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의 의미와 가치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하셨습니다. 할머니가 남긴 자개 화장대에서 화장을 하고, 할머니가 집안에서 사용하던 맷돌을 물려받아 집에서 콩을 갈아 메주를 만들기도 하셨죠. 이러한 물건들은 단순한 물질적 유산을 넘어, 가족의 전통과 역사를 함께 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유산들을 사용하며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너희 할머니가 옛날 물건들을 그대로 물려주셔서 아직도 사용하고 있구나.”
언제 처분할지 고민하시면서도, 자식들이 성장하고 스스로의 삶을 꾸릴 수 있을 때까지 그 유산을 지켜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형제자매들이 성장하고 나서야 어머니는 할머니의 유산을 하나둘씩 처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어머니께도 그 물건들은 단지 오래된 물건이 아닌, 오랜 시간 우리 가족과 함께한 시간의 흔적이자 추억이 되어버린 것이죠. 이렇듯 할머니의 유산은 어머니를 거쳐 자식들에게로 이어지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증표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가족의 유산이란 개념을 국가적 차원으로 확장해 보면 어떨까요?
과거 러시아와 구소련 국가들, 그리고 미국이나 일본 등에 이주해 살아가는 한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 여전히 대한민국을 자신의 근원으로 여깁니다. 이들의 삶은 자신의 뿌리를 지키며,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예시가 됩니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유산을 떨쳐낼 수 없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러한 유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고유한 특색을 지닌 문화와 전통, 도시마다 각기 다른 매력적인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특색들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으며, 저비용과 효율성만을 추구하며 일률적인 모델만을 따르고 있습니다. 도시 개발, 관광 산업, 문화적 요소들조차 각 지역의 특색에 맞춰 조화롭게 설계되기보다는, 표준화된 매뉴얼과 규정에 맞춰 똑같이 만들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다양한 사람들에게 양식, 한식, 일식, 중식 등 여러 음식을 제공해야 할 뷔페식당에서 단 하나의 메뉴만 제공하는 꼴입니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획일화된 형태만 남아 각 지역과 도시는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도시와 지역의 특색은 희미해지고, 관광객들은 “똑같은 돈을 쓴다면 굳이 제주도가 아니라 일본으로 가겠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특색을 살리지 못한 우리의 문화적, 관광적 환경이 외면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유산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 주는 다리입니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나에게로 이어진 유산이 가정의 전통을 이어주듯, 우리 각 지역의 고유한 특색과 문화도 국가적 자산으로 소중히 다뤄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단순히 옛것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그 유산을 새롭게 조명하고, 각 지역의 고유한 특색을 적극적으로 살려낼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유산의 힘이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