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였을 때 책을 많이 읽었다. 서점을 딱 들어갔을 때 나는 책 향기도 좋아해 쉬는 날이면 서점가서 책만 읽고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엄마는 한창 젊었을 때 구매한 책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 책들이 지금까지 방안을 가득 채워 20년도 넘은 색바랜 책들이 우리 집에는 많이 꽂혀있다.
평수가 그리 넓지 않은 우리 집. 방의 크기는 정해져 있고 책은 점점 많아진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어렸을 적 나는 책과 가까운 삶을 보냈다. 엄마 따라서 책방에 갈 때면 괜히 잘 읽히지도 책들을 서너 권 가지고 한자씩 읽곤 했다. 그때 읽은 책들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기도 하다. 그렇게 방안을 가득 메운 책들을 버리자 제안하면 엄마는 늘 손사래를 치곤했다. 누군가에게 애착 물건이 있는 것처럼 우리 엄마에게 책의 존재는 애착이 담긴 물건이다.
그런 엄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더니 나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생겼다. 바로 핸드폰 사진.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보는 사진들인데도 꾸역꾸역 모아둔다. 저장공간이 가득 찼다는 핸드폰의 경고 메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앱부터 삭제하는 나. 게다가 나는 그 사진들을 모바일뿐만이 아닌 실제로 현상하기도 한다. 사진을 뽑기 위해 구입한 인화기. 인화된 사진들을 한곳에 모아놓는 사진첩. 한 해를 백 장의 사진들로 기록하는 비밀스러운 취미. 지금 하는 일마저 카메라로 찍는 일이니 말 다 했지 뭐.
집이 아주 비좁다는 가족들의 거친 몸부림에 엄마는 굳은 결심으로 책을 버린 적이 한 번 있었다. 얼추 세어만 봐도 족히 수십 권 정도 되는 책. 가지고 있는 책에 반의반도 되지 않는 양이지만 나름 엄마의 큰 결심이었다. 그런 결심을 한 엄마의 마음도 궁금했지만, 엄마에게 책들을 버리는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하여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 이렇게나 많은 책 중에서 하필 왜 이 책들을 버리기로 한 거야?”
“음,,, 내 것이 됐다고 생각해서 버리기로 했어.”
보통 내 것이라면 더 쥐고 싶기 마련 아닌가. 내 거로 만들기까지 들어간 노력. 그러면서 자연스레 쌓인 추억. 이것을 쥐기 위해 내가 얼마나 열심이었는데 와 같은 마음. 그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옷장 한구석에 고이 모셔두지 않나. 나는 이런 마음으로 학창 시절에 열심히 필기한 노트를 아직도 갖고 있다. 한 번씩 펼쳐보면 종이가 변해가는 모습이 좋으면서 그때의 향수에 젖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이와 같으면 좋겠다. 꽉 쥐려고 하지 않고 마음이란 것에 힘을 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하기에 네가 이렇게 해줬으면 하는 것들. 사랑하기에 요구했던 것들이 지나고 보면 나의 욕심이었던 것들일 때가 많았다. 내 욕심이었다는 걸 눈치챈 순간은 관계의 끈이 꼭 끊어져 후회했을 때 드는 생각.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내가 먼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손안에 있는 모래를 세게 쥐려 할수록 손 틈 사이로 빠르게 사라지는 것처럼. 떠다니는 비눗방울을 꽉 잡으면 톡하니 터지는 것처럼 힘이 들어간 마음은 꽤 거칠 때가 있다. 내 것이 되었다고 소유하기에 앞서 내 안에 쌓여 있는 수많은 책을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드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러다 보면 나도 엄마처럼 마음에 힘을 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