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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Sep 03. 2021

다 내 맘 같지 않다.

ch2. 처가살이지만 친정살이라 말한다.

엄마와 난 결혼 전부터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지금은 모두 구름다리를 건너 우리의 곁엔 없지만 '써니와 아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랑스러운 반려견들이었다. 가까운 친인척도 없던 우리에게 써니와 아지는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가족'이었다. 특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엄마에게 강아지들은 큰 위안과 기쁨을 선물했다.


딸의 결혼을 앞두고 엄마는 큰 걱정에 사로잡혔다. 혹시나 강아지들 때문에 딸 결혼생활이 힘들어질까 봐 걱정하셨던 것. 다행히 예비사위는 강아지를 싫어하지 않았고, 흔쾌히 함께 살자고 말했다. 누군가는 고작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사는 게 뭔 큰 대수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강아지를 키워보지 않은 이에겐 함께 사는 매 순간이 곤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혼 후, 걱정했던 것과 달리 강아지들은 남편을 잘 따랐고, 그렇게 우리는 몇 달을 사이좋게 잘 지냈다. 하지만 문제는 얼마 가지 않아 터졌다.


마음에 비가 왔다

그날은 내가 임신하고 안정기에 들어선 지 5개월쯤이었다. 엄마와 난 저녁 식사를 끝내고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시청하고 있었고, 남편은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한참 즐기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나 강아지와 함께 지낼 경우 임산부의 몸에 상처가 나지 않아야 한다'라고 알고 있었기에 항상 조심하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그날은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누운 채 '아지'를 불렀다.


"아악!......"


나는 단발에 비명을 질렀다. 어찌할 틈도 없이 나의 가슴과 목에 상처가 났다. 그만 나를 할퀴고 만 것이다. 아지를 가만히 안아 주면 되었을 텐데, 나는 뱃속 아기 걱정에 아지를 손으로 밀쳐버렸다. 그 바람에 아지는 거실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고 상황을 지켜보시던 엄마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내게 말했다. 모든 건 순식간에 벌어졌다.


"어머!!! 어떻게 해~ 많이 아프니? 그니까 아지는 누워서 왜 불러!"


당황한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자 남편이 방에서 황급히 나왔다. 그리곤 말없이 내 목과 가슴에 난 상처를 보고 그대로 나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남편은 내 상처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된 건데!"

"내가 누워서 아지를 불렀는데, 아지가 뛰어 올라와서 내가 팔로 쳤어. 혹시나 배로 뛰어올까 봐. 내가 실수한 거야... 동물이 뭘 알겠어! 내가 미쳤었나 봐..."


결혼 후, 남편이 그토록 당황한 건 처음이었고 난 그런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아픈 내 상처는 뒤로 하고 이런저런 변명을 해댔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게 뭐야! 다른 데는 괜찮아? 아 진짜 속상하게!"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방문을 여시 더니 더 화가 난 목소리로 우리를 향해 말했다.


"아니 동물이 뭘 아니! 누워서 아지는 왜 불러? 주인이 부른다고 뛰어든 강아지가 잘 못이야?! 뭐가 그렇게 속상한데!!"


'아.... 이게 아닌데!' 뭔가 상황이 잘 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직감했다. 엄마는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우리의 대화를 듣고 단단히 오해하신 것이다. 남편이 말한 "아! 진짜 속상하게!" 이 한마디를 앞뒤 문장 다 자르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재해석하신 것이다. 평소 엄마 성격을 잘 아는 나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다 이해한다. 엄마의 성격을 아니까. 하지만 남편은 아니었다. 일단 화부터 내는 장모 때문에 마음이 상한 게 당연해 보였다. 남편은 그만 참지 못하고 장모에게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아니 장모님! 지금 강아지 때문에 사람이 다쳤는데 개편 드는 겁니까? 제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세요?"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어른한테 대드니! 화가 나면 뭘 어떻게 할 건데! 어?"


남편은 더욱더 격양된 목소리로 엄마의 말을 받아쳤다.


"장모님, 진짜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저는요! 제 와이프랑 뱃속 아이가 강아지들보다 소중하거든요! 근데 다쳤잖아요. 제가 이런 말도 못 하고 삽니까! 진짜 못 살겠네!"


"못 살아? 못 살면 어떡할 건데! 남자가 뭐가 그리 속이 좁아!"


제발! 여기서 그만~ 더 하면 큰 사단이 날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새벽 당신은 어딜 가나요.

남편은 더 이상 장모와 대화를 나눌 자신이 없었는지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엄마와 남편은 이미 건너면 안 되는 강을 서로의 등을 보이며 나란히 건너고 만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먼지처럼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홀연히 사라지고 싶었다. 다쳐서 아픈 건 분명 난데! 왜 두 사람이 싸움을 하고 있는지 건지 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또 참아야 했다. 나서 봤자 누구의 편을 들 수도 없으니. 몸이 아픈 것보다 둘의 싸움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상황이 더 답답할 지경이었다.


남편이 완전히 나간 것을 확인한 엄마는 이번엔 내게 속사포처럼 말했다.


"아니, 무슨 남자가 그렇게 속이 좁니. 네가 임신 초기도 아니고, 그거 상처 조금 났다고 그렇게 화를 내? 안 그래도 엄마가 강아지 때문에 사위 눈치를 얼마나 보는데! 그리고 상처 난 거 보고 엄마가 더 미안해 죽겠구먼! 장모가 그거 좀 몇 마디 했다고, 집을 픽 나가?"


"엄마 마음도 충분히 알지... 근데 아까 안 서방이랑 대화한 거 내 상처 때문에 속상하다고 한 거야. 강아지 탓을 한 게 아니고... 엄마가 오해하셨어요... 그리고 내가 아픈데, 그냥 내 걱정만 해주면 됐잖아!"


"그래 내 탓이다... 내 탓."


엄마는 그렇게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불과 몇 분만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된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의 말을 길게 듣지 않아도 어떤 심정인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리고 엄마의 눈 빛만 봐도 척하면 척! 알아차릴 수 있는 딸이니까. 하지만 남편은 자식이 아니다. 딸의 남편일 뿐. 서로를 서서히 알아가야 하는 시간들 속에서 엄마는 자신의 딸처럼 사위를 너무 편하게 생각하신 것이다. 또 남편은 강아지보다 아내가 더 중했기에 장모의 말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냥 다친 나를 치료하고 '별일 없으니 다행이다'라고 마무리하면 되는 해프닝일 뿐이었는데, 일이 너무 커졌다.


양쪽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장모 말에 화가 났다고 집을 나가버린 남편을 무슨 수로 이해해야 하나. 집에 남겨진 나는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지만 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여기서 내가 집 나간 남편이 밉다며 같이 싸우거나, 남편의 속상한 심정을 대변해 엄마에게 남편 편을 든다면 우리는 더 복잡한 상황 속으로 빠질게 분명했다. 그래서 난 남편에게 먼저 문자를 남겼다.


[자기야~ 엄마 말이 너무 심했지? 속상한 거 다 이해해. 내가 걱정돼서 더 그런 것도 알아. 그러니까 내 생각해서 빨리 들어와! 튼튼이가 아빠 보고 싶데.]


남편은 내 문자에 대답도 안 하다고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히 어떠한 싸움이든 오래 끌어 좋을 것은 하나 없다.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남편은 순간 욱했다고 장모님께 미안해하는 눈치였고, 엄마 역시 성급하게 화를 내며 소리쳐서 미안해했다. 늦은 새벽이었지만 장모와 사위는 둘만의 긴 대화를 나누었고,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엄마가 끓여준 따뜻한 아침밥상을 먹고 출근하는 평소와 같은 평범한 하루를 시작했다.

계속 물을 주고 해를 비춰 사랑하리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구나 겪을만한 사소한 말다툼일 뿐이었다. 그동안 서로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노력했다가 한 순간 그것이 무너진 것이었다. 그리고 어떠한 긴박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각자가 대처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피가 섞인 가족도 서로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한데 하물며 장모와 사위는 오죽할까. 그때는 몰랐다.

그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다행히 이제 둘은 서로에게 물들었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감정에 백 퍼센트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알아가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물들어 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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