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용산행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고 있다. 병원 검진이 예약되었기 때문이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위 절제 수술을 한 기간이 10개월 되었다. 지금의 내 몸 상태를 검진하기 위해 서다.
누구와 함께 할 수 없는 현실, 혼자서 가는 길이 쓸쓸하다. 사람은 원래 혼자 세상에 나와 혼자 세상을 떠난다.
혼자 남겨진다는 것,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나이 드신 남편은 나를 보호해 줄 만큼 신체적인 조건이 못된다. 혼자서도 나를 지킬 수 있도록 마음의 각오는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즈음은 자꾸 든다. 아무리 자식들이 있어도 저마다 자기 몫의 생활이 있기에 너무 많이 의지 하면 서로가 힘든 상황이 있을 수 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적당히 기대자.
달리는 기차에 앉아 무심히 차창 밖을 바라본다. 어느덧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은 다음 해 또 수확을 하기 위해 휴식기에 들어간다. 왠지 텅 빈 들녘이 쓸쓸하다. 부모가 자식 낳아 기르고 자식들은 모두 독립해서 멀리 떠난 뒤 텅 빈 논은 껍질만 남은 부모 모습 같아 마음이 애잔하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내어 주고 껍질만 남아 물 위에 동동 떠내려 가는 우렁이 껍데기와 같다.
9시 4분에 군산을 출발한 기차는 12시 40분이 넘은 후에야 용산역에 도착한다. 일요일이라서 둘째 딸이 마중 나왔다. 나는 다른 딸도 마찬가지지만 유난히 둘째 딸을 만날 때는 마음이 설렌다. 나를 보면 언제나 '엄마" 하고 두 팔 벌리고 달려오는 딸, 나이 오십이 넘었지만 나는 딸을 보면 지금도 소녀 같다는 느낌이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마음이 포근하고 눈물 나게 고맙다.
기다리던 사위를 만나 집으로 돌아와 딸이 끓여 놓은 흰 죽 한 공기를 먹고 잠깐 쉰 다음 우리는 셋이 서울 남산을 향한다. 올해 봄, 남산에 무장애 데크길을 만들어 놓아 시민들의 호응이 좋다고 사위와 딸은 나를 구경시켜 주려 왔는데 아뿔싸!! 이건 남산 아래 도로는 완전 주차장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밀려다니는 모습이 차 안에서도 보인다.
서울사람 몇 분의 일은 마지막 가을을 즐기려 쏟아져 나온 듯하다. 만추라고 표현할 뿐,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사위만 도로 위 차 안에 앉아 있고 딸과 나만 밖으로 나와 사진을 찍는다. 남는 건 사진뿐이다. 정말 온 세상이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수채화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노란 은행잎이 도로를 덥는다. 흩날리는 꽃비도 아닌 노란 은행잎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다.
정말 아름다운 가을!! 신비롭다. 어쩌면 이리 단풍들이 아름다운지, 이 아름다움에 취해 딸과 나는 사진만 찍고 있다. 더는 남산에 머물 수가 없어 해방촌 골목으로 내려와 국립 중앙 박물관에 차를 주차해 놓고 용산가족 공원 쪽 길을 산책한다. 사람도 많지 않고 고즈넉하고 좋다.
용산 가족 공원
브런치 이웃 작가님들 눈요기하시라 찍어 놓은 사진을 다 올린 것 같다. 만추, 이 아름다움을 신이 아니면 누가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찬란하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봄부터 새움을 틔우고 초록의 잎으로 뜨겁게 살다가 결국에는 이토록 아름다운 단풍잎을 떨어뜨리고 빈 가지로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 나무에게서 우리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
우리는 가슴으로 번져와 또렷하게 새겨지는 이 아름다움을 마음 안에 담고 또 다음 가을을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