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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tist Dec 06. 2019

시설을 소유한 구단이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

  프로스포츠 산업은 가끔 기묘하고도 신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짧은 인생이나마 다양한 산업을 경험하면서 이렇게 적자생존이라는 단어가 와닿지 않는 산업이 있었던가? 한 구단이 수십억에서 수백억까지 적자를 내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치열함도 느낄 수 없었고, 치열하지 않다 보니 환경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한 치열함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프로스포츠의 고객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2000년도 중후반대에 머물러있다고 느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비록 더디긴 했지만 그럼에도 프로스포츠 산업은 앞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갔고, 급기야 이제는 흑자를 요구받는 시대가 왔다. 타 산업처럼 순이익을 내고, 비즈니스 측면의 성장과 발전을 이루고, 재투자를 통해 변화에 대응하고 혁신하라는 메시지가 정부, 언론, 팬 등 다양한 루트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너무 고맙게 느껴질 즈음.


  이 변화의 시기에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키워드는 바로 ‘자생력’과 ‘고객’이다.


  자생력을 먼저 살펴보면, 많은 구단이 다양한 방식으로 체질 개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구단의 모기업을 그룹 내 마케팅 전문 회사로 이관하기도 했고, 모기업 없이 네이밍 스폰서를 통해 구단을 운영하기도 했다. 또 어떤 구단은 모기업 홍보팀에서 나와 독립법인 구단을 만들기도 했지만 결과가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처럼 흑자를 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문제는 산업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선수단 인건비다. 구단이 아무리 노력하고 마케팅 분야를 혁신하더라도, 리그 차원에서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자생력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래서 참 어렵다. 국제적 추세와 맞지 않고 시대적 흐름과 역행하더라도, 일단 리그의 재정 건전성이 우선이라는 MLS의 비즈니스 마인드가 더욱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MLS는 축구 종목으로는 특이하게도 샐러리캡 제도가 있다.)


  앞에서 살펴본 과제가 과도한 지출의 제한이라면, 지금부터 살펴볼 과제는 수익의 창출이다. 흑자 구조로 전환되기 위해선 당연히 수익을 늘리고, 지출을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말은 참 쉽다. 당연한 얘기지만 수익은 소비자에게서 나오고, 자연스럽게 고객이라는 단어가 산업의 주요 화두가 되었다. 대다수의 프로스포츠 구단이 고객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떠올리면 어떠한가? 마치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이전 시대에 일방적 정보만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전통 매체 같지 않은가? 고객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뒷전이고, 언제 어디에서 경기가 있으니 보러 오라는 식이었다. 스포츠 경기는 일반 제품들과는 그 특성이 너무 달라서 이런 방식의 커뮤니케이션도 제법 효과가 있었고, 국가대표 경기에서의 선전 등 다른 이슈를 통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력이 부족했다. 신규 고객을 유입은 시킬 수 있었지만, 이들이 꾸준히 찾아오게 만들 수 있는 동력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매년 관중이 들쑥날쑥하다. 이 동력을 만들기 위해선 우리를 찾아오는 팬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세분화되었고 그 특성에 따라 어떤 니즈가 있을지를 파악해 이 요구를 해결해줘야 하는데, 당장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구단도 많지 않았다. 종목별로 시기는 다르기 때문에 특정 연도를 지정하긴 어렵지만 이 변화의 시기에 일부 구단은 CRM 시스템을 만들고 산업을 이끌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국내 5개의 프로스포츠 연맹과 62개 구단은 본능적으로 적자생존 레이스를 시작했다.


  2018년 상반기에 소속된 회사에서 선진 사례를 몸으로 체득하고자 뉴욕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대주제는 ‘CRM 벤치마킹’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수익에 대한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본문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NBA 브루클린 네츠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언젠가 CRM 관련 사례도 소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브루클린 스포츠 &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바클레이스 센터

  브루클린 네츠는 뉴욕주의 브루클린을 연고로 하며, 바클레이스 센터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NBA 프로농구팀이다. 뉴저지에서 연고 이전을 해온 지 오래되지 않았고, 뉴욕 내에는 맨해튼 중심에 뉴욕 닉스 농구단이 자리 잡고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을지 만나기 전부터 기대가 큰 구단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무국에 들어서자마자 회사 법인명과 4개의 모니터가 눈에 확 들어왔다.


"Brooklyn Sports & Entertainment (이하 BSE)."


  이미 눈치챘겠지만, 브루클린 네츠는 별도의 독립 법인으로서 존재하는 농구단이 아니라 BSE에 소속된 농구팀이다. 그 옆에 위치한 4개의 모니터에는 바클레이스 센터에서 진행되는 행사 일정이 담겨 있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DJ KYGO 공연, 뉴욕 아일랜더스 하키단 홈경기, 살사 페스티벌,  브루클린 네츠 농구단 홈경기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바클레이스 센터에서는 농구 외에도 하키 경기와 다양한 공연이 열리고 있다. BSE가 바클레이스 센터에서 진행되는 경기 및 행사 운영과 수익을 직접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전날 다녀온 뉴욕 레드불스의 사무실은 축구 전용 경기장 내에 위치해서 축구 외에 다른 비즈니스는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BSE는 실내 경기장의 이점을 활용하여 브루클린 네츠 농구단뿐만 아니라 하키 관련 비즈니스와 엔터테인먼트 영역에도 발을 뻗고 있었다. (심지어 e스포츠인 2K 리그 팀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지분을 매각했지만 유명 래퍼 제이지는 브루클린 네츠의 소액 구단주로 활약하며, BSE 문화 사업의 영역을 넓히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경기장도 확보되었고, 가지고 있는 콘텐츠도 많다 보니 스포츠 용어로 표현하자면 공격력이 극대화되는 느낌이랄까?




 네? 투어리즘 뭐라구요?

 정말 감사하게도 BSE는 뉴욕 연수 일정 중에 만난 모든 단체 중에서도 가장 극진하게 우리를 맞아줬다. CMO (마케팅 총괄 책임자)까지 포함된 4명이 회의에 참석해서 정성 어린 답변을 해주고 바클레이스 센터 투어까지 시켜줬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직원은 LUISA MENDOZA-CHAVEZ 이다. (이하 LM) LM은 BSE에 입사한 지 2개월이 채 안 되는 따끈따끈한 경력 신입이었는데, 이전 직장이 특이하게도 여행사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받은 명함 앞면을 보고 의아해졌다. ‘Global Tourism Development?’ 스포츠 팀이 여행사 직원을 스카우트해오는 일도, 스포츠 팀에서 일하는 직원이 관광 관련 직무를 맡는 것도 모두 처음 보는 사례였다. 이 사례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살펴보면 좋을 두 가지 배경을 소개한다.




  하나. 브루클린 네츠가 뉴저지에서 연고지 이전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

  뉴저지 네츠 시절, 구단은 관중 유치에 한계를 느꼈다. 신규 고객을 지속적으로 유치해도 모자랄 판에 있던 팬도 점점 떠나갔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당시 네츠가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던 아이조드 센터는 시설도 워낙 낡은 데다가 뉴욕과 뉴저지 간 대중교통 환승도 불가능해서 고객들이 찾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지리적으로 남쪽에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북쪽으로는 뉴욕 닉스라는 걸출한 NBA 구단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시장을 확장해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경기장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았다. 상황은 이해되었지만, BSE CMO가 “외연 확장이 어렵다는 점이 연고지 이전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라는 얘기를 했을 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뉴욕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될까?


 둘. 극심한 경쟁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


  세계의 수도라 불리는 뉴욕은 무려 11개의 프로스포츠 팀이 존재한다. “도시 하나에 11개의 프로스포츠 팀이 상생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이 경쟁의 도시에서 어떻게 외연을 확장한다는 말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BSE는 바클레이스 센터를 중심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연고지 이전을 진행했고, 실제로 많은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다.





  관광 산업은 뉴욕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이다. 매년 4,70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방문하며, 타임스퀘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브로드웨이, 센트럴 파크 등 관광 명소들이 즐비했지만, 대부분 맨해튼에 위치해있다. 뉴욕 자체는 글로벌 관광객이 많음에도 이들을 브루클린으로 유입시키지는 못하고 있었고, BSE은 이 틈새에 본인들의 콘텐츠 파워를 활용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BSE가 외연을 확장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연고지역의 시장 확장이 아니었다.


“저희는 글로벌 단위의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BSE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나갈 계획입니다. 또한 수익성 부문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입니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전략은 뉴저지보다는 브루클린에서 더욱 효과적일 것임이 자명하며, 이를 위해 관광 산업 전문가를 영입한 것이다.




  치열함 그리고 생존본능

  결과적으로 브루클린 네츠는 바클레이스 센터 운영권을 확보했고, 시설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 다양한 콘텐츠 파워를 가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바클레이스 센터는 1년에 200일 이상 경기와 행사가 열리는 복합 문화 시설로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난 뒤 LM이 해준 얘기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1년에 200일 정도 행사가 열리긴 하지만 아직 165일 정도는 놀고 있어요. 저는 이 165일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 자리에 와있습니다.” LM은 브루클린 방문 계획이 없었던 글로벌 단위의 여행객들을 바클레이스 센터로 유입하여 경기나 공연을 관람하게 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365일 내내 경기장을 채울 수 있는 콘텐츠와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 것이다.


  국내 프로스포츠 산업의 안이함이 몸에 밴 탓인지, 이렇게까지 수익에 치열함을 보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프로스포츠 무대인데,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이 들어오겠거니 생각했던 과거를 반성한다.

  비단 이번 사례뿐만 아니라 연수 중에 만난 모든 프로스포츠 팀은 조직 구조부터 마케팅 전략까지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의 산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반성의 연속이었다.




  실현가능성과 허무맹랑함 그 사이 어디쯤에서

  연수 이후에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비즈니스 모델을 국내에 적용한다면? 이라는 상상을 자주 하곤 한다. 한국은 문화 강국이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잘 발달되어 있다. 또한 스포츠산업 진흥법도 개정되어 프로스포츠 팀은 경기장 시설을 장기 임대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인천에 위치한 SK 와이번스가 문학 경기장 시설을 장기 임대한 상태에서 JYP 같은 대형 엔터테인먼트와 합병되거나 전략적 제휴를 맺는다면? 경기장 시설 곳곳에 한류 아티스트들 관련 관광 상품을 개발한다면?


   문학을 365일 내내 떠들썩한 시설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공항이 위치한 도시라는 이점이 극대화될 수 있지 않을까? JYP는 프로스포츠 단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경기장을 활용하여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고, 야구단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호기심은 분석으로 이어졌다.


  외형만 보면 JYP는 약 220억의 순수익을 내는 회사이고, SK 와이번스는 약 5억의 순손실을 내는 회사이다. (물론 매년 들쑥날쑥하다.) 합병 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너지를 생각했을 때, JYP는 스포츠단의 이점을 활용하여 충분히 시도해볼만 하단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더 어렵다.


 SK 와이번스의 매출액 약 460억 중 광고수입은 약 270억에 가량 되는데, 이 중 약 230억이 모기업과 그 계열사의 지원금이다. 쉽게 말해 온전한 와이번스의 매출로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모기업 거래를 매출로 보지 않을 경우 손실금은 약 233억이다. 과연 스포츠&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통해 이 손실금 이상의 포괄적 이익이나 가치를 취할 수 있을까?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몸담아보지 않아서 감은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허무맹랑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아쉽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한국형 BSE와 바클레이스 센터는 언제쯤 만들어질 수 있을까? 살아생전에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즐거운 상상을 가능케 해준 BSE 팀과 LM에게 깊은 감사들 드린다.




  여담

  치열한 경쟁 산업에 요구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바로 차별화다. 수십 년간 뉴욕을 지키며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뉴욕 닉스 앞에서 당시 5년밖에 되지 않았던 브루클린 네츠는 어떤 차별화 전략을 세웠을까? 닉스는 전통적이고 클래식한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네츠는 ‘힙’ 한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다. 닉스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방향이다. 네츠는 더 캐주얼하고 영한 이미지 구축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타깃 연령층도 더욱 젊게 잡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화 전략 역시도 잘 먹혀들어가고 있다. 여러모로 대단한 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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