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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마망 Mar 28. 2022

결혼이라는 시소에서 우리는


코로나로 주변 사람들의 안부 소식이 뜸해졌다.

어쩌면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면서 더 뜸해진 것일 수도 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처럼 잘 지내냐고 결혼생활은 어떠냐고 담에 얼굴이나 보자고  말했는데 무덤덤한 목소리로 친구가 말했다.


"나 이혼했어."

"어? 언제?"

"완전히 정리한 건 1년 되었지."

"... 너 괜찮니?"

"오히려 더 좋아. 그동안 내가 너무 불쌍했는데 이제 좀 나답게 살고 있어."


친구의 연애사는 뜨겁다 못해 화끈했고 친구들은 부러워했었다.

29살, 봄꽃처럼 화사하고 달달한 연애를 하고 서른에는 뜨겁게 사랑을 했었다. 그들이 한번 헤어졌을 때는 남자를 잊지 못해 울음을 감추려 1년을 꼬박 술과 함께 보내었고 참다못한 친구가 보낸 문자 하나에 남자는 새벽에 집 앞까지 달려와서 '고맙다'며 힘껏 안았다. 헤어진 1년 동안 친구의 연락만을 기다린 남자는 순애보의 대명사였다. 서로의 절절한 사랑을 확인한 그들은 그렇게 결혼을 했다.

그랬던 친구가 나의 집들이 파티에서 '섹스리스'를 말했다.


"나 얼마 전에 결혼 3주년이었어. 근데 잠자리를 안 한 것도 곧 3주년이야."

"여러 번 대화를 했지만 이유는 없대. 그냥이래."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서 곧장 집으로 온 남자는 저녁밥을 먹고 치운 뒤 작은 방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서 밤이 늦도록 게임만 한다고 한다. 연애 때도 함께 PC방에서 게임을 할 만큼 게임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오늘만 저러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남자는 1년을 꼬박 작은방에 나오지 않았다. 친구가 잠들고 나면 한참 뒤에 잠을 자려 왔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섹스리스가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나 작은방 문을 잠가버리기도 했지만 더 나은 결과는 없었고 결혼한 지 2년쯤 되었을 때 아이를 갖고 싶은 친구는 또다시 남편과 부딪혀야 했고 이런 사정 모르는 시어머니는 틈만 나면 손주 타령을 하였고 용하고 귀한 한의원의 한약을 매달 꼬박꼬박 보내주셨다.

쌓여 가는 한약을 보면서도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의미가 점점 옅어가면서 친구도 퇴근 후에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고 약속이 없더라도 최대한 늦게 집에 갔다. 남자는 여전히 작은방에 앉아 있었고 친구가 누운 뒤에야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왔다.

친구가 외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집에 들어갔을 때 연락 한통 하질 않고 여전히 작은방에 앉아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이 날 처음으로 이혼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남자의 행동에 우리 모두의 목구멍에는 욕이 가득 차 올랐지만 꾹꾹 누르며 친구에게 위로를 해주었다. 이때 우리가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대화'였다. 남편과 대화를 계속 시도해보고 해 보라는 말 밖에 없었다.

집들이 이후 1년쯤 지나고 다른 친구의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다 같이 만났다. 나는 곧 출산을 앞두고 있었고 다른 친구들은 남자 친구가 생겼거나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간다며 소식을 전했다.

그 친구는 그때도 무덤덤하게 말했다.


"애들아, 나 이혼할까 봐!"

"야!"


쉽게 이혼을 내뱉는 건 아니라고 너도 밖으로 돌지 말고 일찍 들어고 이야기를 많이 해보라며 아무 도움 안 되는 말들로 너도 나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땐 몰랐다.

친구는 절대 쉽게 이혼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고작 섹스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 못하는 나는 결혼 새내기였다.


친구는 생각보다 어렵게 이혼을 했다. 남자는 처음에는 흘려 들었고 눈앞에 이혼 서류와 캐리어를 보는 순간 현실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며 친구를 놓치지 않으려 꽉 잡았지만 친구는 이미 돌아섰다. 무관심 속에 색이 바래진 결혼 생활을 남자는 이제 와서 다시 시작해보자고 잘하겠다며 혼자 외쳤다. 이 사정 또한 모르는 시어머니는 어김없이 손주 타령을 하였고 친구는 시댁 가족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잘난 아들이 집구석에서 10대 미친놈처럼 게임만 해대고 있는데 손주 같은 소리 그만하세요.'라고 질렀다고 한다.

절대 이혼은 안된다는 남편과 시댁에게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 주고 친정 가족들을 설득하고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함께 준비한 신혼집이 팔고 각자 살 집을 찾고 조정 기간을 거쳐 완전한 이혼을 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그나마 둘 사이에 아이가 없어서 빨리 끝난 것이었다.


이혼하기까지 1년 동안 많은 말과 생각이 오고 가면서 진짜 이혼의 사유를 깨달았다고 한다.

처음은 단순히 스킨십으로 시작했지만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부부의 거리를 좁힐 수 없었고 기울어진 결혼의 무게를 혼자 견뎌야 되었던 친구는 지쳤고 남자의 무관심에 입을 다물었고 마음에서 결혼은 지워졌다.

매일 밤늦게 집에 들어가던 친구는 문득 집 아닌 집에 왜 가야 되는 걸까 생각했다.

애써 잊으려 했던 답답한 현실을 굳이 확인하려고 집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내가 제일 후회하는 건 왜 3년이나 버티다가 이혼을 했을까야."

"날 제일 아프게 한 사람은 바로 나더라고."


무관심의 3년 동안 나 스스로를 아끼지 못하고 버티기에만 급급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더 많이 울었다고 한다. 오히려 혼자인 지금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 주고 있다고.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결혼의 마지막은 백년해로일까, 졸혼일까, 이혼일까.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더라도 서로의 무게 중심이 맞지 않으면 한 명은 공중에서 영영 내려 올 수도 없고 또 다른 한 명은 바닥에 앉아 있기만 해야 된다. 함께하기 위해 연신 제 엉덩방아를 찍으며 시소 놀이를 계속 이어가지만 이를 모르는 상대방의 무관심과 이기심에 마음이 무너진다. 서로 쿵작이 맞지 않은 시소가 재미있을리 없으니 누구 한 명은 이제 그만 내리겠다고 말한다. 노력의 무게 중심이 맞지 않으면 우린 결혼이라는 시소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결혼의 시소에서 무게 중심이 맞으면 가장 좋은 단짝이겠지만 조금의 차이는 위치를 이동해서 중심을 맞출 수도 있다. 내가 조금 재미가 덜 하더라도 오늘 하루는 엉덩방아를 계속 찍어줄 수 있다. 하지만 내일도 모레도 계속 나만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시소는 멈출 수 밖에 없다.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이고 나를 가장 많이 아껴줘야 되는 사람도 나 자신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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