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udentJ Feb 17. 2021

언제까지 유리 천장 탓만 할 건가

창호지 문틀을 떠올리며

25년전 나는 빽도 없고 돈도 없지만 명문대를 졸업한 호기로운 어린 사회 초년생이었다. 능력은 턱없이 부족해도 나름 꿈은 커서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나는 꼭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 상상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 마치 나에게 지금 닥치지도 않은 사회적 불이익에 대해 분개하기도 하는데 그게 바로 ‘유리 천장’이라는 단어였다. 여성에게 불리한 이런 일이 있다는 사실에 미리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기도 했다. 유리건 뭐건 천장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지만 마치 지금 억울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답답한 마음을 미리 예습해 보기도 했다. 맑은 눈으로 선명하게 정상을 바라볼 수 있으면서도 그곳에 다다를 수 없는 유리천장은 사회생활을 시작도 안한 새내기에게도 답답함 그 자체였다. 


꽤 시간이 흘러 비교적 최근 본 기사에서 우리나라가 OECD국가중 유리천장 지수가 꼴찌라는 글을 읽고 예상이 빗나가지 않음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 나라가 유리천장지수가 꼴찌라는 조사결과에 덧붙여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의견 중에 ‘정부와 기업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여성 차별과 유리천장 제거에 적극 나서야 한다.’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0/01/75901/) 라는 기사가 있어 문득 반감이 들기도 했다. 정부와 기업이 나서야만 해결되는 일일까? 시각을 달리하는 해결책은 진정 없을까? 유리의 성이 아닌 개성 강하고 다양한 각자의 공간을 만들 수는 없나? 각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보헤미안 처럼 말이다.


미국에서 한국 정부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교포인 A와 미국 마케팅관련 전문가B를 미팅할 일이 있었다. 외국에서 사업을 하려다 보면 답답하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들게 마련이라 미국 비지니스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 있다고 하면 속는 셈치고 만나 본다. 한국 에서처럼 분단위로 약속을 잡고 살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좀 많은 것도 이런 만남의 이유가 된다. 약간의 기대를 하고 갔지만 결론은 실망이었다. 5년전 뉴욕의 전시회에 처음 나올 즈음에 다른 업체의 미국진출을 도와주는 미국 비즈니스 멘토라고 소개를 받은 적이 있던 바로 그 분이었다. 내게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지 않은 분이었다. 나는 그 분과 별 상관이 없었지만 당시 멘티업체 사장님의 불만이 하늘에 닿을 듯 많았다. 뉴욕쇼를 마치고 한판 할 거라는 말씀도 들었었다. 그 분을 다시 만난 것이다. 씁쓸함을 감춘 채 미팅이 끝나고 같이 갔었던 A와 차안에서 짧은 대화를 나눴다.


당시 미팅에서 만난 미국 마케팅 전문가라는 분은 한국 정부기관과 컨설팅 사업을 체결했는데 내가 옆에서 듣기로는 내용 없는 컨설팅에 큰 비용을 지불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A에게 마케팅의 실전 경험만 좀 있으면 당신이 조금 전 만난 B보다는 훨씬 영향력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B는 너무 옛날 방식으로 비지니스를 하고 계신 분이었다. 미국에 진출하려는 한국기업의 분애와 품목이 이전과는 너무 달라진 상황에서 30년전 삼성전자 북미진출 전략이 맞을리가 있는가.  하지만 A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토로하며 자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꼭 성공하란 법이 없지 않냐며 대학원을 생각하고 있고 계속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당신은 영어와 한국어가 모두 완벽하게 가능하쟎아요. 뭐가 문제인가요? 답답하네)


그의 맘은 충분히 이해한다. 20대의 나도 그랬다. 뭐든 겁이 났다. 겁이 없을 나이라고 여겨지지만 그때 나는 세상이 제일 무서웠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제는 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제발 겁없이 덤비라고 말해주고 싶다. 유리천장과 달리 나는 세상을 창호지 문틀이라 칭하고 싶다. 창호지는 얇은 종이에 불과하지만 밖이 전혀 보이지 않고 소리도 어느 정도 차단된다. 1미리내외의 두께라도 안과 밖을 구분해 주며 겨울의 찬 바람도 막아줄 수 있다. 유리천장처럼 그 너머가 빤히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불안하게 느껴져도 창호지 문은 뚫을 수 있고 작은 구멍이라도 내고 나면 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뚫린 틈으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밖이 보이게 된다.


창호지 문의 뚫어진 구멍을 통해 보면 구멍이 작더라도 문 너머가 명확히 보이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밖을 감지할 수 있다. 창호지문 밖의 온도와 냄새로도 많은 것을 판단할 수 있다. 구멍을 통해 보면 밖의 상황은 명확해지고 나의 다음 행동을 정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갈 것인지 아닌지 판단이 가능하다. 나는 이 작은 구멍을 작은 성공이라 생각하고 싶다.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새 세상을 맞이하는 큰 일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성공은 보통 나만 알고 넘어가는 작은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든 그 작은 구멍들은, 작은 성공들은 내가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만들어 줬고 두려움을 없애 주었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시간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창호지라도 어느정도 힘은 주어야 뚫어진다. 저절로 되는 것은 없지만 딱 창호지를 뚫을 정도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면 별로 겁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힘든 상대일 거라고 미리 겁을 먹기 때문에 우리는 뭔가 시도하가 어려울때가 많다. 지금 좀 막막한 일 앞에 와 있다면 결이 고운 창호지 앞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소셜네트워크의 힘이 강해지면서 사업이라는 것은 쉬워지기도 하고 한편 어려워지기도 했다. 예전에는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산업의 주류에 끼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중소기업이라도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고 판매할 수 있다. 심지어 대기업을 능가하는 역량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채널을 활용할 줄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 더 어렵다.


유리천정은 인터넷이 발전하기 이전의 산업의 체계를 상징한다. 유리로 만들어져 날렵해보이지만 철물구조로 지탱하고 있어 아무나 건축할 수 없다. 그들만의 리그랄까? 예전엔 그랬다. 지금은 어떤가? 그냥 굳이 깨기 힘든 유리구조물에 들어가지말고 소박하고 친환경적인 창호지 문이 발라진 곳으로 들어가자. 거기서 그 문을 뚫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다시 보호가 필요한 경우 풀을 발라 원래대로 리셋도 해 보고 문을 단장해가며 해보고 싶은 일을 다 해보며 풍부하게 사는 걸 권하고 싶다. 난 그렇게 하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