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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24. 2019

퇴사 후 유럽 - 체코 체스키크룸로프에서

2018.05.18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만이 아니라 감정이 상하는 '오해'를 낳는다. 


체스키크룸로프로 출발하는 버스 예매를 이른 시간에 해 둔 것을 잊고, 숙소 조식 예약을 해 둔 사실을 어제 늦게 깨달았다. 버스 시간에 맞추려니 조식으로 지불한 금액이 아까워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라도 만들어서 가져가려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조식으로 나온 빵에 치즈와 햄을 끼워서 냅킨에 싸서 나가려는 순간 호스텔 직원이 막아섰다. 내 손에 들린 샌드위치를 보고 음식을 외부로 가져가는 것은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서툰 영어로 버스 시간이 있어서 가져가서 먹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는데 그 직뭔은 뭔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쳐다보며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는 다른 손님을 맞이하러 가버렸다. 그저 샌드위치 하나 손에 들었을 뿐인데 해서는 안 되는 큰 일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분은 버스에 탑승해서도 지속되었다.


체스키크룸로프로 가는 버스에는 승무원이 함께 탑승했는데, 승객들이 자리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무료 헤드폰을 나누어주었다. 헤드폰을 꺼내 사용해 보니 전혀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아 바꿔달라는 요청을 하려고 했는데 내 자리에서 승무원을 부르기가 애매하였다. 할 수 없이 승무원이 있는 앞좌석으로 가서 설명하려고 하는데 내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자리에 가 있으라며 명령조로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는데 언짢은 기분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가시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이 곳의 문화와 규범을 잘 모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탓했다. 간혹 블로그 후기를 보면 호스텔에서 조식 때 제공하는 음식을 막무가내로 싸가는 아시아계 관광객이 있어서 외부로 음식을 가져가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써놓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호스텔과 관련한 후기에는 그런 부분은 없었고 안내 문구도 없었기 때문에 샌드위치 하나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먼저 양해를 구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었을 것이다. 버스에서도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내게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그랬을 수 있다. 그래 그렇게 이해하려고 들면 기분이 나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난 왜 '화'부터 났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너무 한국의 '과잉 친절 서비스'에 길들여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든지, 내가 돈을 지불하는 '고객'의 입장이 되면 서비스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없다. 한국에 살 때는(나 또한 하나의 휴먼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너무 과잉 친절을 베푸는 직원들이 부담스럽고 그 고충이 어떨까를 생각했는데 정말 진심으로 그 사람들을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때문에 한국과 전혀 다르게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유럽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객'이라는 입장에서 평가한 것이다. 그저 그들은 자신의 업무 매뉴얼에 따라 행동한 것일 뿐, 내가 '고객'이라는 사실 하나로 항상 친절하게 웃으며 자신의 감정까지 꾸밀 의무는 없는 것이다.


오전의 언짢은 기분은 체스키크룸로프를 산책하며 조금씩 털어버렸다. 날씨도 좋고, 여행책의 표현처럼 '동화 같은' 풍경에 어느 곳을 돌아봐도 아기자기한 건물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마을이 작아서 한 바퀴 크게 돌고 전망대에서 굽이치는 강물을 바라보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그래도 오래 걸었더니 허기가 져서 강 근처에 위치한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워킹홀리데이를 온 홍콩 여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독일에서 일하고 있는데 휴가를 내서 체코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여학생은 자신이 독일에서 일을 하는 게 정말 좋다고 평가했는데 초과근무도 없고, 휴일이 보장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꽤 만족하면서 워홀을 즐기는 그 여학생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 독일의 근로여건이 좋다면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고 행복할 것 같은데 잠깐 머물렀을 때 느꼈던 독일에서 그런 느낌을 왜 받지 못했을까를 생각했다.

나는 '행복'에 대해서 너무 편협한 시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초과근무가 없고 휴일이 보장된 근로환경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당연하게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주관적이다. 한국에는 없는 것이 유럽에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럽에 사는 모든 사람이 마냥 '행복함'만을 느끼고 사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사회문제가 분명 이곳에도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유럽에 살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도 일상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하며 살아갈 것이다. 많은 것이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사람 사는 세상'인 것은 같다. 결국 어떤 마음가짐과 비전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꼭 내 환경이 바뀌어야 행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항상 마음속에 있다 보니 모든 게 '살아가는 문제'로 귀결된다. 유럽에 오면 그저 유럽이 좋고 여기서 살고 싶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결론짓고 보니 어디에 살든 무슨 상관인가 싶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결정하면 그게 한국이라 할지라도 예전만큼 괴롭고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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