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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송 Aug 14. 2020

한강아 괜찮니


비가 와도 너무 온다. 


하늘이 구멍 난 것으로는 부족해, 수습불가 지경의 대 펑크가 났나 싶을 정도였던 작년에는 옥상을 수시로 점검했었다. 집주인 아주머니한테 몇 번이나 옥상 수리를 요청한 끝에 수리공 아저씨가 손보고 가셔도. 복도 벽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은 1층에 세워둔 아들 녀석의 자전거를 재빠르게 녹슬게 했다. 자전거를 사랑하는 아들을 사랑하는 우리 부부는 계속해서 옥상의 물통을 점검해 비워내야 했었다. 나는 모두가 이 비를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가까운 주변 중에서는 우리 집만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한강뷰가 보이는 주거환경에서 살아보고 싶다던 남편과 달리, 나는 산을 보고 살고 싶었다. 배산임수에 역행하여 사람은 돋아나는 것을 보고 살아야 삶에 대한 의욕도, 위로도 받을 것 같은 이유였다. 남편 외에도 많은 친구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가졌었는데, 나는 사람들이 왜 이리도 한강에 사는 것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더랬다. 한강이 뭐 그렇게 대수라고 왜다 텐트를 싸가지고 한강으로 오는 걸까, 자전거는 왜 이리 많고, 시끄러운 술쟁이들은 왜 다 한강으로 모이는 걸까. 자전거, 마라토너뿐만 아니라 씽씽이 부대까지.. 왜 죄다 죄다 한강으로 모여드는 걸까 생각했다. 한강을 건너게 해주는 중간중간의 다리에서 빛나는 빛도.. 그렇게 예쁘지는 않은대다가 조금은 촌스럽기도 한대. 


  나의 첫 한강 나들이는 일곱, 여덟 살쯤이었는데, 당시 연중무휴에 늦은 시간까지 치킨가게를 하시는 엄마, 아빠의 성실함으로. 우리 가족이  모두 다 같이 나설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새벽이었다. 교통체증이 없고 신호마저 깜빡이는 노란불로 '얼른가, 얼른가'를 외쳐주던 시간. 우리의 붕붕이, 하얀색 엑센트를 타고 올림픽대로를 달리면 막둥이인 나는 창문을 내리고 머리를 풀어헤쳐 즉흥으로 지어낸 노래를 고래고래 불러댔다.  그렇게 도착한 여의도 한강고수부지에서 엄마, 아빠는 돗자리를 펴 식은 맥주를 마시고, 우리 세 자매는 그곳에만 있는 커다랗고 빨간 거미줄을 세차게 흔들어 탔다. 가끔 그곳에서 일탈 중인 중/고생 언니 오빠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그들의 힘이 얼마나 좋은지 옆에 타서 꺄르륵 꺄르륵거리다가. 빠른 시간 안에 친밀도가 형성돼 '새콤달콤'을 나눌 정도의 단계까지 가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남자애랑 마포대교 위에서 밀어대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보았던 불꽃은 얼마나 예뻤는지. 퍼버벙하는 불꽃을 바라보던 그 녀석의 눈빛과 표정이 어떨지 궁금한데도, 쑥스러워 고개를 돌리지 못했던 내 열여덟 살의 한강. (먼저 같이 보러 가자고 했던 그때의 내 용기는, 어디서 났을까?) 남편이랑 다투고, 속에서 올라오는 화가 도저히 참아지지 않아서 자전거 페달을 밟아 마주했던 한강. 한참 있다가 속 시원히 큰소리로 엉엉 울고 가려했는데 눅눅하게 습기를 머금은 그곳이 어찌나 비리던 지, 도착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섰던 내 스무 살 후반의 한강.  


  서른의 초입에 만났던 한강은 얼떨결에 마라톤 코칭을 받으며 였는데, 그게 그렇게나 재미있었다. 회사 다니며, 두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도 한 번을 빠지지 않으려 기를 쓰고 해야 할 일을 해치웠던 시간들을 한강이 만들어주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잠잘 시간을 아껴가며 달리는 것이 그렇게도 좋을 줄이야. 그곳에서 맞바람을 거슬러, 밀어주는 바람에 실려 달리는 것에 하루의 피로를 날려버렸으니까. 적당히 비가 오는 여름날에도 '우 중런'이라는 이름을 붙여 성실하게도 출석을 빼먹지 않았다. 


 경기도 외곽으로 주거지를 옮기며 멀어졌던 한강은,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 사태로 찾을 기회가 현저히 낮아졌다. 일상이 정지되며, 생활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시기에는 물리적 거리도, 마음의 거리도 멀어졌으니 궁금하지조차  않았는데- 여전히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는 와중  한바탕, 두 바탕, 세 바탕 쉴 새 없이 호우가 쏟아졌고,  뉴스속보로 나오는 기상캐스터의 뒤에 오랜만인 한강의 모습이 비쳐 쳤다. 


 여러 해를 거치며 뛰놀던 그곳이 그렇게 잠기는 동안,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가늠할 수 없이 탁해져 가는 동안,  오만가지 것들을 수면 위로 둥둥 띄우며 몸집이 불어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갈 곳을 잃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재민이 되고, 피해를 보며 소중한 목숨까지도 잃었는지. 오랫동안 먹먹함이 가시질 않아놓고도 어리석은 나는 뭉뚱그린 기도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세상 사람들의 얼굴을 모조리 마스크 뒤로 가린 것처럼,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사태로 두 번 다시 뛰놀 수 없을까 봐. 많은 이들에게 휴식처가, 위로처가 되어준 그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놓고 나는 이제와 대놓고 걱정을 한다. 왜 나는, 우리는 진즉에 환경을 파괴하는데 돈을 쓰고 다시 환경을 되살리는데 더 큰돈을 쓰고 있는 건지.



.. 한강아.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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