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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26. 2019

퇴사 후 유럽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2018.05.21

잘츠부르크에서 류블랴나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결국에는 눈물을 쏟았다. 김윤아의 '꿈'이라는 노래를 듣다가 맥없이 터져 나와버린 감정들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부랴부랴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서 눈물을 닦아냈지만 소용없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었기에 울음소리만을 겨우 참으며 감정을 추스리기 위해 노력했다.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거운 짐이 되지 / 괴로워도 벗어 둘 수 없는 굴레/ 너의 꿈은 때로 비길 데 없는 위안 / 외로워도 다시 걷게 해 주는 / 때로 다 버리고 다 털어버리고 다 지우고 다 잊어버리고 / 다시 시작하고 싶어"

(김윤아, '꿈' 중에서)


'꿈'이라는 게 뭐길래 사람을 괴로움과 절망 속에 빠지게도 하고, 한편으로는 계속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일까.

여행을 하는 동안 내가 했던 모든 걱정과 고민들이 결국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 '꿈'과 연관되어 있음을 이 노래를 듣고 알 수 있었다. 살아오면서 '꿈'은 긍정적인 결과나 성과로 대표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목표하는 바를 빨리 '이룰 수 있는' 방법에 집착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꿈이라는 건 나에게는 항상 과제였고, 성취하지 못하면 실패했다는 좌절을 안겨주는 성적표 같은 것이었다. 어느샌가 나에게 '꿈'이라는 단어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너무 성급하게 살아왔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그 자리에서 빨리 해결해야 직성이 풀렸다. 빨리 해결되지 않고 나를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일들을 견뎌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해내지 못하면 내가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주위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악착같이 해내며 살았다. 하지만 인생은 주어진 과업이 끝나면 다음 과업이 주어지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저 다 놓고 싶었다. 그리고 난 여기에 있다.


4분 남짓한 노래에 담긴 모든 것이,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를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감정이 북받쳤다. 마음의 답답함을 누군가가 정확하게 읽어내려 준 것 같아서 너무 아프면서도 고마웠다. 이 세상에 나만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기분에 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류블랴나에 도착할 때쯤에는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두 눈은 퉁퉁 부어있었고 마음도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지만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석양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이 평온해졌다. 붉은 햇빛이 부드럽게 도시에 내려앉으면서 온 건물을 물들였다. 사람들은 유유자적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도시에는 소음이 없었다. 이방인인 나를 경계하거나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없어서 긴장도 조금씩 풀렸다. 호스텔에 체크인을 해서 짐을 풀고 천천히 도시를 걸었다.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고 정감이 있는 곳이어서 잠시 이 곳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진지한 생각을 했다. 류블랴나는 정말 좋은 도시이기도 했지만, 한바탕 감정을 폭발시키고 차분해진 내 마음 상태 때문인지 더욱 이 곳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 저녁은 모처럼 아무 걱정과 고민 없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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