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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마망 Apr 05. 2022

흩날리는 마흔의 벚꽃


봄이 되었다.

주말 아침, 아이가 가고 싶다던 놀이공원으로 가는 중이었다.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큰 포클레인이 보여서 아이에게 말해주려던 찰나, 저긴 묘지였다.

포클레인 주변에는 검은색 상주 옷을 입은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서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도로를 지나다니며 묘지는 많이 보았지만 지금 막 장지에 도착한 사람들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아니 이제야 눈여겨보았다가 맞는 것 같다.


"자기야, 저기 묘지에 포클레인이 있어."

"어? 그러네."

"이렇게 지나가다 땅에 묻는 걸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

"그런가, 나도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난 요새 죽는 게 무섭다는 생각을 해. 뭔가 다가오고 있는 그런 느낌."

"그렇지 반 평생을 살았으니깐, 이제 반 남았으니깐 더 잘 살아야지!"


마흔이 되기 전 나는 어제 보다는 내일,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기대로 오늘을 바쁘게 빠르게 흘러 보냈다.


'내일 뭐하지' '이번 여름휴가 때는 어디로 놀러 가지'

'올해 저금 많이 해서 내년에는 미국 가야지' '이직을 하려면 토익 공부라도 해야 되나'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던 그때의 나에게 무한한 내일이 있기에 오늘이 아쉽지 않았고 어제 일은 블로그에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은 자고 일어나면 어제가 되는 오늘이 지나가고 있음에 아쉽고 벌써 밤이 되었다며 우울감이 몰려오기도 한다. 나의 수명이 언제까지인지 알지 못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내 하루가 하나씩 없어지고 있음이 느껴지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우리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시한부 인생이었음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는 마흔이다.


그리고 40년 동안 아프지 않고 평범하게 잘 살고 있음이 제일 큰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남은 40여 년을 지금처럼만 평범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계절의 바뀜이 어린아이처럼 마냥 설레기보다는 지나간 계절이 아쉽고 아쉬워진다. 


지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엄마는 5년을 넘게 하루 반을 누워서 생활하고 계신다. 예전에는 아픈 엄마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요즘은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잠깐이나마 엄마가 되어 생각해본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매어지고 눈물이 흘렀다.

어느 날 엄마의 손을 잡고 함께 침대에 누워서 봄이 오면 벚꽃 보러 가자고 말했다.


"엄마, 잘 먹고 운동 많이 해서 봄에 벚꽃 보러 가야지!"

"벚꽃 피려면 얼마나 남았노?"

"지금 1월이니깐 2달 있음 피지. 곧 이야!"

"한참 남았네, 니나 많이 봐라."


그땐 몰랐다. 엄마는 왜 봄을 기다리지 않는지.

나보다 더 느리게 가는 엄마의 시간으로는 봄은 까마득히 멀리 있었다. 엄마는 자려고 눈을 감을 때 제일 무섭다고 말했다. 이대로 내일 아침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만나지 못할 수 있는 내일 아침이 엄마에게는 제일 먼 미래라고 말했다. 그러니 한 달이나 지나야 오는 봄을 기다릴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벚꽃을 보지 못했을 삶의 아쉬움을 덜어내기 위함이 아닐까.

다행히 엄마는 올해의 봄을 맞이했다. 그리고 지금은 여름을 기다린다 말하지 않는다.


나에게 봄은 몇 번 남아있을까.

아이는 키가 이만큼 커서 오늘 타지 못한 놀이기구를 다음에 꼭 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빨리 여름이 되어서 물놀이를 하고 싶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가서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 봄이 아주 천천히 지나가길 바란다.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그래도 봄이 지나가는 것은 아쉽다.

활짝 핀 꽃을 보면 나의 젊은 시간을 보는 것처럼 미소를 짓다가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면 지금의 나 같아서 붙잡고 싶은 마음에 사진으로나마 간직하고 싶어 진다. 엄마가 꽃 사진을 왜 그렇게 많이 찍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마흔이 되서야 비로서 지나가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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