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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Jun 06. 2022

우리가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이야기하는 것

되짚어본 옛사랑

이상하게도 한 사람과 했던 사랑과 이별에 대해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상황이 많았다.


한 달여 전, 생뚱맞게 혼자 와인을 뜯어 마신 사촌동생이 친정집에서 찾아내었다는 연애편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다 정리하고 몇 통 안 남겼다는 말에 있는 힘껏 안타까워하며 ‘그걸 왜 버려! 다음에 나랑 같이 와인 까며 읽지!’ 둘이서 신이 나서 낄낄 댔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이 거사가 빨리 이뤄지긴 힘드니 친절한 자매님은 친히 기억을 공유해주셨고, 어린 시절, 적은 터울과 다른 성격 탓에 몇 번이나 아웅다웅했던 자매님의 연애편지를 랜선으로나마 읽게 된 것이 감격스러웠다. 한 문장, 단어 하나하나에 요절 복통하던 끝에 자연스럽게 내가 연인과 주고받았던 많은 편지 얘기가 나왔다. 나는 그 편지들은 결코 지금처럼 웃으며 읽을 수는 없을 거라고 짐짓 심각한 말투를 했다.


 꽉꽉 채운 글씨로 일곱여덟 장을 채워 교환했던 편지의 정확한 통 수는, 정확히 세보지는 않았지만 내게 있는 50 여 통 가까이를 생각할 때, 아마 같이 합 한다면 100통 여가 될 것이다. 1통 당 7장을 평균으로 하고 100 통이면 아마 700 장 가득 우리의 이야기가 적혔던 기록이 있는 것이다. 누구한테도 한적 없던 이야기를 가슴을 가득 채운 한 사람에게 꾹꾹 눌러 전하던 마음.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이어졌던 전화통화로 이미 일상은 충분하게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편지에는 언젠가부터 여러 가지 어지러운 상념과 과거의 기억들이 담겼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충분히 미래에 대해 꿈꾸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게 이유였을까?


이중섭


한국을 방문했던 작년 여름에 방구석에서 끄집어내서 저녁 늦게 읽기 시작했던 편지를 동이 터 올 때야 겨우 다 읽어낼 수 있었다. 그중 어떤 이야기들은 너무 소중해서 읽자마자 쑥스럽게도 그만 목이 꽉 막혀왔다.  그의 이 이야기를 또 누가 이렇게 나처럼 읽어낼 수 있을까. 알록달록한 편지지에 써내려 진 마음들을 다시 읽는 내내, 아무도 읽어주지 않은 쓸쓸하고 늙은 책의 등을 자꾸만 쓸어내리는 기분이었다. 아마 처음 읽을 때의 내 마음은 지금의 이 기분과는 너무나도 다른 무엇이었겠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려나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편지를 읽게 될지를. 아마 누군가를 다시 그런 농도로 알고, 나라는 사람을 누군가에게 온전히 알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다고 언젠가 친구에게 말한 기억이 있다. 잘은 모래알 같은 그의 어떤 사소한 기억도 편지는 확대경이 되어 비춰 보여줬고 내가 본 적 없던 그런 그의 순간에 내가 글로 동행할 수 있었어서 좋았다. 몰랐던 과거마저 같이 하는 기분이었기에. 아마 그런 희귀한 나눔의 사랑은, 다시는 어렵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내 이야기들도 어딘가 그때의 그 종이 위에 살아 있을지 이미 사라졌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내게 그런 기록이 있다는 것으로 남겨진 기억에 커다란 위안이 되는 걸 발견했고, 소중히 간직하기로 이미 마음먹었다. 사촌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영원히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나를 울게 하고 웃게 할 지난 사랑의 유일한 유산.


이중섭


 두 번째는 이주 전쯤 영어시험을 보러 멀리 다녀오던 차 안 이었다. 동행한 사람들이 뒤에서 곯아떨어지고 조수석에 탄 친구와 꽤 긴 시간을 지나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차 안에서 세상모르고 잠드는 사람들 얘기를 하다가 였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렇게 좋은 기억이 많다면 왜 다시 만날 생각은 없는지 그런 시시껄렁한 문답을 하다가 확고한 마음을 입으로 소리 내서 말할 기회가 있었다. 어차피 아무도 지금은 내게 궁금해하지 않고 말하기도 새삼스럽지만 다시 만날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게다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또 한 번 이 사람을 만난다는 결정을 할 것 같지 않다.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라. 돌아간다 해도 그 사람과 그 시간들을 보낼 것 같지 않다.


 분명 소중히 여기는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지만 당연히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그때의 나와 그 사람은 그때에 우리였기에 가능했던 조합. 지금 다시 변질된 이 둘을 함부로 한 공간에 넣어 섞으려 한다면 아마 그때 와는 전혀 다른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말 것이다. 분명 아름답지 않은 반응일 거라는 예상이 있다.


이중섭

 세 번째가 오늘이었다. 나와 그 사람을 잘 어울렸다고 말할 정도로, 멀리서만 우리를 본 적이 있던 이 친구와는 이상하게 얕지도 않은 깊은 이야기를, 요새 꽤 자주 하는 사이가 됐다.  친구라기보다는 그저 안면이 있는 사이였던 우리가 ‘친구’로 여겨진 것이 한순간이었다. ‘그래. 맞아. 우리가 좀 잘 어울렸지. 한쌍의 바퀴벌레였지’ 나는 짐짓 자랑스러움을 가장하여 농으로 그 말을 받아쳤지만 내심 놀라고 기뻤다. 사랑의 기억이 자취가 되기 전에 주변 사람들한테 참 보이지 않아야 할 모습도 많이 보였어서, 그렇게 우리를 예쁘게 기억해주는 이가 어딘가 있었다는 게 신기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때의 우리가 아직 예쁘게,  잘 어울리는 커플로 살아 있었구나. 참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싶었다.


이중섭

 누구보다 잘 안다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정확히 왜 우리가 헤어졌는지 알지 못하지만 계속 이어졌다면 이번 달 말이 우리가 만난 지 13년째가 되는 봄날이 되었을 거다. 청계천 변을 살짝 떨어져서 걷던 두 사람이 조금씩 가까워지다가 마침내 마주 잡았던 손도, 찬란한 여름, 선릉 어딘가의 나무 그늘에서 활짝 웃던 너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도 생생하지만 처음 보는 표정으로 나를 칼 끝에 찔린 것만큼이나 아프게 했던 뷰파인더 속의 너의 변한 눈빛도, 다른 기억들만큼이나 또렷하다. 헤어짐이 10년 차가 된 오늘에도 가슴 한편이 아릴 정도로.


 모쪼록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길. 가끔 웃고 울게 해 줄 기억이 되어줘서 진심으로 여전히 고맙다. 삶의 건조함에 약이 되어줘서. 왜 이런 주책 같은 기록을 굳이 남기는지 나도 잘 알턱이 없다만 얼마 전에 누군가 작가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좋은 글을 쓰고 싶거든 첫사랑의 기억부터 쓰라고. 입의 말로 형용 못할 가슴의 이야기를 어설프게나마 글로 풀어낼 수 있을 때, 그에 열중할 수 있을 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그래. 아마도 내가 지금부터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가 보다. 그렇다고 치자.


 *한창 달아오르기 시작한 연애감정으로 달궈져 있던 그 여름날, 혼자 지내시는 제주 친척 어른댁에서 일주일 정도를 지냈었다. 그때 찾은 이중섭 미술관에서 많이 알려져 있던 그 어떤 작품보다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중섭의 위트 넘치고 다정한 연애편지들과 껌종이에 끄적인 작은 낙서와 그림들이었다.


(2021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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