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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송 Jun 21. 2021

통영 예찬

 서른 번째 생일은 보다 특별해야 할 것 같았다. 20대에 영혼을 갈아 결혼, 출산, 육아의 도장깨기를 끝내 둔 나에게 선물을 주고 또 받고 싶었다. 그리하여 남편에게 남쪽 땅 좀 밟아보자고 했다. 남편은 한국사람이 있는 같은 한국땅이라고 했지만, 나는 가봤자 별 것 없다한들 가보고 나서 별거 없다고 말하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진짜 해변가에 모래가 아니고 둥그렇고 까만 돌멩이들이 즐비해 있는지, 동양의 나폴리가 있는지, 있다면 진짜로 맞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남편의 말처럼 특별할 게 아무것도 없었는 데도, 나는 첫 통영이 그렇게나 좋았다. 일하다 휴가를 냈기에, 생일이었기에, 아이들이 자라고 간 여행이라 손이 덜 가서, 여러 이유가 더해져 있겠지만. 그럼에도 역시나 내가 여행지를 잘 골랐어, 내 안목, 내결 정에 대해 만족감을 넘어 자존감까지 치솟을 정도였다. 그 깨끗하고 맑은 하늘과, 하늘에 질세라 어느 부분은 엷파랗게, 어느 부분은 감파랗게 조화된 바다가 제주에서 여러 차례 보았던 것과는 달랐다. 통영 여기저기를 오가도 잔잔하게 깔려있는 바다 냄새가 싫지 않고 어쩐지 정감 가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서른 번째 생일에 처음 갔던 뒤로 나는 통영에 여러 번 갈 기회가 아주 기가막히게 생겨났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라 서울살이를 10년 이상 하던 형부가 갑자기 통영행을 외치며 통영 교사가 되겠다고 선언하였을 때, 나는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외쳤던가! 우리 형부로 말할 것 같으면 명석한 두뇌와 끝내주는 인내심의 소유자이기에. 시험에 응시하겠다고 선언만 했을 뿐인데, 이미 나는 합격한 형부를 상상하며 얼마나 통영을 오고 가게 될까 기대심으로 찼고, 예상했던 곧이곧대로, 언니네 부부는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통영으로 떠났다. 


▲ 몽돌해변 

 한 번은 일상에 지쳐, 그렇게나 좋아하는 운전조차 하기 싫어졌던 그때의 나는 선택지를 늘릴 것도 없이 바로 통영 언니네에서 좀 쉬고 오겠다고 했다.  버스에서 가는 4시간 동안 줄기차게 글을 읽고 쓰며 그 시간을 빼곡히 누렸고, 고개를 돌리면 고속도로 위 일지라도 무주, 함양, 산청, 진주 푸른 곳곳의 장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70%가 산림이라고 하는데, 수도권에서는 절대 체감하지 못하는 것을 가는 길 내내 눈으로 확인하고 감탄하며 갈 수 있기에 그 4시간이 아주 보석 같았다. 


  400Km. 차로 4시간 거리, 고작해야 4시간만 가면 그렇게나 맑고 깨끗한 도시를 만날 수 있다니. 가도 가도 실로 놀라웠다.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넉넉한 인심과 여유가 있어, 아무도 독촉하거나 채근 대지 않고 평안하고 편안한 흐름이 있었다. 그럼에도 게으름이라고는 볼 수 없는 도시인데, 높낮이가 다른 골목 귀퉁이마다, 눈에 띄는 곳곳 파와 상추, 고추, 마늘이 심어져 있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작은 밭에서도 여러 농작물이 자라고, 바닷가임이 무색하게 여러 채소들이 계절별로 수확되는 것은 부지런하고 성실한 통영 사람들 덕분이다. 


  거주하는 곳이 아니기에 깊은 관계를 형성하기는 어렵지만, 빵 하나만 사봐도 알 수 있다. 빵을 고르고, 내밀고, 계산하고 나오는 서울에서의 초스피드 구매 절차와는 다르다. 빵집에 들어가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떤 빵을 좋아하냐서부터 재료의 설명, 질감까지 친절하게 안내받을 수 있고 몇 가지 대답을 하면. 서울에서 오셨나보네예~ 우리 누구도 서울에 있는데. 하면서 이런저런 속사정이 담긴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서울에서는 철저히 '사생활'의 영역이라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아주 드물게'이거 화를 내야 하는 상황 아니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이렇게도 풀어질 수 있다고?'로 끝난다. 결국에는 통영을 향한 엄지가 치켜세워지고 끝나는데,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 알리고 싶다. 


 관광지, 유명 음식점도 다를 바가 없다.  줄이 길게 늘어져 빨리빨리 손님을 받아야 하는데, 그  한 명이 머물다 가더라도 그 질을 높게 보장해주는 장소가 한둘이 아니다. 멍게비빔밥으로 유명한 식당도 그러했고, 신선한 해산물의 다찌집, 한참을 맨발로 거닐며 숲의 온 피톤치드를 다 빨아들일 수 있는 농원이 그러했다. 공식 개장을 하지 않아서 입장을 제한할 법 한 수목원도,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으로 온 사방팔방을 내 정원처럼 뛰어놀 수 있다. 그 누구도 쉽게 제한하지 않고, 그 누구도 쉽게 제지하지 않는다. 


▲ 충렬도너츠와 충렬문구사. 먹거리와 놀거리를 동시에

  이순신 장군의 위엄이 펼쳐져있는 충렬사 앞에는 그 맛이 의미심장한 도너츠 집이 있는데 이름마저 근엄한'충렬 도너츠'.  소박한 먹거리가 주인장 아저씨의 자부심으로 하루 소량 생산되어 장인의 산물이다. 통영에서 충렬 도너츠를 먹지 않은 자, 통영에 방문했다 하지 말라. 서울에 가져가려 넉넉히 주문하면, 정형화되지 않은 상자에 도넛이 눌리지 않을 정도만 담으시고, 그 이상으로 주문은 삼가라고 말씀해주신다. 이것이 장인의 정신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제는 통영시민이 된 형부가 10대의 끝자락에 있는 아이들에게 주는 글로, 교지에 이런 내용의 글을 담았다. 두 페이지를 빼곡히 채운 형부의 글에 그 진심이 묻어나서 울컥, 나는 그 글들을 여러 번 꺼내 읽었다. 

  통영에 사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것을 권합니다. 관점에 따라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는지에 따라 서울에서의 삶이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서울보다 이곳 통영에서 누리고 있는 환경들, 통영에서 만난 사람들, 통영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으로 좋습니다. 학생들 중 대다수는 대학이나 직장이 정해지면서 더 큰 도시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 그전까지 통영에서 사는 것과 통영 출신임에 자부심을 갖고 더 즐겁게 생활했으면 좋겠습니다.


형부가 그러한 글을 쓸 수 있도록, 글에 담은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가장 가까이에서 격려하고 응원한 언니는 참으로 대단해-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같은 속도, 같은 호흡으로 맞추어  살아가는 모습에 나는 위로가 되고, 환기가 되어 긍정적인 영향과 도전을 받는다.  함께 할 때는 당연히 그러하고, 돌아온 내 일상에서까지 조용하고 힘있게 그 진가가 발휘되서 참으로 힘이 세다. 이제서 돌아보니 언니네 부부는, 자신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음으로 본인들에게 가장 잘 맞는 곳을 찾았고, 준비해서 떠났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 그곳에 안착하여 토박이 만큼이나 도시에 도움을 주고, 받는 훌륭한 통영시민이 되어있다. 

▲ 통영댁, 우리 언니


  한려수도의 배경과 예술을 즐기고 배출한 사람이 유난히 많은 도시, 유네스코가 지정한 음악 창의도시, 전통과 문화가 공존하고 무엇보다 우리 언니네 가족이 살고 있는 통영을 나는 사랑한다. 맛있는 먹거리와 다정다감한 사람들이 복닥이되, 그 속도가 과하게 빠르거나 너무 느리지 않은 도시가 참으로 근사해, 언제고 다시 가고 싶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가야지- 





* 이 글의 작성자는 통영시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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