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찬주 May 05. 2024

윤회를 믿는 자의 여유

마지막 날까지 공부할 여유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할까?

야구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죽기 전날 마지막 경기까지 모두 보고 눈을 감을 수 있어서 안도감을 느꼈다는 아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아픈 노모가 침상에서 드라마를 보며 세월을 보냈다는 분의 이야기도 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심히 슬프다.

인생 마무리가 너무 무력하기 때문이다.

이런 예도 있다. 

때때로 자식에게 화를 내는 부모가 있다.

내가 이렇게 살다 죽으면 억울하니 이런 거 저런 것을 하고 싶다는 협박 같은 바람을 하는 거다.

이런 분들은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과 자신이 매일 늙어간다는 게 억울한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다.

이제 몸이 늙었으니 무언가를 배워도 쓸데없을 거라 화나는 거다.

그래서 선수를 친다.

늙은 자에게는 필요 없는 걸 해야 하는 명분이 필요하니,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다며(사실은 자신의 슬픔을 알아달라고) 협박 같은 바람을 자식에게 말한다.

듣는 사람은 그들의 분노를 아는데 정작 본인들은 대부분 모른다.

그러나 스님 중에 열반에 드는 날 아침 마지막 공부를 마치고 편안히 누워 죽음을 맞겠다는 말을 하는 분을 여럿 보았다.

참으로 어른답고 아름답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스님의 이야기가 특정 종교의 예라서 불편하다면 많이 하는 이야기를 예로 들 수도 있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말도 유명하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은 윤회를 믿는 사람에게 어렵지 않다.

내가 한 수행이 다음 생에도 이어진다.

이번 생에 내 그릇과 도량을 깨끗이 하고 그 그릇에 학식을 보기 좋게 담으면 다음 생에 보다 영민하고 좋은 생을 받는다.

이것이 연기법이다.

불교는 인드라라는 수많은 우주의 연결도 언급한다.

지구인은 지구를 떠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이 노력을 응원한다.

그러면서도 지구가 망한다는 생각이 지극히 지구인 적인 관점이라는 걸 안다.

우주적으로 지구의 종말 같은 건 없다.

그리고 생이라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지만, 이해하기 쉽게 적자면 내 삶은 영원한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다른 행성에 태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구가 망했고 우리가 미처 우주선을 만들지 못했어도 우리의 윤회는 계속될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프리다 칼로는 임종 전날 수박 그림을 통해 가장 여성스러운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여성으로서 한번 누려보지 못한 촉촉함이었다.

나는 그녀의 현세가 상당히 좋아졌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도 윤회를 알았을 것이다.

끔찍하게 살아온 프리다 칼로가 "인생 만세"를 그렸다.

윤회를 믿지 않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수행과 공부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공부가 다음 생에 이어지는데 죽기 전에 한 공부가 아깝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착한 이는 먼저 가는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