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개월 전에 비행기를 태우자
그러니까 모든 게 낙관이었다. 제주도를 향하는 비행기에서는 평화로웠던 아이가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는 유독 힘들어했다. 짝꿍과 교대로 아이를 안고 좁은 복도를 서성이며 간신히 도착한 일본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며 간신히 도착한 숙소에서, 아이는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잡았다고 생각했던 열이 다시 오르자, 나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태풍 비스무리한 것이 일본에 상륙해 종일 비바람이 쳤다. 날도 추워져서 아픈 아이를 데리고 관광을 다닐 엄두도 내지 못했다. 큰맘 먹고 거금을 들여 오션뷰 숙소를 잡았는데, 바다 위로 내리꽂히는 번개만 바라봐야 했다. (사실 컴컴한 밤하늘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번개는 꽤 장관이긴 했다.) 우리는 호텔에 갇혀버렸다. 짝꿍이 때때로 차를 끌고 인근 편의점에 가서 아이가 먹을 만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공수해왔다. 우리는 정말, 나흘 내내 편의점 음식만 먹었다.
아이는 잘 노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음식을 거부했다. 먹을법한 딸기 케이크나 두부도 손을 내저었다.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며 애써 위안하다가도 밤이 오면 내 뇌 속에 잠들어있던 모든 걱정과 불안이 한꺼번에 깨어났다. 잠든 사이에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봐, 라는 불안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나흘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자지 못하니 식욕도 떨어졌다. 짝꿍은 급기야 나를 더 걱정하기 시작했다. 네가 더 심각해 보이는데, 아이는 낮에 놀고 밤에 잠이라도 자지.
여행 사흘째 되는 날, 우리는 숙소 바로 앞 츄라우미 수족관에 다녀오기를 결행했다. 걸어서 10분 거리래. 실내니까 괜찮을 거야. 고래상어라도 보고 가자. 유아차를 끌고 숙소를 나서자마자 강한 비바람이 뺨을 때렸다. 우리는 급히 차에 올라탔다. 수족관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잠에 들어 버렸다. 오붓할 것 같은 둘만의 데이트 시간, 나는 엄습하는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종류의 아름다운 물고기들도, 거대한 수족관 속 유유히 유영하는 고래상어의 위대함도, 도무지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좋아라 하는 아쿠아리움에서의 괴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 있다.’ 그러니까 마음이 불편한 여행은 괴롭기가 독박육아보다도 더하다는 것을.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그냥 모든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이 명징한 한 문장의 진리를 나는 무려 이백 만원을 지불하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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