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만난 그곳
브릭레인에서 센트럴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할 예정은 없었다. 하지만, 도넛을 먹으며 가게 창 너머로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 멈춰 서던 버스의 행선지가 너무나도 낯익은 목적지였다. ‘Tottenham Court Road’. 현재 한국인들에게 토트넘은 손흥민 선수 덕에 꽤 익숙한 명칭이지만, 내게 토트넘은 손흥민 선수보단 추억이 깃들어져 있는 곳이다. 런던 살 때 내가 자주 방문했던 곳이었기에.
그렇게 다시 밟은 런던 땅에서 다시, 빨간 2층 버스에 올랐다.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안내 음성과 다시 느껴보게 된 기사님들의 스무스 한 드라이브 스킬. 내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가길 기다리고서야 출발하는 런던 버스 드라이버님들의 배려에 4년 전에도 했던 감탄을 오랜만에 다시 흘리며 2층 버스 한켠에 자리 잡았다. 이 공간, 이 분위기, 이 스쳐가는 장면들, 지난 4년간 참 그리웠는데..
런던 버스만 타면 유달리 떠오르는 장면하나가 있다. 때는 아마 2014년 4월 즈음이었을 거다. 한국의 봄만큼 화사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겨울 내 우중충하고 습한 날씨만 보이던 런던에 그래도, 화창한 날이 지속되는 일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다른 계절보다 더 글루미 했던 겨울을 걷어낼 채비를 마친 풍경이 여기저기 드문드문 드러나던 그 시기, 내 마음에는 유학생들에게 찾아온다던 3개월 텀의 슬럼프와 향수병이 동시에 찾아왔다. 내 속으로 걸어 온 두 가지의 마이너스는 따뜻한 봄 햇살의 힘을 부스터 삼아 피어나는 들판의 들꽃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었다.
영어가 늘지 않아 생긴 답답함과 조급함, 두고 온 나의 조국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 한 데 뒤섞인 채 당시의 나를 방황케 했다. 그 탓에 내 마음은 방에만 갇혀 있기보다 바깥으로, 사람들 틈으로 섞여 들어가 외로움이라도 덜어라하며 나를 이끌었고 시간이 날 때 마다 나는 친구들과 혹은 혼자서라도 수백의 군중 속으로 비집고 들었다. 혼자서 사람 많은 센트럴로 갈 때마다 이용했던 게 집이 위치하던 Finchley Central에서부터 Victoria 역까지 운행하던 2층 버스였다.
대략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코스로 그 시간, 그 공간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존재할 수 있되 혼자만의 포근한 영역까지 두루 가질 수 있는 딱 좋은 공간이 되어주었다.
런던에서 떠난 후 4년을 보내던 나는 꽤 때도 많이 묻었고, 꽤 속물이 되었고, 꽤 잔꾀도 부릴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는데, 노래를 얹어서 바라본 런던은 여전히 아름다웠으며 변함없이 감성 충만한 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문득, 4년 전 그래도 꽤나 순수했고, 꽤 열정적이었고, 꽤 꿈 많던 그때의 내가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