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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양 Jul 26. 2021

결혼 4년 차, 각방을 쓰다

제법 잘 맞는 부부





결혼 4년 차, 각방을 쓰다


부부가 각방을 쓰는 이유는 다양하다.

서로 싸워서, 사이가 좋지 않아서, 꼴도 보기 싫어서 각방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코를 심하게 골거나 이를 심하게 갈거나 잠버릇이 험하거나 등등등  '서로'를 위해서 각방을 쓰는 경우도 많다.

 

우리 부부는 미우나 고우나 머리를 뜯고 싸우나 '각방은 절대 안 돼'를 고수하는 부부였다.

각방을 쓰는 순간, 각방의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 부부 관계가 멀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싸우고 꼴 보기 싫고 서로가 동태 물고기로 보여도 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부부는 "따로 자자!!!" 라며 각방을 선언했다.


대체 왜?

우리 부부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 범인은 여름


우리 남편은 땀이 많다.

조금만 더워도 온 몸에 땀이 육수처럼 흐른다.


나는 땀이 거의 안 난다.

어느 정도냐면 불가마 사우나에 들어가도 땀이 거의 안 난다.


부모님은 내가 하~~ 도 땀이 안 나니까 그게 신기하셨는지

내가 어릴 때 집 근처에 있는 불가마, 한증막을 다 데리고 다녔는데

 단 한 곳도 나를 땀 흘리게 한 곳이 없었다.


뻘건 숯이 눈앞에서 활활 타고 있어도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이상하게 팔, 다리, 몸에는 땀이 안 났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여름에 상극이다.

남편은 조금만 누워있어도 땀으로 범벅이 된다.

이불을 깔고 자는 것 조차도 더워서 괴로워한다.


반면 나는?

나는 선풍기 바람도 춥다.

그래서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잔다.


남편은 자다가 더워서 에어컨을 틀고 선풍기를 튼다.

나는 자다가 추워서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를 끈다.

남편은 자다가 더워서 에어컨을 또

나는 겨울 이불을 꺼내서 덮고 잔다.


남편은 자다가 나한테 데굴데굴 굴러온다.

나를 안으려고 팔을 뻗어서 올린다.

1초, 2초, 3초 남편의 몸에서 나이아가라 폭포수가 흐른다.

 나는 데구르르 도망간다.


# 그래서 각방을 썼다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남편은 덥고, 나는 춥고.


아무리 서로 좋고 사랑한다지만 극과 극의 온도 차이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은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서,

더위를 적게 타는 나는 에어컨이 없는 안방에서 자기로 했다.


각방만큼은 쓰지 말자고 했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로가 살기 위한 각방 선택이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매번 여름마다 약 한 달 정도 따로 자던 우리 부부가

이번 여름만큼은 함께 거실에서 자게 된 것이다.


왜냐면!

올여름은 더워도 너~~~ 무 심각하게 덥다!!

(지금 이 글을 고 있는 이 순간에도 덥다! )

아무리 더위를 안 타는 나도 더웠다!! 엄청나게!!!

그래서 우리는 사이좋게 에어컨 바람을 쐬며 한 방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물론, 서로에게 들러붙으면서 사랑이 넘치도록 자는 건 아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수같은 남편의 땀은 피하고 싶기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하지만,

부부가 같이 잠을 잔다는 건

자다가 내 옆을 지켜주는 누군가의 존재를 느끼는 것.

아침마다 서로의 못생긴 얼굴을 보며 키득키득 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부부가 같이 잠을 잔다는 것.

그것이 우리 부부의 소소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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