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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Oct 17. 2023

큰 꿈은 작은 꿈에서부터

어렸을 적 나의 꿈은 탐정이었다. 다짜고짜 탐정이라니. 한창 탐정 만화에 빠져서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을 수도 없이 봤다.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때 어린 주인공이 딱 등장해 사건의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그 쾌감. 남들보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몇 가지 질문으로 범인을 잡아내는 비범함.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는 전개지만 어린 나는 그 일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탐정을 꿈꾸던 당시에 나의 취미 활동 중 하나는 사람 많은 곳으로 나가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일. 가령,

손에 주머니를 넣고 걷는 거 보니 숨김이 많은 사람일 거야’

여자친구 옆에서 웃는 게 참 부자연스러운데 저 남자는 딴생각 중인 게 틀림없어’

아빠가 조용히 들어와 곧장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니 오늘 술을 진탕 마신 게 확실해’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여 사람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나였다. 때로는 사람을 부담스럽게 쳐다봐서 학교 친구에게 수업 중 왜 자꾸 쳐다보냐는 핀잔을 들을 때도 있었다. 그런 친구에게 “나중에 탐정이 돼야해서 지금 연습하는 중이야”라고 말하며 ‘앞으로도 계속 쳐다볼 수 있으니 이해해 주면 좋겠어’의 의미를 넌지시 전했다. 나에게 있어 꿈은 오늘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지를 정해주는 행동 지침서 같은 거였다.

탐정, 축구선수, 학종이 따기 국가대표, 얼음땡 선수 등등 나의 십 대 시절에는 참 꿈이 많았다. 꿈을 꾸기에도 벅찼기에 내게 공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나의 학업에 이래라저래라하시는 분들이 아니었기에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나의 십 대 시절을 지냈다.

 

그런데, 점점 어른이 되다 보니 말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임 없이 꾸는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무언가 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해야 하는 것. 시간이 흐를수록 꿈이란 걸 꾸기에는 벅찬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꿈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우선 선택하기로 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보통의 삶을 사는 것’ 또는 ‘큰 부와 명예를 얻는 것’. 이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부와 명예는 내게 우선순위가 아니었기에 우선 보통의 삶을 꿈꾸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 꾸게 될 꿈은 뭔가가 되고 싶다는 고민보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으로 바꾸었다.

 

나를 돌아보니, 나는 아이를 좋아한다. 정말 끔찍이도 좋아한다. 언젠가 나의 가정 안에서 아이를 양육하며 내 가족에게 사랑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가정을 위해 좋은 아빠가 되기로 결정했다.

생각해 보니 좋은 아빠가 된다면 세상 어떤 무엇도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이 년 전부터 요리를 시작했는데 이유가 있다. 아이가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말할 때 바로 만들어 주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업을 갖고 싶은 이유도 있다. 미래 아내가 일하기를 원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하루 종일 아이와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아이가 세상에 처음 말하는 단어를 엄마라 하는데 어쩌면 내 아이의 입에서만큼은 ‘아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점은 평생 아내를 골려 먹을 수 있는 좋은 농담거리가 되겠지.

최근에 재밌게 본 미국 드라마가 있다. 극 중 초등학교 과제로 존경하는 인물을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교실에는 학생 부모님들도 모두 참관하여 아이들이 발표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초등학생인 이 주인공은 존경하는 인물로 아빠를 선택한다. 발표 내내 자랑스러워하는 표정. 생기 가득한 눈빛. 이 세상에서 존경받을 인물은 우리 아빠 말고는 없다는 듯 당당한 표정.

 

이 장면을 미래의 나를 대입해 상상해 본다. 요리사 모자를 뒤집어쓰고 집에서 떡볶이 해주는 아빠. 거실에서 목이 빠져라 떡볶이만을 기다리는 아내와 아이. 그리고 자녀 교실 뒤편에 그려져 있는 요리사 모자를 쓴 나. 그 아래로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적힌 손 글씨까지. 이상하게도 벌써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보통의 삶을 꿈꾸는 건 많은 부와 명예를 얻는 일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기가 너무 어려운 시대니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조금씩 준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육아 책을 보면서까지 말이다. 언젠가 한 아이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기 위한 위대한 꿈. 그 꿈을 위해 오늘부터 작은 것들을 실천해 나가는 삶. 

 

나는 이 과정들이 쌓이다 보면 미래의 내 아이에게 그리고 내 아내에게 결국 닿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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