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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신팀장 Aug 27. 2021

떠나세요, 제가 준비해 놨어요

책이 나오기까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

이번 글은 막 나온 따끈따끈한 저의 첫 책 '떠나세요, 제가 준비해 놨어요' [ 떠나세요, 제가 준비해 놨어요(일하는 사람4) : 네이버 책 (naver.com) ] 의 프롤로그로 썼던 글입니다. 출간된 책에는 책을 쓰기까지의 과정은 빠지고 아빠와의 겨울 오대산 추억 이야기, 여행의 의미  등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제가 어떻게 책을 펴내게 됐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슝슝~    


  작년부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 할 수 있고 또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십 년을 이 일 저 일을 하다 공부도 했다 사업도 했다 좌충우돌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지금의 회사에서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노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재미있는 일을 찾기까지의 나의 경험을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공유하고 싶었다. 나의 경험담이 그들이 재미있는 일을 찾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이전 회사의 '일잘러' 후배에게 연락해 커리어에 대해 고민 중인 이들을 위한 글을 같이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고맙게도 후배는 흔쾌히 나의 뜻에 동참해주었다. 이미 브런치 작가였던 후배에게 발맞추기 위해 나도 얼른 세 개의 글을 써서 브런치 작가에 응모했고 그렇게 나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후배와 서로의 글에 좋아요와 댓글을 달며 나름대로 열심히 글을 써나갔다.


   옛날에 나에게 글쓰기는 참으로 고통 그 자체였다. 대학 입시 준비로 모의 논술 시험을 보면 못마땅한 점수가 나왔고 대학시절에도 서술형 시험만 봤다하면 낮은 점수가 나왔다. 그런데 보고서도 글인지라 십 년을 일 때문에 보고서를 쓰다 보니 글쓰기 실력이 늘었는지 글 쓰는 게 더 이상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브런치에 글이 술술 써지고 심지어 글쓰기가 재미있었다. 글을 쓰며 나의 인생을 반추한다는 느낌이 좋았고 관광 분야 면접 준비생이 나의 글을 보며 도움 많이 받았다는 응원 댓글도 내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었다.(결국 이 분은 후에 면접에 합격했노라고 나에게 기쁨의 인사를 전해왔다.)   

  

   그렇게 초보 브런치 작가로 소소하게 글을 써나가고 있던 어느 날 문학수첩에서 보낸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직업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는데 관광이 요즈음 굉장히 관심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 브런치에서 본 나의 글에서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느껴져서 좋은 글이 나올 것 같은데 글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혹시 사기가 아닌가싶어 인터넷에 문학수첩을 검색해봤는데 해리포터를 출판한 걸로 보아 사기는 아닌 게 확실해졌다. 출판에 참여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고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 이제 곧 내 책이 나올거라고. 이 때가 올 해 1월 초였다.      


   하지만 사실 이 때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시던 아빠가 위암 말기로 굉장히 힘들어하던 시기였고 출판 제안 메일을 받은 날로부터 정확히 이틀 후 아빠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아빠가 돌아가신 직후 아빠한테 처음으로 건넨 말은 '아빠 사랑해. 사랑한다고 이야기 못해줘서 미안해.' 였고 두번째로 한 말은 '아빠 나 이제 조금 있음 책 낼건데 아빠가 그거 알면 엄청 좋아했을텐데.'였다. 그로부터 5일 후 문학수첩 사무실에서 편집자님과 출간에 관한 회의를 했고 출간 제의를 받았다고 꼭 책을 낸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대략 난감이다...)    


  글감 50개를 보내고 그 중 두 개의 글을 써서 낸 후 오케이 사인이 나야 출판사와 계약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하지. 벌써 다 자랑해놨는데...' 이럴 때는 그냥 돼든 안돼든 걱정할 시간에 부딪혀 보는 게 상책이다. 집에 오자마자 의식의 흐름대로 글감을 막 뽑아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지 글감이 술술 나와 두 시간여만에 50여개의 글감을 다 뽑아 문학수첩에 보내고 그 중 두 개의 글감을 선택해 글을 써서 보냈다. 그 두 글은 북한아저씨의 초콜릿 [북한 사람 만나 보셨나요? (brunch.co.kr)]과 시골집의 변신은 무죄였다. 그리고 다소 초조하게 편집자님의 메일을 기다렸다. 며칠이 흘렀을까. 드디어 메일이 왔다. 지금 집필해 주신 것처럼 쭉 써 주시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휴'... 주위 사람들에게 떠벌렸던 걸 주워 담지 않아도 되어서 천만다행이다 생각했다. 하지만 십 년을 넘게 보고서를 써왔던 나는 에세이에 대한 이해가 한참 부족했다. 자꾸 글 속에서 이슈를 분석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나의 업무 지식과 사례를 보여주려고 했다. 두 번째 챕터를 다 쓰고 편집자님께 보냈는데 장문의 답변이 돌아왔다. 요약하자면 에세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다. 벌써 팀장 4년차라 리뷰를 받는 것 보다는 리뷰를 하는 것에 훨씬 익숙해져있는 차에 다시 누군가의 리뷰를, 그것도 부정적인 리뷰를 받자니 사실 '자존심에 상처'였다. 하지만 지금 자존심 챙길 때가 아니었다. 난 완전 초짜 작가 지망생이고 편집자님은 이 분야의 베테랑 아니신가. 편집자님도 에세이 같지 않은 글을 받아보시면서 엄청 속을 끓이셨을 텐데 친절하게도 에세이에 대한 감을 잡는데 도움될 만한 많은 말씀과 책 추천을 해 주셨다. 그렇게 편집자님의 조언을 되새기고 다른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나의 이전 글이 왜 문제인지를 깨달았고 에세이의 핵심 키워드는 이슈 분석과 방향 제시가 아니라 '공감'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작은 깨달음 후 챕터1 에서는 좀 더 에세이 같은 글을 써서 편집자님께 보냈다. 사실 챕터1 글을 보내놓고 ’또 이게 아니라고 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에 메일함에 편집자님 답변이 와 있는걸 알았는데도 메일함을 열어보지 못했다. 1주일이 지나니 '메일 확인하셨는지 확인 후 통화하면 좋겠다'는 편집자님 문자가 와 있었다. '도저히 신선생님 글은 출간을 못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이면 어떻하지라는 불안함 속에 메일을 열었다. 우와! 이번엔 칭찬의 메일이었다. 드디어 에세이라는 분야에 대한 감을 잡으신 것 같다며 글에서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느껴져서 좋다고 하셨다. 대신 이전에 썼던 다소 에세이같지 않은 글들은 지금의 '감'으로 보완해주시면 좋겠다는 '충언(?) '과 지금 쓰고 있는 이 프롤로그도 써달라는 요청, 그리고 이 모든 것을 6월 말까지 마무리해주실 수 있는지 물어오셨다. 오늘은 6월 19일.  메일 확인 후 통화한 게 15일이었는데 이때는 챕터 하나가 통째로 남아있는 시점이었으나 이 긍정의 아이콘은 흔쾌히 할 수 있다고 대답을 해버렸다.


   그래서 난 이 프롤로그를 새벽 6시 30분부터 쓰고 있다. (친정엄마가 이사하셔서 친정집에 와있는데 노트북 어댑터가 분실되었나보다. 핸드폰 메모장에 이 장문의 글을 적는 중이다...)     

난 이 책의 8할 이상을 평일 새벽 시간에 썼다. 아이 엄마로서 한 남편의 아내로서 새벽 시간이 아니고는 글을 쓸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취침 시간을 한 시간 정도 앞당겨 여섯시 반에 일어나 글을 썼고 좀 지나서는 미라클 모닝을 시작한 남편을 따라서 다섯시 반에 일어나 성경읽기와 기도를 마친 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를 미라클 모닝으로 이끌어준 나의 사랑하는 남편 성진원님과 바쁜 엄마를 이해해주는(듯한) 북한 공비도 때려잡을 듯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초등학생 성유찬군, 그리고 아래층에 사시며 우리가족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시는 시아버지 성영모님과 시어머니 안순자 님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주시고 외동딸을 독립적으로 자랄 수 있게 지켜봐주시고 지원해주신 엄마 강보라 여사와 내가 책 출간했다며 하늘나라 친구들에게 여기저기 자랑하고 계실 아빠 신위수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나의 긍정적 마인드의 9할 이상은 아빠에게서 왔다는 사실!)     


   바스크 출신의 실존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노는 인간은 기억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욕구, 그리고 나의 삶을 기억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이 책을  써 내려갔나 보다. 이 책을 읽고 '한국관광개발연구원이라는 곳에 즐겁게 일하고 있는 신팀장이라는 사람이 있었군' 이라고 기억해주는 독자분이 생긴다면 참으로 기분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프롤로그를 마친다.      



   출판의 길이 다양해져 이제는 책 내는 일이 예전보다 무척이나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내 이름 석자를 단 이름이 나왔다는 게 무척이나 뿌듯하네요. 9살 아들은 책을 보더니 "엄마는 책 팔면 돈 벌어서 좋겠다"길래 "책 한 권 팔아봤자 엄마한테 오는 건 1,000원밖에 안 돼." 라고 말해주었더니 "그럼 한 권 팔릴 때마다 나 500원이라도 줘." 라고 하더군요. 500원 받으려면 엄마 책 친구들한테 홍보하고 다니라고 말해 주었어요. 우리 아들은 한 푼 두 푼 모아 장난감 살 생각에 들떠있는데 과연 이 책으로 아들 장난감 살 돈이 될 지 모르겠지만 재미있고 솔직하고 열심히 썼으니 힘 닿는데까지 홍보해 보렵니다. 여행에 관심이 많거나 관광 분야에서 일 하는 사람의 일상이 궁금하시거나 저같은 워킹맘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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