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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31. 2019

퇴사 후 유럽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2018.05.23

류블랴나를 떠나는 마지막 날,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아기자기한 풍경들을 조금이라도 눈에 더 넣어두기 위해 천천히 움직였다. 터미널로 향하면서도 자꾸 뒤돌아보며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다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마지막 여행지인 크로아티아로 향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비행기, 버스, 기차 모두 연착이 없었는데 예약된 시간이 다 됐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버스 때문에 애가 탔다. 혹시 터미널을 잘 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검색 포털을 통해 몇 번이고 터미널을 찾고 로드뷰를 통해서도 확인했지만 지금 이 곳이 맞았다. 영어를 못하니 주변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헛갈릴만한 다른 터미널도 없어서 계속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30분이 흘렀을까, 기다리던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다행히 예약한 버스가 맞아서 짐을 풀고 자리에 앉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그나저나 이 곳에서는 버스가 연착되어도 불평하는 사람 하나 없으니 혼자 애가 탔던 시간들이 민망해졌다. 하지만 곧 꿈에 그리던 크로아티아로 향한다는 생각에 민망했던 기억들은 금세 잊혔다.


자그레브에서 일정은 매우 짧았다. 사실 플리트비체를 가기 위해 경유하는 도시로 생각해 둔 곳이어서 일정 계획을 할 때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도시이지만, 막상 도착하니 생각보다 괜찮아서 다음날 일찍 떠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새벽에는 숙소 부근에 큰 마켓이 열린다고 하고, 구석구석 천천히 걸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도 좋을 도시였다. 다행히 오후 늦은 시간까지 해가 지지 않아 여행책자를 보며 아쉬움을 달랠 만큼의 관광을 할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밀린 빨래를 하고, 부쩍 더워진 날씨에 반팔도 2개 구입하였다. 


크로아티아로 오니 시간이 더욱 빨라진 느낌이다. 그리고 남은 여행 일정만큼 통장 잔고도 빠르게 바닥을 보이고 있다. 자연스럽게 생계 압박을 느끼며 몸은 유럽에 있지만 마음은 잠시 한국에 다녀왔다. 구직사이트를 검색할 뻔한 욕구를 간신히 억누르며 얼마 남지 않은 여행에 집중하자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사실 새벽에 뜬금없이 내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했다는 아빠의 전화를 받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이유도 있다. 엄마에게만 퇴사 소식과 장기 여행을 통보하고 차마 아빠까지는 설득하기 힘들어 그냥 떠나왔는데, 이렇게 내 퇴사 소식을 알리게 되었으니 한국에 가자마자 취직을 빨리 해야겠다는 압박이 느껴졌다. 당장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생각과 불안,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빨리 털어버렸다. 남은 여행을 접고 돌아갈 것도 아니고, 그렇게 기대했던 크로아티아에서 우울해지기는 정말 싫었다. 


이 곳에 오기까지 정말 긴 시간이었다. 30대에 퇴사를 하고 긴 시간 유럽으로 여행 올 줄 누가 알았던가. 그 계획이 실행됐고, 그 끝을 향해 지금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여행을 했던 모든 순간이 늘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때론 불안하고 피곤하고 외롭고 쓸쓸하기도 했다. 여행을 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좋아하는 일도 결국 양면이 존재한다는 당연하지만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 몰랐을 이치를 깨달으며 한국에 돌아가서도 좀 더 삶을 여유롭고 긍정적이게 받아들이며 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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