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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E Jun 19. 2019

07 :: 이른 아침, 도시 풍경

다시만난 그곳

 머리 위로 드리운 런던의 하늘은 잿빛 하늘이었지만, 반가웠고, 오랜만에 마주하는 풍경에 가슴 뛰기 시작했다. 눈에 익은 길거리는 여전했고,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하는 그때의 익숙함을 동행 삼아 기억을 더듬어 발길을 옮겼다. 



내 걸음이 향한 곳은 옥스퍼드와 리젠트 스트리트 방면이었다. 센트럴 중에도 런던의 가장 번화가이자 유명한, 소호거리를 먼저 가고 싶었던 탓이다. 그렇게 마음이 이끄는 쪽으로 향하는 센트럴은 런던만이 가진 연말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려 주는 야경 조명이 머리 위를 둥실 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나처럼 하루의 시작을 서두른 관광객들이 드문드문 보일 뿐, 런던 시민들의 모습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언제 또 이렇게 한산한 런던 센트럴을 누비어 보겠나 싶은 생각에 시차적응 한답시고 이른 새벽부터 눈을 띄워준 나의 생체 신호에 감사해졌다.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골목길로 방향을 틀어 소호거리에 닿았다. 여기저기 낯익은 가게들이 보였다. 영화 ‘SHE’의 배경 지이자 형형색색의 건물로 관광객들의 주요메카인 ‘노팅힐’에 본점을 두고 있는 ‘허밍버드 베이커리’도 보였고, 그 바로 옆 화려한 디저트들로 자뭇 여성 관광객들의 입맛을 돋우는 ‘LETO’카페도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일본인 친구 사오리와 대만인 친구 클레어와 함께 찾았던 멕시칸 음식 점'CHIPOLE’도 이른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자 하는 관광객들과 회사원들의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기 위해 이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진한 그리움으로 남아 머물던 거리를 거닐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모르고 지나쳤던 장면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한 감동이 다시금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내가 ‘다시 런던에 왔구나!’



 그리웠던 공간으로의 회귀 그 두 번째 거리는 ‘카나비 스트리트’였다. 이곳은 런던 어학연수 시절, 나의 쇼핑 메카였던 골목으로 그 어떤 골목보다 나에게 꽤 감명 깊은 곳이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이곳은 1960년대에 런던 패션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많이 탄생했던 거리라고. 


내가 이곳을 방문하게 된 건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그때 난 사람들로 붐비는 옥스퍼드 스트리트와 리젠트 스트리트에서 숨통을 트이고자 옆으로 틀었을뿐이었는데, 그때 딱! 노다지를 발견했다. 꽤나 유니크 하면서도 트렌디 한 골목이 한산함을 자랑하며 숨어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 골목을 마주 했을 때는 마치, 멍하게 길을 걷다가 검은 아스팔트 위에서 오만 원 권을 발견했을 때와 유사한 감정이었다. 예기치 못한 횡재를 한 기분. 딱 그 감정이었다.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고 시끄럽게 웅성이던 길 위에서 벗어나 숨통 트이는 길을 거닐 수 있어 좋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나의 쇼핑 장소를 발견했다는 데에 대한 쾌감도 일었다. 그 때의 그 우연하고도 행복했던 만남을 떠올려 보며 2018년 연말의 카나비 스트리트를 보는데, 4년 전과는 또 다른 분위기에 마음 저 깊은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탄성을 지르게 되었다.      

“역시, 런던은 야경 천재구나...”



 전 세계 박스오피스 흥행을 이어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영국 최고의 록밴드 Queen이 재조명을 받고 있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 카나비 스트리트의 길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를 활용한 야경 조명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SOHO’를 활용해 만든 신선한 언어유희까지! ‘SO HO HO HO HO’로 장식 된 길에는 마치 산타할아버지가 금방이라도 강림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했다. 이 신선한 조합에 가만있을 순 없어서, 오늘만은 이곳에서 지갑은 넣어 두고 대신,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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