자 복으로 갈아입으니 완전 환자가 되었었다. 막내딸을 지하로 내려가 편의점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용품을 사 준후 떠났다. 쓸쓸⁸해도 혼자서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다. 나는 혼자 보낼 시간들을 위하여 한강 소설 '채식자' 책과 어반 스캣치 노트와 휴대폰이 있으면 심심해할 시간이 없다.
잠시 쉼을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주사를 꽂기 시작하고 주렁주렁 줄을 매달고 시간을 견디고 있다. 입원 첫날은 이것저것 검사만 하고 있어 딱히 불편한 곳은 없었다. 입원실 2평 정도 작은 공간이 완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다. 누구에게 신경 쓸 일도 없고 집안일, 밥 해야 할 일 모든 것을 잊고 편하고 조용하고 좋다. 책을 읽다가 그림 스케치를 하다가 시간을 보낸다. 커튼을 친 나의 공간은 나름 아늑하다.
입원해 있던 병실
갑자기 든 생각은 사람이 사는데 과연 얼마만의 공간이 필요할까? 밥 해 먹고 샤워하는 공간 빼고는 그 공간에서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살면서 욕심 때문에 힘든다. 많은 것이 왜 필요할까? 아마도 세상을 살 만큼 산 사람의 생각일 것이다. 적은 것에 마음을 두고 살면 아마 홀가분할 것이다.
티브이가 없는 병실은 모두가 커튼을 닫아 놓고 조용하고 간호원이 드나드는 소리만 들린다.
4일 밤부터 금식이다. 다음 날 시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주사를 맞으니 견딜 만 하지만 물을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참아야 한다. 살아 내야 하는 일은 견뎌내야 하는 일이 참 많다. 오후에야 시술에 들어갔다. 입에 무얼 넣고 먹고 그 뒤는 모른다. 얼마 후 깨어 나니 시술이 끝났다고 하는데 위가 쓰리고 정신은 혼미하고 어지럽다. 간호원은 자꾸 잠들지 말라고 야단을 치는데 나는 아프다. 어떻게 눈을 뜨고 있으란 말인가.
3일 금식 후 처음 먹는 환자식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마 2시간이 넘어간 듯하다. 조금씩 아픈 강도가 약해진다. 사람이 얼마나 아파야 죽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프다는 것은 힘듦을 견뎌 내야 하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일은 참 엄숙한 일이다. 딸들을 걱정되어 전화가 오고 면회를 오고, 이러기 싫었는데 내가 자식들을 힘들게 하고 있지 않는지.
시술 후 이틀을 견디고 퇴원을 했다. 둘째 딸과 사위가 와서 퇴원시키고 분당에 있는 셋째 딸과 사위에게 나를 넘겨주고 서울로 돌아가고 셋째 딸과 사위는 나를 태우고 군산 집으로 행했다. 딸들의 릴레이 방식이다. 다른 때와 달리 오늘은 서울 군산이 멀기만 하다. 이 많은 거리를 왔다 갔다 했을 사위에게 고생한다는 말을 하니 자기는 행복하기만 하다는 말에 고맙다.
시술이 잘 끝났다고 하니 시원하지만 아직 안심은 안된다. 며칠 후면 다시 조직 검사를 하고 계속 지켜보아야 한다 말한다. 잘 될 거라 믿는다. 집에서 기다리는 남편과 가족들의 배려로 어렵고 힘든 시간을 잘 견디련다. 나이 듦이란 많은 걸 내려놓고 포기해야 하는 때가 오는 것 같다. 아픔도 슬픔도 견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