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에녹 Apr 05. 2024

우리 엄마는 이제 한식 조리 기능사

살다 보면 그럴 때 있지 않나. 모든 걸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을 때. 업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하나씩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다 던지고 도망가고 싶은 기분. 분명 해내지 못할 일은 아니다. 의자에 앉으면 어떻게든 해내겠지만 의자에 앉기도 싫을 때. 나만 그래?


나는 부끄럽게도 부지런한 사람이기보다 게으른 사람이다. 해야 할 일을 미루다 도저히 안 될 때 그제야 폭풍같이 일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는 썩 나쁘지 않으니 그래서 더 문제. 세상에 어떤 분야든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다고 믿는다. 부지런한 사람이 있다면 그만큼의 게으른 사람도 있기 마련.


이 법칙을 가설한 이유는 우리 집에 나 같은 아들과는 정반대의 엄마가 가정의 균형을 맞추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십오 년 가량 과일을 파셨다. 하루 열한 시간, 주 육일, 십오 년. 누군가 내게 이렇게 일하라 하면 나는 도저히 살아낼 자신이 없다. 엄마는 가정에도 꽤나 충실한 사람이다. 가족들 끼니는 꼭 챙겨야 한다며 집에 있을 때면 주방에서 밥을 짓는다. 그런 엄마를 만류하며 우리가 하겠다며 좀 쉬라고 말을 해보지만 어느샌가 주방을 기웃대는 엄마를 볼 수 있다.


엄마는 이제 퇴직을 했으니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간 다녀보지 못한 가족여행도 다녀왔다. 사진을 찍는 나는 가족들을 단풍나무 아래 세워두고 사진을 찍는다. 관광지 주변 유명 맛집에 데려가기라도 하면 이게 다 얼마냐며 걱정부터 하는 우리 엄마. 대단히 비싼 곳도 아니지만 투덜대는 엄마에게 아들이 이 정도는 사줄 수 있다며 으레 너스레를 떨어본다. 그 값싼 너스레에 든든하다는 말을 들으면 괜히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단 말이지.


엄마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름하여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육십을 바라보는 우리 엄마에게 무언가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일을 하는 거랑 공부를 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뭐가 더 어렵다 쉽다의 개념이 아니라 정말 다르다. 한 가지 일을 십오 년간 꾸준히 일을 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한식 공부를 육십을 바라보는 엄마가 도전을 하겠다니 존경의 마음이 절로 뿜어져 나왔다.


밤늦게까지 영상 작업을 하다 목이 말라 부엌을 가면 거실 한쪽에 스탠드 하나 켜놓고 공부하는 엄마를 볼 수 있다. 실기를 보기 전 통과해야 하는 필기시험. 엄마를 가르치는 사람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유튜브 강사. 사각사각. 한 권의 자습서와 노트 위로 색 볼펜의 잉크들이 칼군무를 이룬다. 새벽 내내 이어지는 엄마의 필기 소리. 조용히 다가가 엄마가 끄적이는 노트를 바라본다. 웬만한 수험생은 저리 가라. 내가 학창 시절 때도 이렇게 공부를 했었나 싶다. 정말 독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밤낮 할 거 없이 뚫어져라 문제들만 보더니 결국 필기시험을 한 번에 통과했다. 그리고 3주 뒤 시험 삼아 보겠다는 실기시험 당일. 나는 엄마를 시험장으로 데려다줬다. 실기시험은 서른세 가지의 한식 요리 중 두 가지의 음식만 나온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니 모든 레시피를 다 외워서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아직 배우지 못한 메뉴는 유튜브를 통해 학습을 이미 끝마쳤다.


시험장 분위기를 보고자 응시했던 시험. 일 등으로 도착한 최 여사. 대기 장소에서 집에서부터 가져온 장비들을 살피는 엄마에게 떨리지는 않는지 물었다. 그 물음에 도착하니 좀 떨리네 라며 소녀처럼 웃음을 띤다. 


며칠 뒤 다음 시험을 접수해야 한다며 접수 사이트에 같이 들어갔다. 엄마의 신상을 입력한다. 한쪽에 보이는 빨간 알람. 뭐지 하며 눌러본다. 합격 통지서. 육십 점 만점에 육십팔 점으로 합격을 한 것이다. 잠시 흐른 정적. 폭풍이 오기 전에는 그렇게나 고요하댔다. 우리는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집안의 공기가 순간 고요해졌다. 그리고 폭풍 같은 환호가 이어졌다. 엄마는 폴짝폴짝 뛰었다. 우리의 환호에 남은 가족들은 하나같이 거실로 모였고 엄마의 합격을 축하했다.




점심으로 엄마가 만들어준 콩나물국을 동생이 먹더니 한식 조리사가 끓여준 콩나물은 역시 맛있네라며 엄마를 한껏 치켜세워준다. 기분 탓이겠지만 실제로 더 맛있기도 했다.


질량 보존의 법칙. 부지런한 사람만큼의 게으른 사람이 있다는 내 멋대로 정한 가설. 우리 가정 안에 평화를 위해선 이 알맞은 균형감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엄마의 부지런함을 뺏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게을러지는 연습을 해야 했다.

작가의 이전글 삼천원 김치찌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