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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12. 2019

퇴사 후 유럽 - 이탈리아 로마를 떠나며

2018.05.11

짧은 로마 여행을 마치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향했다. 기차표를 예매할 때 분명 가격이 저렴해서 등급도 고려하지 않고 예약했는데 1등석이었다. 마음속으로 대박을 외치며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에 마음이 들떴다. 1등석이라고 해서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 정도는 아니었지만 싱글 좌석이 있었고, 짐을 싣는 칸이 조금 더 넓고 간식을 준다는 점에서 좀 더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여행책과 여러 매체(인터넷, TV 프로그램, 블로그 후기)를 통해서 준비했지만 처음 하는 유럽 여행인지라 항상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루나 이틀에 걸쳐 여러 도시를 여행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오로지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려니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고 불합리한 상황에서 말도 못 하니 민원을 제기할 수도 없어 속앓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늘처럼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맞이하는 날도 있었다. 역시 인생은 플러스, 마이너스의 연속이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연속되면 값은 '0'일지라도, 그 값이 무의미하거나 아예 이득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적당한' 상태인 삶의 균형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나의 삶은 그렇게 좋지도,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가장 평범하고 평탄한 삶이었다. 크게 만족하지도, 정말 잘 살아왔다고 칭찬하기도 애매모호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내가 가장 바랬던 삶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삶의 굴곡이 없는 그저 단순하고 걱정 없는 그런 인생.


하지만 그동안 나는 그 '0'의 값이 아무런 성과나 소득이 없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0'은 없는 값, 마이너스라고 생각하며 그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채우는데만 급급했다. 애써 플러스를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하면 또 어떤 일로 마이너스가 되어 제자리로 돌아가는 상황에 좌절하며 채워지지 않은 부분에만 집중했다. 인생 전체를 조망해 보면 스스로 마이너스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은 결국 다른 수많은 플러스들로 틀림없이 채워졌음에도 당시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결국에는 내가 어떻게 '나'와 '나의 주변'을 바라보는가의 문제다. 내가 좀 더 내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만족하며 살았다면 일상을 견뎌내는 일이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하거나, 실수로 손해를 봤거나, 때로는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책임을 져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인생이 곤두박질 칠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일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우울에 빠진 나를 살펴주었던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그런 소중한 것들을 나는 왜 바로 보지 못하고 그런 일이 일어난 '상황'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것일까. 


한걸음 떨어져 스스로를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삶의 '자세'에 대해 조금은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게 됐다. 내가 원해서 퇴사를 했고, 여행을 왔지만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지속된 것은 아니었다. 여행을 하며 두려울 때도 있고, 외롭기도 하고,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상황을 공감하며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행운들이 나에게 용기를 주며 여행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있다.


그래, 난 이런 것들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실은 내가 '잘 살고 있었고, 잘 해내고 있었다'는 것을.


여전히 이 여행의 끝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하지만 오늘 느꼈던 이 감정과 생각들을 상기시킨다면 조금은 두려움이 사라질 것 같았다. 어차피 퇴사를 한 순간부터 그다음 찾아오는 고용에 대한 불안(또는 경제적인 불안)은 당연한 것이었다. 앞으로 인생을 마이너스에 중점을 두고 볼 것인가는 아닌가는 나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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