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에 대한 낭만적 묘사와 만성적 적개심에서 물러나 현실을 배우자
복서는 단 하루도 쉬려 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아파하는 모습을 다른 동물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두 책은 쓰인 지 오래됐다. 저자인 오웰이 예상한 것은 일부 이뤄진 측면도 일부는 더 초월적으로 이뤄진 지점도 있다. 그의 상상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부분에서 생명력을 잃었다. (유행할 때 해야 재미있는 게임도 있는 법) 대신 혁명과 인간, 사회가 어떻게 발생하고 변해가는지에 대한 그의 통찰은 영원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 나는 확언한다. 동물농장에 나오는 동물 하나하나는 인간 군상에 대입할 수 있다. 나는 복서에게서 모든 노동을 긍정하려고 애쓰는 좌파 신문의 칼럼들, 엄마가 된다는 것을 지질하게 여기고 그 대신 커리어우먼이 되기를 바라는 현대인을 본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펜을 휘두르는 우파 언론에서는 돼지의 냄새가 난다. 자본주의에 1도 찍소리 못 내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고 복종하는 개들과 양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측면에서 동물농장의 알레고리는 시대와 이념을 초월한 영원한 Class. 내가 더 이상 동물농장을 칭찬하면 이 작품에 누다. 대신 1984 이야기를 하자.
조지 오웰은 자신의 믿음과 사회에서 드러나는 패턴을 처음엔 동물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었다가 1984에서는 훨씬 더 나아가 직접적으로 기술하기 시작한다. 빅브라더에 대한 1의 의심도 없는 오브라이언의 입을 통해 또는 빅브라더를 비판하는 골드스타인의 책을 통해서 말이다. 그가 바라보는 사회의 구조와 정치원리 모든 것들이 직접적으로 기술된다. 때로는 너무 직접적이라 작가의 뇌피셜을 써놓은 일기장 같기도 해서 거부감이 든다.
나는 특히 오세아니아 등 3국이 자신들의 영구 집권을 위해 서로 전쟁하지 않는 점에 나는 반박하고 싶었다. 불안은 인간의 영원한 친구이자 역사를 견인하는 축이다. 민주정부가 아닌 이상, 무력을 독점하고 경쟁력 있는 정부가 시민군에게 정복될 가능성은 없다. 때문에 진정으로 독재정부가 두려워하고 불안을 가지는 것은 그들이 경쟁력 없는 정부가 되는 것이다. 적어도 시민군을 제압할 경쟁력은 가져야 한다. 역사적으로 왕조는 시민군마저도 제압하지 못할 정도로 경쟁력을 잃을 때 무조건 멸망했다. 역사적으로 힘 있는 독재정부는 언제나 다른 국가를 이겼고 국민들의 지지마저도 받으며 후세엔 지도자는 성웅으로 치켜세움 받았다. (미국이 전쟁 중에 90%가 넘는 약탈적 세금을 매겼음을 기억하라.)
그런 맥락에서 빅브라더는 현실성 없는 망상이다. 빅브라더는 자신들의 잉여 생산을 불태우고 구성원들을 억압함으로써 생산성을 떨어트리고 너무 많은 자원을 국민들의 생각을 조정하는데 에너지를 쏟는다. 현실성 없는 작가의 뇌피셜이란 것이다. 오늘날 빅브라더의 이념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중국을 보면 현실적인 빅브라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시장주의에 입각하여 국민에게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한다. 동시에 다른 나라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개인으로부터 자유를 빼앗을 준비가 되어있다. 중국인들은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추구함과 동시에 공산당에 대한 자신의 충성을 SNS로 증명하려 한다. 데이터 수집에 대한 제한이 없는 중국의 정책 덕에 IT 일부 분야에서 미국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심지어 행정부의 정책활동마저도 경쟁적으로 한다. 또한 동시에 일당독재 그것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모든 시도에 대해선 철저히 탄압한다.
위의 사례는 작가 묘사한 이중사고가 현실에서 실천되는 사례다. 중국인들은 자유를 믿으면서도 자유를 포기할 준비는 얼마든지 되어있다. 자유민주국가에서 사는 우리 입장에서 문제는 그게 잘 동작한다는 것이다. 뉴스만 보면 한국보다 지방자치가 훨씬 잘되는 나라가 중국이다. 공산당원들은 공산당 내부에서 실적을 내어 공산당 내에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난 이런 모습에서 옛날 토지 녹화사업을 성공시킨 한국의 우수하고 열정 많은 공무원들이 떠오른다. 반면 미국의 느릿느릿한 공무원들은 어떠한가, 일론머스크는 나사가 하는짓이 너무 한심해서 스페이스엑스를 만들었다. 평생직장을 얻기 위해 취직하는 한국 공무원들은 어떠한가. 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이후 선거 때마다 현직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내거는 모습을 보며. 경기도 지사로 김은혜가 나오는 것을 보고.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정치는 관계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고, 그런 정치 아래에서는 더 이상 어떤 열정도 혁신도 일어나지 않을 거란 걸 확신하게 되었다. (부디 정치인들이 반성하기를 바란다.)
만약 서구(한국도 이에 포함) 언론들의 적개적 관점이 늘 말하듯 공산당이 그렇게 허약하고 의미 없는 정치체제였다면 그것은 무너졌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국가가 쇠퇴했을 것이다. 현실은 어떠한가. 미국이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고 미래학자들과 심지어 세계 최고의 헤지펀드 운용가인 레이 달리오의 신작인 『변화하는 세계질서』에서 이것이 역사적인 시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괜히 불필요하게 중국을 찬양할 필요는 없다. 내가 이것을 굳이 이야기한 것은 기존에 우리들이 너무나 적개심에 가득 찬 마음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그것에서 무엇이 공산당을 살아있게 만드는지 배우려 하지 않은 서구의 태도는 경쟁력 없는 전체주의가 마치 영구히 살아있을 것처럼 ‘He loved big bother’라는 마지막 단어까지 낭만적으로 묘사한 오웰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현실을 배우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낭만을 가슴에 품고 다시 현실의 바닥에 설 필요가 있다. 적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왜 그게 되는지 알아야 한다.
신석기시대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전쟁이 인간에게 행사했던 특유의 압박은 사라지고, 아주 다른 뭔가로 대체되었다.
그래도 오웰의 이 문장 하나는 아주 배울 점이 많다고 본다. 전쟁이 없는 사회에서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변화를 요구하고 적응을 요구하고 공포를 일으키는 그 압력은 무엇으로 대체되었을까? 난 여기서 이건희가 생각났다. 삼성 회장 시절 그는 끝없이 위기라고 강조하며 뭐든지 바꾸라고 하고 끝없이 삼류 공무원들을 비판했다. 그는 실질적인 문제와 아주 거리가 있는 곳에서 허울 좋은 구호만 외치면 되는 정치인들과는 달리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을 이끌어야 했던 리더였다. 그들의 행동과 생산품들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시장에서 평가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희는 가장 경쟁력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전쟁이란 개념을 조직에 불어넣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요즘 삼성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1984에서는 빅브라더에 대한 묘사만 빼면 꽤나 괜찮은 이야기들도 있다.
내 글엔 두 가지의 주장을 했다. 인간에 대해선 영구불변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는 지혜가 동물농장에 있었고 사회에 대한 영양가 없으며 지나치게 낭만적인 묘사와 동시에 뼈가 있는 서술도 1984엔 공존한다. 나는 경험칙에 따라 소설을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하며 터부시 하며 살아온 측면이 있었다. 책 속의 사회를 통해 무언가 배우고 싶으면 차라리 사회학 책을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틀렸던 거 같다. 오웰의 책은 다르다. 강력 추천한다. 특히 동물농장은 자녀들에게 꼭 읽게 하고 싶다. 그 농장의 역사가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재생되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지 생각해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