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 사이, 통영에 있는 언니네 집에 같이 가겠다고 하셔 놓고는. 할아버지는 곧바로 취소를 하셨다. 체력이 급진적으로 저하되고 그 기복이 심해 언제 어떻게 무리가 될지 몰라 함부로 약속을 잡지 않으신다고 했지만. 오며 가며 손녀딸들에게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으셨을 터인 게 분명했다.
여러 차례 취소되었던 여행을 다시 갈 수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 댁과 통영 사이, 진안에 작은 아빠가 지은 별장 덕분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첫 살림을 시작해 씨 뿌리고 열매 맺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자식들을 낳고 키우던 첫 터전에다가, 작은 아빠는 목돈을 들여 땅을 사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본인이 쉬어가는 곳이라는 명분을 삼아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한 것으로.
먼저 진안에 며칠 내려가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냉큼 달려갔다. 차로 2시간을 더 가면 통영 언니네에 조금 더 쉽게 이동하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자동차 시트에 쿠션이 되어있음에도, 살이 점점 빠져 야위신 할아버지는 엉덩이 살이 부족했기에 방석을 필요로 하셨다. 할머니는 승차감과는 관계없이 크기만 큰 내차를 보고는 뭘 잘했는지 모르겠는데 '잘했다 잘했다'를 연신 내뿜으셨다.
깨끗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바닷가를 바라보며. 할아버지, 할머니는 "야~ 바닷물 봐라"를 연신 말씀하셨다. 촌스러운 간판의 불빛 사이를 달릴 때에도, 밤거리를 구경할 수 있어서 호강한다고 하셨다. 오랜 기간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셨던 할아버지는 체통을 지키시는 탓에, 모양새가 조금이라도 나빠지는 것들은 멀리하시느라, 단 음식들을 드시지도 않았고 먹는 우리를 나무라셨었는데. 함께 여행하는 기간 동안은 뻥튀기며 꽈배기, 겹겹이 쌓아 만들어 한창 인기가 높은 달달한 꼬북칩 (심지어 초코맛!) 과자를 잘도 드셨다. 기름진 음식이나 밀가루는 좋지 않다고 하셨으면서. 밀가루와 설탕, 기름으로 범벅된 짜장면을 아이처럼 어찌나 맛있게 드시던 지.
통영에 열 번도 더 갔던 나는, 아니 통영 살이 2년 차인 언니를 포함해서도 새로운 이곳저곳을 찾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했을 때 좋은 장소들을 미리 조사하고 선정해둔 언니 덕분에 두 분을 모시고 힘들지 않은 여행을 했다. 그중 맨발로 숲을 거닐며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농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여러 번 하늘을 올려다보셨다. 아주 약간의 경사와 폭이 좁은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에도 부축이 필요하였으며, 중간중간 누워서 쉴 수 있는 소파와 해먹을 적절히 사용하며 쉼을 얻는데 왜인지 모르게 나는 자꾸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 살배기 조카 녀석의 활약. 구사할 수 있는 말과 단어는 몇 개 안되더라도, 말귀를 다 알아듣고 눈치는 백 단이요,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경계를 정확히 알며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안전인 세 살에게 "눈감아" 소리를 하면 고스란히 눈을 끔뻑하는 게. 할머니는 그리도 재미나셨을까. 깔깔거리는 소리와 함께 조카에게 백번도 더 "눈감아"를 외치셨다. 자고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도, 밥을 먹을 때에도, 잘만 놀고 있을 때에도 할머니는 큰소리로 "눈감아!"를 외쳤고, 센스만점의 18개월 조카는 때마다 눈을 감아주며 할머니에게 큰 웃음과 기쁨을 선사했다.
그때 그 여행의 최고 희생타는 큰언니 었는데, 이유인즉슨 결혼하지 않아서였다. 눈코 입이 있고 그저 남자기만 하면 괜찮다던, 할아버지의 폭넓은 신랑감 기준에 우리 세 자매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빵빵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언니의 혼삿길이 염려되어 자다가도 걱정이 되신다는 말에, 언니랑 오는 차 안에서 '결혼'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태어나서 엄마젖을 뗀 뒤로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부분 부분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나고 자라, 초중고 12년의 방학을 통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길러졌던 우리 세 자매, 그리고 나. 성인이 되고서도 여전히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에서 난 것들을 먹고,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할아버지의 축복이 그득 담긴 덕담을 듣는다. 나는 오래도록 할머니가 심은 상추와 지진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 먹고, 할아버지의 무게 있는 덕담을 듣고 싶다. "우리 송이는~"으로 시작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오만가지 칭찬과 응원과 격려의 말들을, 욕심을 부릴 수만 있다면 아주아주 오래오래 듣고 싶다.
우리 또, 같이 통영에 가요.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