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송 Jun 23. 2021

34.5세, 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요즘 초등학생의 꿈 상위에 유튜버가 있다고 하는데, 내가 유튜브 채널을 보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심지어 4학년 딸아이의 꿈이 유튜버) 모르는 것이 생겨났을 때 검색하는 채널만 보더라도 이용자의 연령대를 대충 가늠할 수 있단다. 빨간 네모 속의 흰 세모를 띄우는 Z세대와 초록창을 검색하는 N세대. 나는 당연히 후자였다. 맛집 검색은 블로그가 최고요, 매일 하는 레시피 검색에도 영상보다는 내 속도의 흐름을 찾을 수 있는 글과 이미지가 편했다.


 길었던 서론을 뒤로하고.  최근 빠져 있는 유튜브 채널들은 주로 재테크에 관한 것들인데, 처음에 빠졌던 채널을 새벽 4시가 될 때까지 보고는 주야장천으로 그분들의 말씀을 한 달 가까이 묵상(?)하고 있다. 콘텐츠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나란 사람에 대한 재발견이었는데, 추구하는 바와 삶에 대한 불일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면서 부자 되기로 결심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생각하게 된 밑바탕에는 '부자는 얻어걸려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능동적으로는 해낼 수 없는 영역이라 쉽게 가늠했던 것이다.


 부자들의 자산이나 경제적 자유(=시간적 자유)를 부러워하면서도, 부자들이 하는 습관에는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으니 관찰도 없었고, 그러부터 얻어지는 정보나 노하우 또한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부자란, 금수저를 제외하고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부를 축척해 자수성가 한 사람들로 제한하도록 하자_for 정신건강)


 20대 때에는 막연히 서른이 되면 저절로 부자가 될 줄 알았다. 서른 즈음에는 누구나 집을 사는 줄 알았다. 당연히 나도 그러할 줄 알았고.. 그런데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집도 내가 사려고 하지 않으면 가져지지 않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당연한 상식인가, 이 상식을 왜 10년간 모르고 있었나.. 실로 멍청하기 짝이 없다.) 일찍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 보다 자유로울 30대를 기다렸고, 실제로 그러했다. 외벌이에서 맞벌이로 바뀌었고, 아이들은 자라서 내 손이 예전만큼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경제적 자유는 노력하지 않고서 시간의 흐름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과천에 월세로 첫 살림을 차렸던 우리 부부는,  정부의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 제도를 이용해 전세로 갈아탔다. 그리고는 철새처럼, 때가 되면  전세에서 전세로 이동을 했다. 과정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들도 있었고, 아이를 아기띠에 메고 있어서 소리 내어 울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을 사야 하겠어'라는 생각을 가졌던 이유 역시, 아이들이었다. 싹이 돋던 아이들은 그 줄기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고, 성별이 다른 두 아이에게 작은 방이라도 따로 마련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4년 전, 경기도 광주의 한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미분양 수준까지 갔기에.. 우리는 청약을 사용치 않고도 매매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이 과연 맞는 선택인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악착같이 모아 온 이 돈을 멍청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남편은 살던 곳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대해 미안해했지만. 사들이고 나서는 전혀 걱정이 되지도,  아쉽지 않았다.  자주 오르던 관악산과 걸어서 쉽게 갈 수 있던 여러 개의 공원, 도서관, 서울과의 인접성을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그런 게 중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 내 아이들의 삶의 질이 중요했다.


 그리하여 나는 결혼 10년 차에 어찌어찌 내 집 마련을 했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순수히 우리 부부의 힘으로. 부채 비율이 높기는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부동산 정책과 물가상승률의 몇십 몇백 배보다 높이 치솟는 아파트 가격을 감안하면, 그때 은행과 함께 내 집 마련을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요즘 부동산과 관련된 뉴스를 듣고 있노라면 그때 분양받지 않으면 어쩔 뻔했나라는 안도감까지 든다. (빚 생각은.. 부채도 자산이니, 나름 괜찮은 자산을 마련한 것이라 위로를 하자)


  다달이 원금과 이자를 상환할 생각을 하니 현실성이 파바박 눈앞으로 왔다. 와중에 아이들은 계속해서 자라고, 그들의 의식주와 교육에 비용이 들어갈 한마디로 돈 쓸 일이 너무나도 많은 시기였다. 정신이 번쩍 들어, 과거와 현재의 나를 [수입+지출]로 분석했고, 1년 치 저축 목표와 지출 예산에 대한 계획을 짰다. 엑셀 파일 시트 하나에 기록된 숫자를 보아하니.. 나는 아주아주 공들여 열심히 일해야 하는 사람이고, 여느 기간 동안(평생은 아니겠지.. 아니어야 한다)은 '퇴사'의 '퇴'짜도 꺼내서는 아니 되는 사람이었다. 워킹맘, 밥벌이 만세다! 왜 이런 작업을 이제야 한 건지, 무슨 깡이었던 건지. (혹 읽는 그대도 아직 해보지 않은 작업이라면 꼭 한번 해보시기를 추천하고 싶다.) 계획을 짜고 나니 놀 수 있을 때 열심히 놀자던 마인드는 벌 수 있을 때 열심히 벌고, 저축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저축해야 하는 것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나는 왜 부자가 나쁘다고 생각했을 가. 부를 쌓는다는 것은 모든 가치를 배제한 채, 자본주의 시장에서 모든 것을 기만하며 우습게 보려는 것이라고 함부로 생각하고 판단했을까. 나는 왜 몇몇의 겸손하지 못한 부자가 전체를 대변한다고 생각했을 까. 만났던 사람들 중 어마어마한 부를 축척하고 있으며 실력 있고 겸손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여러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택지를 보다 늘릴 수 있고, 문제 상황 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었다. 흥청망청 낭비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도움이 되는 여러 방법으로 조용히 돕더라.


 '50% 할인 제품도 안사면 100% 할인'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 당신이 부자가 되기로 했다면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손꼽아 기다리던 'Season OFF'도, 대형마트의 커다란 카트도, 어쩜 그리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의 것들만 취합해두었는지 신통방통한 사이트도 안녕을 고한다. 사교육은 가(家) 교육으로, 새벽 배송과 정기배송은 발품팔이로 대체할 것을 다짐하며 이 자리에서 선언 하노라. 한 번에 들고 올 수 있는 양만 사고, '냉파먹'을 즐겨할 것을, 체형을 보완해 줄 '예쁜 옷'을 사기보다 아무거나 대충 걸쳐도 '예쁜 몸'을 만들 것을, 서른넷 6월의 나는 선택하고야 말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