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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Apr 10. 2024

자격지심 있는 사람만 보세요 창피하니까

자격지심 있는 사람만 보세요 창피하니까

자격지심(自激之心) :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


나는 대학을 영상학과로 졸업했다. 또한 현재 영상 프리랜서로서 일도 하고 있다. 학업부터 일까지 햇수로만 따지면 8년은 된 것 같다. 현재는 웨딩 영상을 촬영부터 편집까지 모든 일을 맡아 하고 있다. 또한 국회에서 의원님들과 만나며 촬영을 진행하고 알만한 기업의 홍보영상도 제작해 주면서 나름 나만의 입지를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일을 하면 할수록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내 안에서 벌레 같은 것이 꿈틀거린다.


자격지심.


요즘 SNS에 올라오는 피드들을 보면 너무나 예쁜 사진과 영상들이 끊임없이 게재된다. 관심이 있어 설명란을 보면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촬영을 잘한다. 일 년도 되지 않은 사람들의 촬영물은 뭐가이리 예쁜지. 보정은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을 만큼 색감도 잘 만진다.


해외 여행 중 누군가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해야 한다면 한국 사람에게 맡기라는 말이 있다. 구도면 구도 보정이면 보정 특히 사진 스팟은 왜 이리도 잘 찾는지 어디서 어떻게 찍으면 예쁘게 나올지를 본능적으로 캐치한다. 등산만 해보더라도 알 수 있다.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너나 나나 할 거 없이 프사를 바꿔보겠다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으니까. 한국 아줌마들은 사진에 진심이다.


핸드폰의 어마어마한 발달로 웨딩 업계에도 새로운 시장이 생겼다. 바로 아이폰 스냅. 결혼식 촬영을 숱하게 다니다 보니 많은 결혼식을 촬영한다. 보통 사진작가와 영상 감독이 촬영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폰으로 촬영하는 작가님까지 생겨났다. 신부대기실에만 최소 세명의 작가들이 촬영을 진행한다. 발디딜 곳이 점점 줄어든다.


프리랜서로 생존은 해야겠는데 잘하는 사람은 넘쳐난다. 예술계열의 일이 좀 그런 것 같다. 이 일을 얼마나 오래 했는지보다 지금 얼마나 잘하는지가 중요한. 내가 잘하는 것도 클라이언트의 입맛에 또 맞아야 한다. 나의 잘함보다 그들이 봤을 때의 잘함이 중요하다는 말. 선택을 받기 위해 남보다 잘해야 한다. 눈에 띄어야 하니까.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 남들과 나를 비교하게 된다. 그들의 작업물을 보며 내 작업물을 평가하게 된다. 내 작업물이 부족한 이유를 나 스스로에게서부터 찾는 것이 아닌 남들의 작업물과 비교하며 내 것을 깎아내린다. 물론 그러면서 더 괜찮아지기도 한다. 정말 잘한 작품을 보며 배울 수 있는 것이니까. 한편으로는 그들처럼 만들어내지 못하는 나한테 화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작업하기가 싫어진다. 나를 못 믿겠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들이 내 마음에 들 것 같지 않다. 한동안은 만들어도 부족할 텐데 뭐 하러 만드냐며 점점 게을러졌다. SNS에 올라오는 촬영 인플루언서들의 작업물을 보면 보기 싫어서 휙 넘겨버리곤 했다. 쪼잔하게도 말이다. 남들한테 말하기에 부끄러운 모습인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이 맘처럼 잘 따라주지 않는다.


그러다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의 토크쇼를 보게 되었다. 엠씨는 묻는다 당신을 보며 꿈을 키워온 사람들이 전 세계에 많다. 나는 십 년 남짓이지만 사십여 년간 살아있는 전설로서 나에게 조언 하나를 해줄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겠냐. 배우는 답한다. 나는 광고도 찍고 이십 대 초반에 영화도 찍었지만 내 것을 직접 쓰기 전까지는 그렇다 할 이력이 없었다. 당신의 것을 당신이 직접 만들어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걸 직접 창작해.


그 배우의 말이 너무 도움이 됐다. 아니 속이 다 시원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 하기보다 보이는 것에만 너무 집중했던 것 같다. 빛 좋은 개살구마냥 보기에만 먹음직해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나 보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포장하면 좋을지를 먼저 고민하는 기만자.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지는 기분.


뱁새는 뱁새 나름의 이야기를 하면 된다.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 자격지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비교는 그만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설령 예쁜 포장지에 담겨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조금 투박하더라도 꾸준히 내 것을 기록하자.





나의 자격지심 : 영상, 사진, 글, 신앙

이제껏 내가 열심히 한 것들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오래 하면 할수록 사라지기보다 더 심해지는 것들. 얼마 안 한 사람이 나보다 더 잘 해 보일 때 오는 멘붕이랄까.


극복 : 남 따위 눈치 보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내 것을 계속해서 기록하자.




사진출처 : 유튜브 채널 'Olym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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