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옷자락
내 방이 갖고 싶었다.
나만의 물건들을 채우고, 나의 시간으로 물들여진 나의 공간이 갖고 싶었다.
어린 시절,
몸집이 작은 내가 겨우 누울 만큼의 적은 여유공간밖에 허락되지 않은 나의 작고 소중한 방이 생겼다.
나의 방에 들어서는 찰나에 마주치는 방문은 나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경계였다.
나는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방문을 사이에 두고 자유와 불안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방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소음으로 변했지만, 방문은 소음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었다.
오래되고 낡은 집의 작은 방문은 완벽하게 닫히지 않았다.
심지어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방문의 경첩은 불쾌한 소리를 내었다.
삐걱거리는 그 소리는 문 밖의 소리들과 함께 내 귀에 깊숙이 박혔다.
그 소리들은 어린아이의 가슴을 동동 뛰게 만들며 생각보다 오랜 시간 아이의 귓속에서 서식한다.
조용히 발 끝을 세워 방문을 툭 건드려 본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아주 조금 움직인다.
엉덩이를 끌며 문 앞에 바짝 붙어 앉아 이번엔 등을 이용해 문을 밀어 본다.
삐걱거리는 불쾌한 소리는 등뒤에서 멈춰진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조용히 내 작은 방으로 걸음을 옮겨간 후 양입술을 앙 다물고 방문을 슬쩍 닫아보았었다.
'쿵!'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닫힌 탓에 문에 바짝 붙어 앉아있었던 내 옷이 문틈에 껴버렸다.
문을 다시 열 용기 따위는 불안감에 잔뜩 웅크러진 아이에게서 나올 수 없는 사치였다.
그렇게 그날은 나의 작은 방문 앞에서 잠이 들어버렸었다. 웅크린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나
그때의 그 집과 방문은 내가 다시 찾아가서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의 마지막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는 내 작은 방문의 경첩에는
먼지가 세월과 섞여 찌들어진 기름때만 남아 있었다.
그 당시 누군가 그 삐걱거리던 방문에 기름칠을 했었던 것 같다.
누구를 위한 행동이었을까.
삐걱거리는 소리가 싫었던 걸까?
삐걱거리는 소리 뒤에 눈치를 보고 있던 작은아이가 안쓰러웠던 걸까?
더 이상은 의미가 없어진 일에 물음을 던져본다.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결말을 위해
어디까지 고민하고 판단해야 하는지 우리는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삐걱거리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을지 몰라도, 그 소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삶이지 않을까 싶다.
더 이상 나의 방문은 삐걱거리지도, 소음을 피해 닫아야 하는 일도 없다.
방문을 닫지 않으니, 옷자락이 낄 위험도 피해 본다.
내 방문에서 다시 삐걱이는 소리가 나면 나는 나 스스로 기름칠을 할 준비가 이제는 되었는지,
문틈에 옷자락이 끼면 다시 문을 열 용기가 있는지 마흔이 되어서야 조금 돌아보게 된다.
이제 세상을 마주할 준비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