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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Mar 20. 2024

똥이라고 생각하면 살기 편한 세상.

마지막 에세이 업로드가 작년 11월 22일로 기록되어 있다. 아니 벌써 사 개월이 지났다고? 그러니까 이 글은 백십구일 만에 탄생한 글. 중간에 해외선교를 가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글을 쓰는 시간이 자연스레 사라졌다. 신은 왜 하루를 이십사 시간으로 만드셨을까. 이십오 시간이었으면 글을 쓰는 시간이 확보됐었을 텐데. 괜히 남 탓.


선교활동도 끝났겠다 글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오랜만에 책상에 앉는다. 내가 좋아하는 열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간. 먼지 쌓인 무드등을 켠다. 음악은 어떤 노래를 들을까. 핸드폰 플레이 리스트를 뒤적거리다 요즘 빠진 시소라는 싱어송라이터의 노래를 튼다. 앉아 있는 곳에서 고개만 돌리면 전신거울이 있다. 주황색 무드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이 내 얼굴을 비춘다. 주룩. 빛이 내 얼굴 반쪽에만 흐른다. 어두운 곳에서 보는 내 얼굴은 화장실에서 보는 얼굴보다 만족스럽다.


그렇게 노트북을 연다. 메모장을 켜고 키보드 자판 위에 손가락을 얹는다. 얹었다. 두드려지지가 않는다. 뭐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에 괜히 '오늘은'이라는 단어를 적어보지만 웬걸 쓰이지 않는 글. 깜빡이는 커서가 꽤나 부담스럽다. 왜그럴까 가만 생각해보니 글로 쓸만한 얘기가 없다. 내 인생에서 쓸 얘기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글을 완성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작업인지를 알아서 시작하기가 두려웠다. 이 망할 놈의 커서가 나를 노려본다.


"오랜만에 온 주제에 한 번에 쓰이길 바랐어?"라는 표정으로.


오랜만에 왔으니 좀 반겨주지 그래? 라고 되묻고 싶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 책상을 벗어나고 싶은지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점점 가벼워지는 엉덩이를 겨우 누른다. 잠시 숨을 고르고 따끔한 콜라 한 잔을 마신다. 키야. 다시금 나를 비추는 노트북 화면을 지긋이 응시한다. 시작은 했으니 마침표를 찍고 이곳을 벗어나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속으로 되내인다. 제발 사라져라 부담감아. 근데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에세이를 쓴다고 생각하지 말자. 똥을 쓴다고 생각 하자. 그냥 배설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결과물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괜찮다. 썼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니까. 배설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아름답게 했다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러니 마음 한켠에 가득했던 부담감이 사라졌다. 마음이 평온하니 글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줄씩 나는 정성스럽게 응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게 말이다. 어차피 세상에서 사라질 것들인데 온 신경을 집중하며 쓸 필요가 있냐면서.


나 나름대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 세상을 좀 덜 무겁게 살기 위한 생존방식이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똥이다!

어차피 세상에서 사라질 똥이라면 덜 부담스럽게 살겠노라.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얘기하지 못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걸 알면서 말하지 않았던 그 당시 사람들처럼 말이다. 나는 그 사람들 대신 외쳤을 뿐. 나의 비정상적이고 기이한 외침이 누군가의 속을 긁어줬기를 조금은 바래본다. 적어도 나는 속이 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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