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마케터의 인스타그램 활용법
TV와 스마트폰이 뇌를 망가뜨리고 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90년대 그리고 00년대 초반을 떠올려 봅니다. 그 시절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듣던 잔소리 레퍼토리 중 하나는 TV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TV는 바보상자다"
"TV 보는 대신 독서를 해라"
"TV를 많이 보면 스스로 사고하고 사유하는 능력을 잃는다"
등등 TV에 대해 보통 안 좋은 시선이 많았죠.
30대가 된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더라도 그 말씀들에 대체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정확히는 그 문제의식에 동의한다에 가깝겠네요. 실제로 뉴미디어 시대가 도래하기 전 레거시 미디어의 힘이 막강했던 90년대(그러니까 이른바 국민 드라마 국민 예능이 시청률 50%씩 나오던 시절)는 정보 전달자와 수용자와의 정보 불균형이 컸고 TV에서 편집해 준 정보를 있는 그대로 떠먹게 되어 매체에게 압도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즉 스스로 사고하고 사유하는 힘을 기르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죠.
시간이 흘러 2010년대가 되면서 예전 TV가 맡았던 그 악역을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페이스북,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넷플릭스(를 위시한 OTT) 등이 나누어 가져간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의 취향과 행동 패턴을 초 단위로 분석해 하루 24시간을 누가 더 많이 점유하냐로 경쟁이 펼쳐졌죠. 물론 여기에는 순기능도 있었습니다. 정보의 격차와 비대칭이 줄어들었고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가 모호해지며 힘의 균형이 깨졌고, 사람들의 취향이 파편화되며 각각의 라이프 스타일이 존중받고, 이른바 거대 담론이 사라진 시대가 됐습니다. 모두가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기회가 생긴 것이죠.
하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커졌습니다. 더 많은 기회가 생긴 것 같아 보였지만 실상은 플랫폼과 콘텐츠의 과잉으로 오히려 선택의 폭이 제한됐고 엄청난 피로감과 동시에 FOMO 증후군을 호소합니다. 진실과 가짜를 구별할 수 없는 정보들이 혼란을 부추기고, 혐오가 퍼지는 속도는 과거와 비할 수 없이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글, 페이스북 알고리듬에 노예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이러한 소셜 플랫폼의 폐해를 잘 다룬 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 를 추천드립니다)
아이러니하죠.
온통 뇌를 자극하는 콘텐츠가 넘치는데 나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콘텐츠는 찾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서 찾는 정성을 들이거나 작정하고 긴 호흡을 각오하지 않으면 이미 숏츠와 릴스에 최적화된 저의 뇌는 급격한 피로감을 호소합니다.
"빨리 30초짜리 재밌는 걸 틀라고!"
알고리듬을 내 편으로 만들 순 없을까
마뗑킴 김다인 대표님은 눈 뜨는 순간부터 감기는 순간까지 인스타그램을 한다고 합니다. 20대 때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많이 활용했다면 지금은 일, 고객과의 소통 창구로 많이 쓴다고. 동감하는 바입니다. 물론 저에겐 열광적인 팬은 없지만 인스타그램을 하는 분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브랜딩, 마케팅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어서 SNS에 떠돌아 다니는 콘텐츠에 끌려다니기 쉬운데요,
여기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몇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평소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얼마나 이용하고 계신가요? 우선 저부터 고백하자면 스마트폰을 하는 대부분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스타그램을 정말 많이 하는데 '브랜드 마케터이기 때문에 영감과 레퍼런스 수집을 위해서 한다'는 미명하에 죄책감을 내려놓고 몰두하기도 합니다. 때때로 릴스와 숏츠의 함정에 빠져 인생에서 1시간이 사라지는 경험도 종종 하는데요. 사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구글과 메타는 우리의 심리와 뇌를 마비시키는 UX를 설계했고 그 대표적 기능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추천 알고리듬
2. 무한 스크롤
3. 무한 재생
4. 당겨서 새로고침
세상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작정하고 우리의 시간을 점유하기 위해 설계한 이 늪에서 나의 자아를 온전히 지키고,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쇼츠와 릴스는 전두엽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어마어마한 정보량과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콘텐츠를 무한히 제공하면서 뇌의 보상 시스템을 길들이기 시작하죠.
이 대목에서 저는 발상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정말 알고리듬이 나의 시간을 점유하기 위해 내 취향을 반영한 콘텐츠를 물어오게 만들어져 있고 그것을 무한히 제공하도록 설계되었다면 역으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신호를 명확히 주어 나에게 필요한 영감의 도구들을 모아 오게 할 순 없을까?
우리는 이미 최고의 비서를 거느리고 있다.
(실전 활용 방법)
저는 인스타그램에서 일종의 작은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방법은 무척 간단합니다. 인스타그램과 그 안에 작동하는 알고리듬을 역으로 이용해서 나의 비서처럼 써 보는 것이죠. 여러분도 지금 당장 아래의 방법을 시도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아마 따로 알고리듬 관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둘러보기 탭을 들어가면 대부분 이런 패턴일 겁니다. 텍스트 위주의 유머, 밈, 댄스 등 인스턴트 콘텐츠들이 가득할 텐데요. 이것은 메타의 알고리듬이 판단한 여러분의 취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금 비약하자면 여러분의 관심사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그리고 조잡한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들이 보이면 일말의 고민 없이 오른쪽 상단 메뉴 버튼을 눌러 '관심없음'을 눌러줍니다. 알고리듬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죠. 이런 비슷한 콘텐츠를 나한테 제공하지 말아 달라고.
+ 덧붙여 저는 '유머'가 들어가는 콘텐츠는 아주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싫어하는 편이라 단어 자체를 스팸 처리해 두었습니다. (유머라는 글자가 들어간 글이나 계정은 대게 시간을 잡아먹는 저질 콘텐츠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는 최근 몇 가지 주제에 포커스를 맞춰 콘텐츠를 스크랩하고 있는데요. 고감도 인테리어 이미지, 브랜딩 관련된 레퍼런스, 포토샵 등 어도비 관련툴 TIP. 대략 이 서너 가지 주제로 모으고 스크랩을 했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기존에 팔로우 하고 있던 계정들이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었다면 이 과정이 매우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단계도 매우 중요한데, 알고리듬에게 더욱 구체적인 신호와 명령을 주는 단계이기에 그렇습니다. 내가 어떤 형태의 어떤 성질의 콘텐츠를 좋아하는지를 폴더로 그룹핑 하면 둘러보기 추천탭에 뜨는 콘텐츠의 적중률, 싱크로율이 매우 빠르게 높아지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둘러보기 탭을 누르면 자극적인 유머짤이나 큼지막한 텍스트가 박힌 카드뉴스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구글이라는, 메타라는 엄청난 회사에서 만든 빅데이터 AI 봇들을 나의 비서처럼 활용하게 된 것이죠. 이 원리는 유튜브에서도 똑같이 적용해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나의 뇌와 시간을 잡아먹는 콘텐츠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오지만 저는 그때마다 역시 '관심없음'을 체크하여 제 둘러보기 탭의 질서를 꾸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알고리듬은 관성적인 부분이 있어서 자꾸 되돌아 가려는 성질이 강한데요, 원래 습관이란 게 한 번 만드는 게 쉽지 않지만 유지하는 건 더 어렵잖아요. 그렇지만 일정한 에너지를 꾸준히 들여 관리하는 것은 브랜드 마케터로서, 기획자로서 기초 체력을 기르는데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신호를 보내 나에게 최적화만 시킬 수 있다면 이 알고리듬은 생각보다 쓸모가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친구들은 쉬지도 않죠. 고급 정보만 모아 브리핑 해 주는 최고 수준의 비서나 다름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알고리듬을 길들여 여러분의 영감의 도구, 훌륭한 비서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