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경 Nov 05. 2024

새로운 시작에 주눅 들지 않기

내년이면 30대 후반이 된다. 아직 중후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올해 이민이라는 첫 발을 떼었지만, 아직 어학원을 다니면서 최소로 요구하는 어학원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첫 발자국을 남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새롭게 덴마크에서의 삶을 생각하면서 걱정이 되었던 것은 나이에 대한 거였다. 내 나이가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시작을 하는 어린 나이가 옆에 놓여 있을 때 내가 여전히 내 나이를 긍정하고 지나간 삶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예컨대 당신이 30대 후반인데 어학원에서 20대 초반을 만났다고 해 보자. 당신과 같은 비자이며, 해외 이민을 빠르게 결정했다. 우리는 둘 다 이 나라 언어로 옹알이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 이 나라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때 그녀는 당신보다는 더 많은 기회를 쥐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에게서 내 나이를 여전히 긍정할 수 있을까.


영포티니 뭐니 하면서 연예인의 활동 연령대가 올라간 탓에 여전히 활발하게 시대의 아이콘으로 살아가는 4050 연예인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들이 인터뷰를 하면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20대는 너무나 큰 부침이 많았고 그런 파도들을 헤쳐가느라 힘겨웠다고. 현재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삶이 좋다며 본인의 나이를 긍정하고는 한다.

나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 20대가 주는 에너지가 부러울 때도 있지만, 나 자체의 20대를 생각해 보면 너무 어두운 터널을 끝도 없이 걷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그 긴 터널을 지나 내 나름대로의 성취를 이룩한 30대 중반의 내가 나는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현재의 본인이 자랑스럽다는 사람들도 해외에 나와서 ABC부터 배워야 한다면 본인이 쌓아왔던 것은 한국에서의 한정이라는 걸 깨달을 것이다. 나름 유명한 연예인도 해외에 나오면 단역 엑스트라부터 시작해야겠지. 본인의 삶을 모두 초기화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시작 앞에서 나는 과거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수확해 현재에 써먹을 수 있을까?


이건 비단 해외에서의 시작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의 새로운 기회와 도전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60살에 회장님 소리를 들으며 은퇴했으나 노후에 맥도널드 아르바이트생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던가.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은 유한하며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쏟아지는 모래성을 애써 유지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야, 내가 2030 청춘을 바쳐 쌓아 올렸던 것들이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인생에 앞으로 몇 번의 리셋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필드에서 시작한 사람들과 나이로 비교하게 되면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해질 것이다. 덴마크에서의 이민으로 따지면 20대가 나보다 시작이 더 빠른 것 같고, 나는 이미 늦은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저 사람은 또 어딘가에서 내 나이대에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해서 30대 중반에 한국어를 배워야 할 수도 있겠지.


각자의 삶은 다르고 시작점도 장소도 모두 다르다.

내 시작이 지금 여기쯤이라고 해서 내가 뒤처져있는 것은 아니지.

세상은 둥글고 시작점을 찍을 위치는 지구본 위의 3차원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내 이름, 민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