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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Aug 26. 2021

진짜! 친정살이에 입문하다.

ch2. 처가살이지만 친정살이라 말한다.

어른들은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이 깊어진다고 한다. 특히나 친정 엄마는 기본적인 성향 자체가 감수성이 풍부하고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감정 그래프가 다양한 분이셨다. 더군다나 30년을 나 하나만 보고 살아오셨으니 자신과 나를 분리하는 삶 자체를 쉽게 생각 하지 못 하셨다.


친정엄마는 신혼초부터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은 마냥 좋았지만 결혼한 딸이 '독립적인 가정'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도 마음으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친정살이를 결정할 땐 전혀 생각지도 못 했던 문제였다. 왜냐하면 지극히 당연하고 무조건 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독립적인 가정을 엄마가 인정하고 받아들여 가는 시간은 한동안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 속 밑바닥 틈새를 비집고 자라나는 작은 분쟁들로 인해 나를 꽤나 힘들게 했다. 아니 우리를 힘들게 했다.

마음을 안아줘요




신혼 초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엄마가 괜스레 뾰로통해 보이시는 것 같아 조심히 물었다.


"엄마, 내가 뭐 잘 못 한 거라도 있어요?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시는데?"


힘없는 목소리로 엄마가 대답했다.


"함께 사는데도 괜히 딸이 없어진 느낌이야..."


그도 그럴 것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새색시가 된 딸을 엄마의 시선으로 본다면, 갑자기 생겨버린 사위에게 딸을 빼앗긴 감정이 들 법도 했다. 마치 하루아침에 전학 온 친구에게 하나뿐인 단짝 친구를 빼앗긴 기분처럼. 한 지붕 아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고는 있지 딸과 오붓하게 밥을 먹는 것부터 잠들 때까지 도란도란 나누던 대화까지 뚝 끊겨 버렸으니 괜히 같이 살아서 더 외로운 느낌이 드셨던 것이다. 또 하루 종일 사위하고만 붙어있는 딸을 보니 엄마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 서운함까지 느꼈다고 한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모르면 약이요, 알면 병'이라고 차라리 따로 살았다면 딸과 사위에게 이런 서운한 감정들을 느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친정살이를 한다고 해서 모든 걸 함께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이미 결혼을 했고 독립적인 가정을 이루었다. '엄마는 엄마, 우리는 우리'라는 생각이 깊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엄마를 아예 신경을 안 쓴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때는 신혼의 달달함에 빠져 우리에게 더 집중했던 것뿐이다. 당연히 남편도 결혼 한 우리를 독립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만 우리와 다르게 '독립된 한 가족'이 아닌 아들 하나가 더 생긴 그냥 가족이라 생각했고, 그로 인해 엄마의 서운한 감정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져 갔다.


엄마도 그때의 자신을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딸의 결혼을 축하했고 남편의 그늘 속에서 자신과 다르게 한평생 행복하게 살기를 그렇게 바랬는데 자신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이다. 머리는 그렇지 않은데 마음이 그렇게 동요되었다고.


신혼생활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다. 우린 맞벌이 부부로 회사가 서로 가까웠기에 별일 없으면 항상 출퇴근을 함께 했다. 첫 한 달은 엄마와 결혼한 우리가 빨리 친해지길 바라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남편은 매일 집에서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그러길 한 달이 지났을 때 즈음, 난 엄마에게 저녁을 먹고 들어간다고 전화로 알렸다. 남편과 나는 퇴근 후 오랜만에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집에 안 와?"

"우리 퇴근하고 저녁 먹고 간다고 통화했잖아. 오래간만에 데이트 중인데 좀 늦지..."

"집에 있는 엄마 생각은 안 해? 그럼 안 서방도 먹고 온다고 했어야지. 엄마 괜히 밥 안 먹고 기다렸잖아."


아차 싶었다. 엄마에게 늦는다고 통화할 때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항상 퇴근을 같이 했기에 엄마가 당연히 아실 거라 생각했다. 내가 놓친 말 한마디 때문에 친정엄마가 늦은 저녁 시간까지 식사를 못 하셨다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 깜빡했어요. 말한다는 걸... 식사 아직 안 하셨어요? 기다리지 말고 먼저 드시지..."

"참 너무들 한다. 그 전화 한 통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엄마는 집에서 하루 종일 너희들만 기다리는데... 됐다!"


엄마는 서운함에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셨고, 난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먹던 치킨이 입으로 들어가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맥주만 마셨고 얼마나 지났을까 남편이 정적을 깨며 말했다.


"아니, 엄마한테 나랑 저녁 먹는다고 제대로 통화한 거 아니야?"

"... 깜빡했어. 난 당연히 저녁 먹고 들어간다고 했으니까... 아실 줄 알았지. 어디 이 시간까지 안 드실 거라고 생각했나..."

"다음엔 이야기 잘해. 괜히 이게 뭐야. 오랜만에 둘이 데이트하는데 마치 죄지은 것 같잖아."


남편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이게 엄마 한 테고 남편 한 테고 내가 눈치 볼 일인가. 치킨 맛이 싹 사라졌다. 나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고 오랜만에 먹는 둘만의 저녁 한 끼가 명치에 딱! 걸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린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치킨집을 나섰고 결혼 후 첫 야밤 데이트는 아쉬움만 남기고 끝났다. 집에 돌아와 보니 거실 불은 꺼져있고, 엄마는 안방에서 얼굴도 비치지 않았다. 항상 우리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중문까지 마중 나와 어서 왔냐고 반겨주시는 엄마 셨기에 기분상태를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엄마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엄마~~ 미안해. 안 서방이랑 먹는다는 걸 내가 왜 이야기 안 해가지고..."

"아니... 엄마가 당뇨 환잔데 너희들 기다리다 9시 다 돼서 밥을 먹어야겠니? 난 또 안 서방이 야근이라도 하는 줄 알았지! 걔는 전화 한 통도 안 하고 엄마한테!"


내게 향한 불똥이 남편에게로 향했다. 나의 실수로 엄만 '사위가 장모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한다'라고 오해하며 언짢아하셨다. 중간자인 내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 말 한마디에 둘 사이에 벽이 높게 쌓이거나 아예 없어지거나 했다. 나는 빨리 이 오해를 풀기 위해 엄마를 설득했다.


"아니야~ 안 서방은 내가 엄마한테 같이 저녁 먹는다고 말한 줄 알았지. 야근하면 엄마한테 먼저 전화했을걸..."

"남편 편들지 마. 안 그래도 되니까!"


나는 편을 든 게 아니라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이고, 엄마가 남편을 오해하는 건 더 싫었다. 불편한 마음에 난 다 함께 맥주 한 잔을 하자고 말했고 다행히 그 날밤 모든 오해를 풀며 우린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사실 그렇게 오래갈만한 사건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날 이후 난, 약속이 생기게 될 때면 엄마에게 미리 말한다. 엄마에게는 서운함을 주지 않기 위해, 우리는 편한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서.

맥주로 달래기:화는 밤을 넘기지 않는다.

그 후로도 함께 살지 않았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상황들이 수시로 생겨났다. 친정엄마를 배제하며 우리만을 생각하고 살 수 없는 '진짜! 친정살이'에 입문한 것이다. 물론 남편은 이런 부분을 처음부터 내켜 하진 않았다. 결혼하면 아무리 부모와 함께 살아도 '우린 우리'라는 생각이 확고했고, 결혼 전까지만 해도 혼자 사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어른과 함께 살게 되면 신경 쓸 것도 조심해야 할 것도 많다는 걸 남편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가살이를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며 몇 년이 지난 후 남편은 내게 말했다.


원래 가족 간 싸움이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그걸 알면서도 엄마와 둘만의 싸움이 아닌, 남편까지 추가된 난처한 분쟁들은 항상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말이다.


십 년이 지난 지금은 안 싸우며 지내냐고 내게 묻는다면 여전히 우린 삐지고 토라지고 다툰다. 하지만 그때처럼 어쩔 몰라 전전긍긍하지도 않으며 서운해서 방문을 닫고 모른 척하지도 않는다.


가족이라는 게 결혼이라는 게 그런 같다. 서로 남남처럼 지낸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다른 성향과 성격을 가진 각자의 삶이 가족으로 묶여 공간에서 지낸다는 어쩔 없는 불협화음의 연속이라고, 속에서 조화로운 화음을 만들어 내고 완벽한 퍼즐 하나를 맞춰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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