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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29. 2019

퇴사 후 유럽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2)

2018.05.22

몸 컨디션이 별로였다. 아무래도 여행이 길어지면서 체력이 떨어지는 것도 있고, 가장 먼저 절약하게 되는 게 식비이다 보니 부실하게 먹어서 더욱 그런 듯하다. 그나마 어젯밤에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아침에 눈을 뜰 때는 피로가 풀린 느낌이었다.


아침에 비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락가락하는 비여서 계획했던 일정을 소화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듯하여 블레드 호수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날씨가 맑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블레드 호수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퍼붓듯이 오기 시작해서 신발과 바지가 몽땅 젖고 말았다. 그래도 비가 와서 물안개가 자욱한 호수 주변을 산책하는 멋도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마음껏 정취를 즐기기로 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고파 식당가를 찾아 나섰는데, 생각보다 먹을게 별로 없었다. 몇 안 되는 가게를 돌아다니며 메뉴판을 살핀 결과 그나마 저렴하다고 생각한 식당에 들어가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두꺼운 바게트 안에 부실한 재료들이 담겨 나온 것을 보고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오늘도 부실한 식사를 마치고, 블레드 호수를 한 바퀴 더 돈 다음에 류블랴나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곯아떨어졌다. 창가로 비추는 햇살에 눈을 떴다 감았다 하다 보니 류블랴나에 도착했다. 다행히 류블랴나에서는 맑게 갠 하늘이 반겨주었다. 맑은 날씨의 블레드 호수를 기대했던 탓에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이것도 추억이라 생각하고 남은 시간은 아기자기한 류블랴나의 정취를 더 즐기기로 했다. 작은 도시를 감싸는 언덕 위에 성이 있었다. 블레드 호수에서 생각보다 일찍 돌아와 시간이 넉넉해서 성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밑에서 볼 때는 꽤 높아 보였는데 천천히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류블랴나를 한눈에 바라보는 뷰포인트를 가려면 성에 들어가야 했는데, 관람료를 지불해야 해서 망설이다 성을 한 바퀴 도는 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산책로를 따라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도시를 바라보는 것도 나름 즐거웠다. 아침에 비가 왔다 개서 인지 더욱 파란 하늘과 오후의 주황빛 햇살을 즐기며 그렇게 걷다 쉬다 다시 걷다 쉬다를 반복했다. 그동안 유럽을 이렇게 맘 편히 걸어 다녔던 적이 있었나 싶다. 처음 오는 도시이지만 낯섦보다는 아늑함이 느껴지는 이 곳을 나는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유럽 여행의 마지막을 동유럽 도시로 결정한 것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이다. 처음으로 유럽이라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막 샘솟았다. 어떻게 해야 이곳에 살 수 있는지, (생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등등이 궁금해졌다. 이틀밖에 있지 않았지만 평화롭고 한적한 도시라는 느낌이 전해졌고, 길을 걸으며 만난 사람들의 표정과 시선도 따뜻했다. 혹시 다음에 다시 유럽 여행의 기회가 있다면 슬로베니아라는 나라 곳곳을 다녀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생겼다. 동시에 오늘이 류블랴나에서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시간과 돈이 여유가 있었다면 좀 더 머물면서 여행하고 싶었다.


이런 아쉬움도 잘 남겨둬야겠다. 한국에 돌아가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내일부터는 크로아티아로 떠난다. 나의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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