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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Aug 19. 2021

친정살이 속 신혼생활이 시작됐다.

ch2. 처가살이지만 친정살이라 말한다.

친정엄마와의 첫 밀당이었던 주례 없는 결혼식을 눈물 콧물 빼며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가기 전 엄마는 내게 고이 접은 편지를 건네며 차 안에서 읽어 보라고 하셨다. 생각지도 못 한 편지 때문에 엄마와 눈이 마주치 내 눈에서 자꾸만 눈물이 터져버렸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급하게 차에 올라탄 난 엄마가 건넨 편지를 '애인에서 남편이 된 그'와 함께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사랑하는 내 딸, 어느새 커서 이젠 어엿한 새색시가 되었구나.
결혼 준비하느라 많이 힘들었지? 엄마는 말이야... 아빠 없이 키운 네가 항상 안쓰러웠어
 그래서 더 좋고, 더 예쁜 것만 해주고 싶었지...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너를 힘들게 했던 순간도 있었을 거라 생각해.
원래 주고도 더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지만 엄마가 너무 많이 욕심을 냈던 것 같구나.
그래도 엄마 마음 알지? 엄마 딸로 태어나 줘서 고맙고, 우리 셋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자.
우리 딸이랑 사위! 아니 아들! 엄마가 많이 사랑한다.
- 엄마의 편지 中에서 -


난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서운함 죄송함으로 변해갔다. 아니나 다를까 깊디 깊은 부모의 마음을 모두 다 헤아릴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내겐 너무 벅찼던 엄마의 조언과 충고들이 '우리'를 위한 착한 욕심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힘든 순간들을 맞이할 때면 그저 짜증만 부렸던 내가 생각났다. 그래서 엄마의 편지는 내 가슴을 더 아프게 했고, 남편과 함께 앞으로 엄마를 더 잘 모시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생각지 못한 변수들을 만나며 부닥치고 깨진다. 그러면서 더 단단해지거나 아예 힘없이 부서지거나 둘 중의 하나를 만난다.


나는 결심했다.

외로운 두 가족이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해 하나가 되었으니 단단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앞으로의 우리 가족을 지켜내야겠다고.


상상을 뛰어넘는 현실 속에서
깨지고 부닥치다 보니
우린 어느새 더 단단하고 견고해져 갔다.

조개찜은 아니어도 좋아!


내가 상상해온 친정살이는 아침, 저녁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엄마가 계신 집. 그리고 주말이면 셋이서 가까운 교외로 드라이브를 즐기며 '둘 보다 셋이라 더 행복한 가족' 되는 것이었다.


행복한 가족을 상상한 건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엄마는 사위와 함께 살게 되면 어떠한 어려움에도 든든할 것이라 믿었고, 마주 앉은 식탁에서는 "장모님~ 오늘 저녁 너무 맛있어요."라고 건네는 넉살 좋은 사위를 기대했다. 남편 또한 아버님마저 돌아가시고 오랜 시간 혼자 살았기에 아내와 장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자신을 맞이해주는 따뜻하고 포근한 처가살이를 기대했다. 하지만 우리가 맞닥뜨린 신혼의 일상은 상상처럼 마냥 행복하고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여느 신혼부부처럼 달콤했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우리 부부는 현실 돌입 드디어 친정엄마와 함께 처가살이 같은 친정살이시작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며칠이 지났을까. 어느 날 엄마가 안방으로 나를 호출했다. 그리고 작은방에 있는 사위가 들릴세라 개미 같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니, 안서방은 왜 퇴근하고 집에 오면 말도 없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니? 같이 차라도 한 잔 하면 얼마나 좋아."


결혼 전부터 엄마와 난 저녁 식사 후 티타임을 갖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기에 사위와도 함께 하길 기대하셨던 모양이었다.


"원래 안서방 커피 안 좋아해. 그리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피곤하지! 내가 한 번 물어볼게!"라고 엄마의 말끝에 남편에 편을 들었지만 이미 내가 느끼고 있던 걸 엄마가 콕 집어 말한 것이다.


"아이고 됐다. 그냥 그렇다는 거지. 뭘 말해! 아무 말도 하지 마."


엄마는 살가운 사위를 기대했겠지만 현실은 낯선 기운만이 가득했다. 남편은 처가살이를 막상 시작하니 생각과 다르게 현실에서 부닥치는 다름과 어색함 때문인지 퇴근 후 저녁밥을 먹고 나면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하지만 난 하루빨리 친정엄마와 좀 더 가까워지며 거리감을 좁혀가길 원했다. 그렇게 어색한 날이 길어질수록 난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게 되었고 남편에게 엄마의 생각을 내 생각인 것처럼 전달했다. 분명 엄마의 말을 남편에게 전달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기여코 나는 말하고 말았다.


"자기야, 저녁 먹고 다 같이 차 한잔 하면 좋지 않을까? 자기 혼자 방에 있으니까 눈치 보여서..."


"하루 종일 손님 상대하는데 집에 오면 피곤하지... 그리고 나 커피 안 마시잖아."


남편은 결혼 전부터 통신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손님을 상대해야 했기에 긴장과 피곤함을 달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퇴근 후가 되면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를 원했다. 하지만 엄마의 '차한 잔 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나는 참지 못 하고 남편에게 말한 것이다. 충분히 남편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친정엄마의 말도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고, 더군다나 신혼 초의 난! 남편을 친정엄마의 머릿속에 좋은 이미지로 만들어 놓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애 때는 무슨 일이든 내 말이면 다 들어주던 남편이 결혼 후 마치 나를 '어항 속 다 잡은 물고기'처럼 대하는 것만 같아 서운했다. 결국 난 화에 사로 잡힌 마녀로 변해 남편에게 쏘아붙였다.


"가족이 뭐야! 각자의 시간을 가질 거면 왜 결혼했어? 엄마가 얼마나 사위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겠냐고! 나도 자기랑 차 한잔 하면서 대화 좀 하고 싶은데! 집에만 오면 밥 먹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이게 뭐야."


"하... 나 진짜 피곤한데... 알았어."


커피가 뭐라고... 서운함이 맺히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긴 말로 핑계 대지 않았다. 장모의 차 한잔 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받아들였고 억지로라도 시간을 만들어 냈다. 난 그런 남편의 모습에 감사함을 느꼈다. 하지만 진심이 아닌 시간 때우기 식 티타임은 서로의 대화가 단절된 어색함만을 남겼고 그렇게 우리가 함께 나누던 쌉싸름한 커피의 시간은 한 달도 채 가지 못 하고 끝이 났다.


드라마나 리얼 예능에서처럼 애교 많고 붙임 성 좋은 사위는 내 남편이 아니었다. 나 역시 남편에게 만족스러운 아내가 아니라는 걸 그땐 미처 몰랐지만.


결혼을 통해 하나가 된 우리 가족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제대로 들어맞지 않았다.

먹는 것, 입는 것, 씻는 시간부터 잠드는 시간까지 모든 것이 어쩜 그렇게 달랐는지. 나조차 적응 하지 못 한 신혼생활을 보내면서 거기에 더해 친정 엄마와 남편 사이에서 사소한 약속 하나까지 신경 써야 했다.


티타임의 난제, 그 후에도 생각지도 못 한 크고 작은 트러블이 생겼다. 장모와 사위의 서로를 위한 배려는 언제나 서운함만 남긴 채 오해를 쌓아갔고 나의 신혼은 점점 '친정 속 부부 상륙작전'으로 변해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보다 더 치밀하고 탄탄한 해결책을 계속 풀어내야 했다. 앞으로도 친정살이 속 부부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 가겠지만 행복한 순간보다 더 많았던 친정살이의 난제들은 언제나 쉽게 해결되진 않았다. 지나고 나면 웃픈 해프닝이었지만 그땐 그랬다.


친정살이를 해오면서 내가 내린 한 가지 결론이 있다. 처가살이로 시작했지만 결국 친정살이로 변한다는 것. 그리고 친정살이 속 부부를 지키는 건 '우리를 강요하거나 서로에 대한 기대치를 키우기보다 오히려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내야 모든 문제의 지름길을 빨리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친정살이를 떠나 부부 사이에서도 가장 필요한 배려라고 생각하며 어쩌면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아내를 둔 남편에게도 해당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와 반대로 시집살이 중인 지인이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나를 부러워했다. '친정엄마와 함께 사니까 얼마나 편하냐고'. 그래서 나는 그 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남편은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그 어렵다는 장모와 매일 함께 사는데 말이죠. 그래서 제가 더 잘해야 하고 거기에 친정엄마도 챙겨야 해서 이게 바로 시집살이 못지않은 친정살이죠."라고.


나는 아직도 남편과 엄마 사이에서 누구도 상처 받지 않는 적정선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 시간이 삶의 지혜를 준다고 엄마와 남편도 이젠 서로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해가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상상과 다른 현실은 언제나 힘든 하루를 선사하겠지만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 버텨내야 한다. 그렇게 버틴 하루들이 모여 더욱 단단한 가족을 만들 수 있고 혹여나 깨지더라도 후회 없는 과거의 내가 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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