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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E Jun 20. 2019

08 :: 그때 그대로

다시만난 그곳


아름다운 건, 그 때 그 대로 그 기억이 나을지도...


 2014년 4월, 막 썸머 타임제로 들어간 유럽은 매일이 환했다. 



 하지만, 햇빛 쨍한 봄기운이 런던 여기저기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을 그 시기, 화창한 런던 분위기를 채 만끽하기도 전에 나는 런던에서 꽤 시린 이별을 겪어야 했다. 일본인 친구 사오리를 다시 고국 땅으로 내줘야 했던 것이다. 겨울 내 웅크리고 있던 꽃망울들이 따스해진 빛을 양분삼아 자라 날 때, 나는 헤어짐이라는 헛헛한 과정을 통해 그렇게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본래 사람이 나고 듦에 인해 생겨난 공허함은 다시 사람의 인연으로 달래는 법이랬다. 사오리를 보내고 한껏 공허해졌던 마음을 다시 채우고자 나는 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시간을 채워가고자 했다. 그 즈음 내가 친구들과 닿았던 곳이 바로, Holland Park다.



 Holland Park는 휴 그랜트와 줄리아로버츠 주연인 영화 <SHE>의 주요 배경지이자 파스텔 톤의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만드는 아름다움에 관광객들의 인생 샷 남기기에 적절한 스팟인 노팅힐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어떤 연유로 국가 네덜란드를 지칭하는 Holland라는 이름을 딴 공원이 런던에, 그것도 도심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걸까? 했는데 알고 보니 17세기 홀랜드 공작부인의 집이었다고. 



버로우 지역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알려진 이곳은 내가 런던에서 봤던 공원 중 그 어떤 곳 중에서도 정원 관리가 굉장히 잘 되어 있었다. 정원 내 꽃 관리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놀이터, 정원 별 컨셉에 따른 분위기 관리 및 홀랜드 파크 내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 시설까지! 더군다나 친구들과 내가 나들이 왔던 당시, 구름도 미세먼지 조차도 없던 말 그대로 ‘새애파란 하늘’에 완연한 런던의 봄기운이 우리를 물씬 감싸고 돌던 때였다. 



2014년 봄, 그날의 Holland Park는 이곳이 정말 지상낙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활기찼고 화사로웠다. 사오리를 배웅해주던 날, 공항에서 펑펑 울며 비워냈던 밝음의 감정이 그날 내 시야에 담기던 Holland Park만의 매력으로 다시금 흠뻑 채워지고 있었다. 


그때, 그 좋았던 날의 기억으로 언젠가 런던 가면 다시 꼭 가야하는 장소 중의 하나가 되어 있던 Holland Park. 그리고 때가 왔다. 선민이와 합류하면 그때 같이 가야지 했다가 홀로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다 시간이 남았던 덕에 결국 좋은 걸 빨리 보고 싶다는 조급증을 참지 못하고 혼자서 방문해 버렸다. 선민아, 미안.


 

 2014년 그 날의 감정을 고스란히 밟아 가며 홀로 찾은 Holland Park. 허나 내 기억에 왜곡이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그 한 조각의 장면들을 얼기설기 잘 못 엮어 둔 것인지... 그 토록 그리워했던 장소였건만 2018년 연말, 내 눈 앞에 담기는 공원의 장면은 파릇하기 보다는 거무튀튀했고 내 발에 밟히는 촉감은 바삭이는 새싹이기 보다는 질펀한 진흙이었다. 그리고 내 주변을 감싸고 도는 분위기는 메말라가던 꽃잎마저 되살릴 것 같은 활기참이기보다 그저 쭉 말라 비틀어져버린 삭막함, 그 자체였다. 

 


그래, 때로는 아름다웠던 기억은 그저 그때의 좋은 기억으로만 묻어두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아마 그 문장이 런던에서 보내던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저물어가던 그날 오후, 내가 갖게 된 마음을 대변해 주는 문장이지 않을까.



 “그래도 노을은 어디서 보든 예쁘네...”

하고 얼버무리듯 곱씹으며 하늘을 보는데, 마음 한켠에서 얼른 내일이 되어 선민이가 왔으면... 하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혼자서 하는 여행 꽤 좋아하긴 하는데, 이 날 하루 온전히 혼자만의 유럽의 시간을 걷다보니, 연말 유럽의 틈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은 꽤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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