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글을 자주 쓰지 못하는 나는 최근 많이 부끄러웠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이로부터 글을 잘 읽고 있다거나, 조금 더 써 달라는 주문(?)을 받을 때. 두서없이 길기만 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어 고맙고, 또 게으른 탓에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함이 부끄러운 것이다.
좋아하는 글을 잘 쓰려면, 일단 써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꾸준히 써서 단어에 대한 감을 익히고, 또 지속적으로 좋은 글들을 읽어 사유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힘을 길러야 함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게으름이라는 이유로 모르는 것만 못한 앎이다.
글쓰기는 평생 몸에 지니는 근육과 같은 것이라, 내 아이들은 조금 더 글쓰기 근육이 탄탄하기를 바랐다. 평생을 살아가는데 글쓰기 훈련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제대로 글쓰기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내가 든 나름의 교육철학이다. 꼭 학업과 연관 짓지 않더라도 글쓰기는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을 때의 마음 표현을 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이고,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 차마 말로는 전하기 곤란한 것들을, 글로 담아 조금 더 정돈 생각들을 전할 수도 있다. 글은 뱉어버리는 즉시 수정이 불가능한 말과는 확연히 다른 능력을 지닌다.
이렇게나 중요한 글쓰기 훈련인데. 요즘 초등학생들은 글을 쓸 기회가 자주 없다. 매일 써야 하는 알림장, 받아쓰기, 일기장이 아이들에게 스트레스가 된다며 가만있지 않는, 사랑이 차고 넘치는 학부모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사랑의 힘만큼 민원의 힘도 세다. 그리고 그 민원의 반영 속도는 참으로 빠르다.
당연히 학교에서 이루어지리라 기대했던 글쓰기 교육이 진행되지 않아서, 나는 내 멋대로 아이들과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름하여 <매글매글>. '매일 글쓰기'를 줄여서 하는 말이다.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작은 동기부여를 주기 위해 남편에게 노트의 표지에 붙일 수 있는 인쇄물 제작을 요청했다. 매일 쓰는 노트에 조금이라도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는 마음에서. 남편은 귀여운 펭수 캐릭터를 붙여 곧바로 인쇄물을 제작 해왔다.
매일매일 주제를 주면, 아이들이 주제에 맞는 글을 적는 형식. 평소에 잘 물어볼 수 없는 주제를 적어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늠하기도 하고, '맛있는 디저트'나 '가족'과 같이 쉽게 쓸 수 있는 글을 주제로 적기도 하는 가 하면, '초등학생이 유튜브를 자유롭게 시청해도 되는가?', '초등학생의 화장, 적절한가?'와 같은 나름 근거를 필요로 하는 글들을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가족 다 같이 다큐멘터리 '너를 만나다'를 보고 펑펑 울었던 경험을 기록해두고 싶어, 다큐멘터리 시청 후 소감문을 적게도 했다.
열 살인 딸아이는 노트에 8줄, 열두 살인 아들 녀석은 그에 두줄을 더해 10줄을 적게 한지 이제 막 한 달. 그럴싸하지는 않아도, 종종 모양새가 난다. 처음 몇 번은 일반적이거나 모범적인 글들을 적어내더니, 곧잘 각자가 가지는 생각과 느낌들을, 개성것 담아낸다. 퇴근하고 늦은 저녁으로 허기를 달래고 나면, 아이들의 매글매글로 마음을 채운다. 아이들이 쓴 글 아래 색깔이 있는 볼펜으로 2-3줄, 아이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는다. 그러면 또 매글매글은 순식간에 근사한 '교환 일기장'이 되어 그 의미가 더욱 깊다.
아들, 딸아이가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적은 오늘의 '매글매글'을 읽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쓰기 교과서에서 종종 봤던 반쪽 짜리 빈칸. 그 빈칸을 마주할 때의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브런치를 열었다. 나도 다시, <매글매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