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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16. 2019

퇴사 후 유럽 -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2018.05.12

어제 메스트레 역에서 내려 1박을 할 때만 하더라도 베네치아에 왔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해 보니 상상 속에만 있던 베네치아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졌다. 참 신기한 나라, 물 위에 도시가 있고 수상버스, 수상택시, 곤돌라가 곳곳을 누비며 사람과 물류를 실어 나르는 곳. 그동안 여행했던 나라들 모두를 비교했을 때 베네치아만큼 이국적인 곳이 있었나 싶었다. 수상버스를 타고 물 위를 달리며 베네치아의 전경을 감상하니 휴양을 온 듯한 기분이 들면서 그동안의 피로와 긴장이 풀렸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사람에 치여서 피곤하긴 했지만, 사진을 찍기는 정말 최적의 나라인 것 같다. 건물의 색감도 좋고, 외관은 낡았지만 그 낡은 모습이 왠지 모르게 더욱 고풍스럽고 멋스럽게 보이는 매력이 있어서 계속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베네치아는 특히 더 그랬다. 피렌체와 로마를 거쳐올 때만 하더라도 이탈리아에 다시 오게 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베네치아만큼은 한 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무래도 '물'이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햇볕에 반짝거리고, 찰랑거리는 물결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수상버스에서 내려 베네치아 중심부 광장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베네치아의 골목은 좁고 길어서 인파에 뒤섞여 정신없이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어디에선가 종이뭉치가 날아왔다. 고의적으로 정확히 나를 향해 던진 그 종이에는 어떤 메시지가 적혀 있지도, 기분 나쁜 무언가를 담고 있지도 않았지만 갑자기 나에게 날아든 종이뭉치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놀라서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유럽 여행 중에 '인종차별'을 겪었다는 여행 후기는 읽기는 했지만 그동안 무난하게 여행을 했던 터라 나에게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공격을 당하니 공황장애가 온 듯 나를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지고 내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 나를 비웃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공포감이 엄습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베네치아라는 도시가 가장 좋았는데, 이 일을 당하고 나니 앞으로의 일정이 무서워지고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우울해졌다. 그러다 점점 화가 나면서 이런 일을 한 사람의 인성과 문화적 지체에 대해 마음속으로 신랄하게 비난하며 한 동안 마음이 언짢았다. 남들은 모를 분노를 삭이다 보니 다시 베네치아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며 다치지도 않았고, 심하게 모욕당한 것도 아닌데 그냥 털어버리고 여행에 집중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습게도 이 모든 감정을 순식간에 겪고 나니 마음이 다시 안정됐다.


사실 타국을 여행하면서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이방인'인 것이 당연하다. 낯선 존재에 대해 어느 나라에서든 항상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를 했던 것이 잘못일지도 모른다. 같은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은 존재하는데 혼자 여행하는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편견이 이탈리아 원주민 또는 이 나라를 여행하는 다른 외국 관광객 눈에는 불편하게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했던 행동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그런 '짓'을 반복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해 보려 노력하는 것은 오로지 '나'를 위해서이다. 심리적인 공포감에 위축되지 않고 여행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기 위함이다.


앞으로 여행에서도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럴 때마다 주저앉아서 울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훌훌 털어버리고 나는 나의 길을 가야한다. 하루하루가 아깝고 소중한 시간이니까. 

내일은 베네치아 곳곳을 도보로 걸어 다니며 이 신비스러운 물의 도시를 온몸으로 느껴보련다. 단, 몸조심하는 것은 잊지 말아야겠다. 이 곳에서 난 그들에게 '이방인'인 것은 변함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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