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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송 Aug 20. 2021

아들아, 이런 남자가 되렴.


 ⎥ 너는 나의 자랑이자 사랑,

    그리고 파랑 (wave)


 아들아 나는 너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 첫째여서 기대치가 높다거나, 잘해야 동생이 따라 해서의 이유는 아닌 것 같아. 첫째여서 더 잘하고 책임감이 막중해야 한다는 건 둘째, 셋째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기회와 시간과 비용은 모두 골고루에게 분배되어야 하는 것이라 주장했던 셋째 딸로 태어나 자라면서 내왔던 목소리를 저버릴 수가 없기에, 너와 네 동생에 대한 기대치도 태어난 순서와 상관관계를 두지 않으려 한다.


 너에게 지난 10년간 가르친 것을 이제와 돌이켜 보니 먹는 것과 수면이 전부였다. 제때 자고, 제철에 난 음식들을 먹인 것이 내가 너희들에게 한 전부였다. 특히나 너는, 또래보다 커다란 체격을 가지고도 공격하지 못하는 성향, 호기롭게 몸을 움직이면서도 뛰어난 건 오감뿐 아니라 육감이 더해져 그 감수성이 풍부했다. 어느 세대와도 대화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더 약한 태도를 지녔다. 학업과 관계없는 과목에만 비용을 지출하는 부모를 만난 탓에 학교 공부는 오로지 본인의 몫인데도 적당히 제 몫을 다해  촉진시키는 능력이 뛰어났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회가 닿으면 거침없이 시도해서, 시행해내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타고났거나 네 스스로 노력해서 가져온 결과물들이었지.


 그런 네가 올여름, 13살이 되어 십 대(Teenager)에 진입했다. 뒤로 온 시간 들은 '보육'에 초점을 맞추었더라면 이제는 '교육'에 초점을 맞출 때라는 걸, 지금이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학습적인 교육도 중요하지만, 우리 부부가 더 무게를 싣고 싶었던 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홀로 서는 방법에 대한 연습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했어. 나는 네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줄기차게 '스무 살엔 독립'을 이야기해왔으니까.



"규빈아, 스무 살부터는 독립해야 해"

"엄마, 독립이 뭐야?"

"독립은 혼자 서는 거야. 모든 걸 혼자 해내는 거지. 하고 싶은 대로 뭐든 지 할 수 있지만,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해"

"책임이 뭐야?"

"..."



 5살에는 "싫어, 싫어~ 나는 엄마랑 같이 살 거야." 하더니. 1학년이 되니까 "엄마, 나는 엄마 옆집에 살게~" 하고. 3학년이 되니까 "버스 타고 자주 갈게~" 라던 너. 중학교 입학을 앞둔 지금은 어떤 대답을 들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나를 보호하려 질문 조차 하지 않았지. 어쩌면 언젠가 맞이할 너의 독립선언이 두려워, 엄마인 내가 먼저 선언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너라는 기쁨과 사랑, 위로의 존재가 매일같이 함께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아갈 자신이 없는 쪽은 나였는지도.


 모든 기준에서는 자격미달 일지 모르겠지만, 어떤 기준에서는 '엄친아'가 내 아들인 너였다. 제대로 준 것이 없는대도 무탈하게 잘 자라 주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엄마인 나의 20대와 30대를 풍성하게 잘 키워주었고, 지금도 잘 키워주는 너에게 나는 여전히, 뻔뻔하게도  요구사항이 참 많다.


 가장 먼저는 건강한 사람이 되기를, 이는 몸에만 해당되지 않으며 마음과 정신도 모두 포함해 그것들을 유지하는데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한 평생 살아가며 그 어떤 도구도 '몸'만큼 가치가 높은 것은 없으니 육체의 건강은 당연하고, 단단한 몸에서 나오는 단단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너는 곧 네가 먹은 것이다.(You are what you eat) 건강한 음식을 공부하고, 찾아, 그것들을 섭취하렴. 좋은 음식들은 좋은 생각과 마음을 가져다준다. 힘 있던 마음도 상황에 따라 말랑해지는 마음으로 타인을 공감하고 위로할 줄 알아야 하고 삶에서 만나게 될 희로애락을 거부하거나 쉽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감사의 태도를 몸에 새겨, 하루하루 쌓여가는 감정들에 정신은 항상 맑고 올곧아야 한다.


 이어서는 스스로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그 어떤 것도 너 자신보다 우선시될 수 없으며 누군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는 반드시 스스로의 기쁨이 포함되어있는 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요구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이기적인 행동이 장기적으로는 이타적일 수 있고, 순간의 이타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커다란 이기를 불러올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 싶다.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는, 선택지가 최대한으로 많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네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하렴. 좋지 않은 선택을 했을 때에도 너는 그것을 좋은 선택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너를 위하고 너 자신을 믿으렴.


 그리고는 너에게 주어진 능력을 성실함으로 매일같이 키워내렴. 타고난 너의 재능보다 더 뛰어난 것은 너의 뚝심과 지구력이다. 전교 부회장 선거에서 참패를 맛보고 그 이듬해, 거침없이 전교 회장 선거캠프를 준비했던 너를 보며. 엄마는 스스로 깔아 두었던 두려움의 막을 살짝이 걷어냈다. 손목과 손가락에 붕대와 지지대를 매일같이 달고 살면서도, 어김없이 축구화를 신고 골키퍼 장갑을 끼는 너의 그 지속적인 열정을 존경해.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한파가 불어올 때는 보드를 신으며 짠물을 들이켜다 못해 입술이 퉁퉁 붓고 걷지도 못할 정도로 엉덩이와 무릎을 찧어가던 네가 안타까웠지만. 좋아하는 일들을 잘하게 될 때까지 노력하던 너의 힘 있는 모습들을 기억해 어떤 영역에서고 적용하고 발휘하기를 바란다.


 10대에서 20대로 향하는 지금은 위와 같은 세 가지를 요구했지만, 아마도 점차 나는 너에게 더 많은 것들을 바라고 요구하고 싶겠지. 이미 잘하는 너에게 더 잘하라고 욕심을 부리거나, 네가 애써 고민한 것들을 함부로 개입해서 결정해버리는 일을 하게 될까 봐 조금은 두렵다. 너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존중하기에, 이런 글을 써서 너의 생각과 결정들을 듣고 따라야 하는 연습만이 내가 할 유일한 몫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다시금 상기시켜 본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말씀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이니 어린이의 뜻을 가볍게 보지 말라'처럼, '싹은 위로 보내고 뿌리는 일제히 밑으로 가'는 삶을 나는 바라고 소망해-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알려준 네게. 엄마가 가을의 초입에 쓰는 글



▲ 가까이 지난 여름, 동생을 보트에 태우고 깊은 바다로 들어가던 너를 꺼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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