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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Jan 26. 2022

그런 날 있잖아요. 뭘 해도 안 되는!

비비 꼬이는 그런 날의 추억

매일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이 오랜만에 월, 화 휴무를 얻었다. 남편에게 휴무란 새벽같이 출근하는 매일을 보상하는 긴 잠을 청하는 수면의 시간으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를 위해 휴무를 반납했다.


아내가 뭘 한다고 하면 적극 찬성은 못 해줘도 기꺼이 조용한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이란 걸 나는 이미 알고 있기에 남편의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소중하게 얻은 월, 화의 휴무. 우선 남편은 나의 작업 공간을 만들어 주겠다며 노트북으로 대신하려던 사무실에 본체와 모니터 두 개를 놔주겠다고 인터넷 쇼핑몰을 헤집어 원하는 사양과 금액에 맞는 것을 찾고 또 찾아 구매했다. 뭐 하나 구매할 때 나와 다르게 신중하게 고르는 남편은 종일 인터넷 쇼핑에 모든 정신을 쏟아부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쓰는 삶을 살겠다며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월요일 저녁 늦게까지 고르고 골라 신중한 구매를 해난 남편은 승리자의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구매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죄송하지만, 택배사들이 파업해서 구매하신 상품은 취소처리 부탁드립니다."라고.


구매는 어려웠고, 취소는 빨랐다. 월요일에 쏟아부었던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진 남편은 화요일 아침을 짜증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구매 취소가 짜증난다기 보다 휴무를 쉽게 얻을 수 없는 일을 하는지라 또 언제 쉴지 모른다는 것이 남편의 화를 더 불타오르게 했다. 그렇게 되면 나를 위한 컴퓨터 세팅은 장기간 미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글을 쓰고 인터넷 검색은 잘해도 설치는 하나도 못 하는 마누라를 위해 자신이 휴무일 때 꼭 컴퓨터 세팅을 해주고야 말겠다며, 또 당* 마켓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 택배사는  이미 12월 중순부터 '띠제이'를 시작으로 파업을 시작했고, 출판사로부터 받기로 한 책과 나의 생일 선물들은 아직도 물류창고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젠 다른 택배사들도 배송이 어렵다고 주문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라 직접 거래를 하겠다는 남편의 결심이 따른 행동이었다.


화요일 마지막 휴무일은 미뤘던 일을 처리해야 하므로, 11시에 우린 업무용 차량인 트럭의 자동차 검사를 받기 위해 검사소로 출발했다.


접수 후 30분을 기다렸는데 검사 직전 '짐 칸에 짐들이 있어 검사를 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순간, 기다렸던 시간의 아까움과 접수할 때 미리 이야기를 좀 해주지 하는 원망이 섞여 짜증이 한층 더해진 남편의 말투가 내게 전해졌다. 나 역시 같은 마음.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교통 체증과 짜증이 더해져 아침은 이미 망쳐버렸다. 그 와중에도 남편은 끊임없이 당*마켓을 쉼 없이 검색하더니 원하는 사양의 본체와 모니터 2개를 찾아냈고, 판매자와 약속을 잡고 구매를 기다렸다.

대기는 배우만 하는 게 아니다.

남편은 반드시 오늘 해내고 말겠다! 결심을 단단히 먹었는지 본체와 모니터 세트 판매자와 또 다른 모니터 판매자와의 약속 시간 텀이 길어짐에도 기어코 기다리고 결국 원하는 물건을 사고 말았다. 그사이 속절없이 보낸 시간들이 나는 리도 아깝던지. 남편이 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해 검색하고, 이동하고, 구매해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한편으로는 이 시간에 차라리 집에 가서 기다리지 하염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멍하니 앉아 마냥 기다려야 하나 싶은 마음이 스며들어 표현은 하지 못 했지만 속으로 짜증을 돋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을 사무실로 가져와 설치하고 나에게 '마음에 드냐고!' 묻는데 순간 애잔함과 감사함이 남편에게 향했다.

그러라그래:양희은 에세이中

예전 같았다면, 말투부터 짜증이 섞여 비난의 말로 '나중에 사면 안되냐고, 시간이 아깝다고, 굳이 오늘 사야만 하냐고' 속사포 잔소리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나이가 주는 여유일까. 나를 위한 남편의 마음이 느껴져서였을까. 자신의 모든 휴무를 아침부터 비비 꼬이는 일정에도 묵묵히 나를 위해 써버린 것에 대단함 까지 느껴졌다.


분명 잠을 사랑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남편이었는데 그만큼 나의 계획과 목표를 지지해주고 말없는 응원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 같아 오랜 부부의 시간으로 미지근했던 사랑까지 샘솟게 만들었다.

나의 작업 공간을 만들어 주는 남편

그렇게 남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책상 위 듀얼 모니터와 본체를 흐뭇하게 바라본 우리 부부는 이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둘이 하루를 온전히 쏟아부어 얻은 결과물들. 남편은 내게 말했다.


"이제 공부하거나 글 쓸 때 불편하지 않겠지? 일도 잘할 수 있지?"

"그럼! 충분해. 열심히 해야겠는걸. 이렇게 나를 위해 노력해준 자기를 위해서~"


부부싸움의 최전방에 놓여져 있던 우리 둘의 6년 전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늘의 이런 날은 꿈 같은 이야기다. 서로를 향해 날카롭게 내뱉던 말투, 쳐다보면 칼로 베인 듯 아프던 시선. 그땐 빨리 부부의 연을 끊어야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날은 그림의 떡이 었던 그때에 우리 두 사람.


여전히 우린 티격태격 싸우는 날들이 많지만 지옥의 다리를 건너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여전히 사랑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여전히 부부라는 인연의 줄을 함께 잡고 걸어가는 오늘과 내일 사이의 평생을 기약하며.

사랑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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