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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별

3년가 쉬었던 모임, 만나고 또 우리는 이별을 한다

by 이숙자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럽지만 않다고 나는 말해 왔었다. 그런데 이번 주말 천안에서 오래된 모임을 다녀온 후 생각이 달라졌다. 나이 듦으로 찾아온 병마를 견뎌 내고 인내해야 하는 현실 앞에 슬픔이 차 오른다. 나이 앞에 찾아온 변화, 어쩔 도리가 없이 속수무책이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진리다.



고등학교를 나와 사회에서 만난 선 후배들, 모임 시작한 지는 20년이 가까워 온다. 그 사이에 벌써 세상 떠나신 분도 계시고 한 사람 두 사람 아프기 시작하면서 모이지 못한 지 3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모이는 분들은 전주, 남원 , 군산, 수원, 서울등 각지 먼 곳에서 모여야 하는 상황이라서 모이기가 더 어려웠다.


지금은 혼자서 대중교통 이용도 어렵다. 누군가 보호자가 있어야 같이 움직일 수 있다. 이렇게 세월 가고 나면 어느 날, 누가 세상을 뜰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지만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은 늘 마음 한편을 시리게 했다.


9월이 다 지나갈 즈음, 서울에 살고 있는 천안 집주인 친구는 내게 숙제를 주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모임. "숙자야 네가 서둘러 모두 모이도록 주선을 좀 하렴."


그 말에 나는 거절을 할 수가 없어 알았다고 대답은 해 놓고 머리가 복잡해 온다. 가을이라서 참여해야 할 행사도 많고 10월은 쉽사리 빈 날이 드물었다. 하지만 친구가 내 준 숙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실행을 해야 했다. 가까스로 지난 토요일, 일요일 시간을 비워 모두 천안으로 모이라고 연락을 하고 나도 주말을 이용해 천안행 버스를 탔다.


여러 각 지역에서 모이는 사람들은 9명, 이제는 몸이 아프고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팔십을 훨씬 넘겨 구십이 가까운 나이들이다. 82세인 나와 친구 2 사람만 빼고 나머지는 거의 85- 88세, 정말 혼자서는 외출이 힘든 사람들, 다행히 누워 있지 않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만 정신은 말짱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연락을 하면서도 이런 분들이 모인다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의문이 들었다. 모이는 행선지와 일정을 매번 체크해야 했다. 다행히 멀리 살고 있는 분들은 아들들이 태워다 주고 한 분은 남편이 운전해 주시고 나는 천안행 버스를 타고 천안 터미널에서 두 사람과 만난 후 택시를 타고 소정리 시골로 들어가야 했다.


천안 소정리에 도착하니 세분 언니들이 도착해 계셨다. 우리는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 반가웠다. 3년 만에 만남, 예전과는 너무 달라진 모습, 조금 후에 인천에서 택시를 타고 또 한분이 도착하셨는데 네 분이 모두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걸음도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세상에 만나지 못한 3년 사이 사람이 이처럼 변하다니 나는 마음이 울컥해 눈물이 나오려 했다. 멋지고 고왔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에 주름도 많아 예전 활기 있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몇 년 사이 정말 노인이 되었다. 참 세월이 무심하다는 말에 실감한다. 날마다 바라보는 내 모습이 달라진 건 보이질 않았나 보다. 나도 늙었는데.


우리가 모인 세월이 20년쯤 된다. 그때는 일 년에 봄가을 두 번씩 모여 봄에는 쑥을 캐서 쑥으로 국도 끓이고 나물을 캐서 봄나물로 비빔밥도 해 먹고 민들레를 캐서 커다란 대야에 김치를 담가 나누어 가지고 집으로 가져가던 추억들, 가을에는 산아래 밤나무에서 밤을 주워 구워 먹으며 밤새 이야기 꽃을 피웠던 추억들, 어찌 그날들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인생 스토리가 많다는 것과 맞닿는다. 우리는 그렇게 한세월 추억을 쌓아오며 세월을 역어가며 그리움을 마음 안에 저장해 왔다. 그러나 무심한 세월을 어떻게 이기랴 나이 들고 세상 뜨신 분도 계시고 지금은 몸이 아픈 분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모이는 횟수가 줄었다.



여러 지역에서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이유는 친구가 시골에 집을 가지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 친구는 천안 소정리에 전원주택을 지어 놓고 아무도 살지 않지만 가끔이면 지인들이 와서 쉬도록 해 주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고로 우리는 젊어 20대 팔팔했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자매들은 몇 년을 모여서 회포를 풀고 삶의 활력을 얻곤 했다.


우리 젊었던 세대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런 만큼 아픔과 또 순수했던 추억이 많은 사람들이다. 지금도 모이면 나이와 무관하게 그 옛날 추억들을 꺼내여 청춘시절로 돌아간다. 유난히 말 잘하는 이야기 꾼이 있어 지루할 시간이 없다. 그 언니의 이야기는 날밤을 세울 정도로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만큼 살아온 스토리가 많고 할 말도 많았다.


그 시절 이야기를 누구와 나누겠는가, 추억을 공유했던 사람과 만남으로 길고 긴 이야기를 소설 쓰듯 풀어놓는다. 걸을 수 있는 사람 몇 명은 언제 다시 올 줄 모르는 친구 집 둘레 길을 걷는다. 쑥을 캐던 언덕에는 가을 국화가 소담히 피어있다. 많은 세월 추억이 쌓인 선운정을 돌아보며 마음이 아릿해 온다. 집뒤 켠 벚나무잎이 떨어져 쌓여있는 낙엽조차 쓸쓸하고 아프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우리는 다음 날 아침을 먹고 헤어져 다시 자기들 삶의 자리로 길을 재촉해서 떠난다.

집주인 친구의 후덕한 용돈 봉투까지, 이별의 순간은 슬프다. 우리 이제 살아서 만날 수 있을까?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들이 흐른다.


우리의 추억과도 이별을 한다. 어떤 형태의 이별이든 이별은 슬프고 아프다. 모두 건강하시기를 소망하며 손을 흔들고 각자의 자리로 떠나고 나는 친구와 한차를 타고 천안 터미널로 가는 길, 차 안에서 친구는 말없이 손을 잡고 놓지를 않는다. 애달프고 고마운 친구, 고맙고 감사한 친구, 친구하나가 많은 사람을 이리도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런 친구가 곁에 있음에 우린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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