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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미 Oct 19. 2023

엄마의 죄의식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거야!(4)

여전히 남편의 퇴근은 아이가 잠든 후에 이루어졌다. 홀로 하는 육아가 길어질수록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날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희미해졌다. 나는 형편없는 엄마야. 그만한 일도 참지 못하고 저렇게 작은 아이에게 화를 내 버리다니. 내 고함이 아이에게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끼쳤을까. 왜 이렇게 감정조절에 미숙할까. 



죄의식은 불안을 불러왔다. 내 아이를 누구보다도 잘 키우고 싶은데, 그러고 있는 것인지 자신이 없어졌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재워놓고 육아 인플루언서의 블로그나 소아과 전문의의 유튜브를 들여다보면, 죄책감이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나는 늘 블로그 속의 엄마들보다 이유식을 잘 만들지 못하고 정리정돈을 잘 하지 못했다. 소아과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들쭉날쭉 잠을 자고 스스로 먹지 않는 나의 아이는 다 내가 교육을 잘못해서 그런 거였다. 



입이 짧은 아이는 영유아 검진 때마다 몸무게를 늘려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단백질 위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올 때면 어깨가 떨어졌다. 아이가 잘 먹지 않고 몸무게가 평균 이하인 것은 모두 엄마인 내 탓 같았다. 그런 날에는 아이 입에 억지로 밥을 밀어넣고 뱉는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잘 먹고 잘 자며 ‘평균’에 맞게 성장하는 나의 아이는 내가 육아를 잘 해냈다는 ‘성과물’이었던 것이다. 



우연히도 오래전 친구가 추천해주어 책장에만 꽂아두고 읽지 않았던 책을 꺼내보게 되었다. 김경림 작가의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희귀암에 걸린 아이를 돌보며 엄마가 느낀 솔직한 감상들을 쓴 에세이인데, 읽으면서 몇 번이고 멈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글쓴이의 뼈아픈 경험을 녹여낸 것이라 책은 금세 밑줄로 가득해졌다. 그만큼 나에게는 존경스러운 선배 엄마의 육아 조언으로 들렸다. 하루하루에 대한 감사함과 살아있다는 축복을 담담히 고백하는 글은 이전에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보던 육아정보와는 달랐다. 고작 밥을 좀 안 먹는 아이로 인해 생긴 마음의 괴로움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육아를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녀의 조언은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100점짜리 엄마에 대한 기준은 모두 다를 뿐 아니라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육아는 없다는 것. 아이는 ‘엄마가 잘 키워내는 존재’가 아니라, ‘엄마의 지지를 받으며 스스로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 그녀는 ‘엄마는 무언가를 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웃고, 함께 꿈꾸는 사람이다’ 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내게 ”너는 언제 진짜 ‘엄마’라고 느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순간을 꼽을 것이다. 차가운 병원에서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링거를 주렁주렁 단 채 일주일이 넘게 침대에 누워 있는 현실이었지만, 아이와 나는 함께 병 너머의 삶을 꿈꾸었다. 그 순간, 나는 아이를 ‘더 잘’ 키우려는 욕심도 없었고, 아이의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든 덜어 주려는 마음도 없었다. 평소에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들, 언제 아이가 먹을 수 있게 될지, 언제 수치가 올라 퇴원을 할지 혹은 아이의 눈이 더 잘 보이게 될지 어떨지, 결국 병이 나을지 아닐지를 전혀 떠올리지 않았다. 그 순간, 그저 아이의 존재를 온전히 느끼며 함께 꿈꾸었다. 아이 옆을 떠나지 않았고, 아이와 함께 같은 호흡으로 숨 쉬었다. 아이가 웃을 때 같이 웃었고, 아이가 행복해 하는 장면에서 함께 행복해 했다.                 

  -김경림,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조그맣고 말간 아이에게 뭐 그리 교육할 게 많은지. 수면교육, 식습관교육, 패턴형성 등 해야 할 과제는 많았고 나는 항상 부진아였다. 아이가 잘 먹지 않는 것은 이유식 입자를 더 잘게 다지지 않은 나의 잘못이었고 아이가 낮잠투정을 심하게 부리는 것은 오전에 충분히 놀아주지 않은 나의 잘못이었다. 사실, 엄마가 완벽에 가까운(그런 것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양육을 한다고 해도 아이가 잘 먹지 않는 날도 있고 잘 자지 않는 날도 있는 것이다. 그런 날이 얼마간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성장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다. 아이는 스스로 크는 법을 알고 부모의 기대를 뛰어넘으며 눈부시게 자라난다. 내가 만났던 엄마들은 대부분 야무진 사람들이었다. 육아 이전의 커리어를 갖고 있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한다. 그러나 나는 경험했다. 초보엄마의 ‘육아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엄마를 괴롭게 한다는 걸. 엄마의 괴로운 마음이 도리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물론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이다. 그러니 나의 육아방식을 다른 사람의 육아방식과 비교하지 말 것. 밥을 좀 안 먹고 잠을 좀 늦게 자면 뭐 어떤가.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떼도 쓰지 않는 아이가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내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잘 크고 있는 중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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