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어떤 타이틀이 그 사람에게 붙여진다면, 그 사람을 이해하는 매우 쉬운 방법이 생긴다. 타이틀의 부여는 우리 뇌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주 가성비가 괜찮은 일인 것이다. 그렇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넓고 넓은 유튜버 세상
코로나 사태로 전 교수의 유튜버화가 진행된 2020년의 봄, 나도 유튜버 데뷔를 위한 많은 노력을 했다. 원래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시장 조사가 우선되어야 하는 법. 기존의 유명 유튜버들은 어떻게 1시간 동안 강의를 진행하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사실 정말 유명 유튜버는 1시간이나 되는 영상을 올리지 않는다는 것은 함정ㅠ ㅠ) 유튜버 항해 삼매경에 빠졌었다.
유튜브의 세상은 넓고도 깊어서, 어찌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은지, 시장 조사하다가 다른 주제로 빠져 금방 하루를 다 보내기가 일쑤였다. (아마 원격 수업을 수강한 많은 대학생들도 나와 같지 않았을까...)
세종과 노예
이런저런 동영상을 보다가 어떤 강의를 보게 되었는데, ‘세종은 성군인가?’하는 내용의 동영상이었다.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우리의 역사상 최고의 임금이라고 불리는 세종이 재위 중에 치명적으로 나쁜 정책을 추진했고, 그에 따라 조선이 폭망했기 때문에, 성군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의외로 논쟁이 붙어서 전쟁이 진행 중인 것 같았다.
이런 종류의 논쟁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의 역사 지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 뭐라 말을 얹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이 논쟁을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세종이 나쁘다는 쪽은 조선이 폭망한 이유가 과도한 신분제 사회였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조선 때에는 전 국민의 절반 정도가 노비였고, 노비에 대한 처우가 너무 열악해서 노비의 도주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여, 그 도주한 노비를 잡으러 다니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까지 있었다는데, 우리에게 드라마로 익숙한 ‘추노’가 그들이다(가아~슴을 데인 것처럼, 눈물에 베인 것처럼~~ 언년아~~~).
그런데 고려 시대에만 하더라도 노비의 수가 그 정도로 많지 않았고, 노비들이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는 주인을 고발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조선 시대에 비해 훨씬 좋은 환경이었단다. 그런데 세종 때에 신분 제도를 강화하는 정책인 종모법(從母法, 노비인 여성이 낳은 자식은 무조건 노비가 되는 법), 노비고소금지법(奴婢告訴禁止法, 노비가 주인을 고소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 법)을 실시하여 조선이 선비의 천국, 노비에게는 지옥인 나라가 되었으니, 어찌 세종을 성군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이 어떤 학자(역사학자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기는 하다)에게서부터 제기된 듯했다.
세종은 건들지 마라!
이 주장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매우 많았다. ‘세종은 건드리지 마라’라는 반응에서부터, 세종이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이 많은데 그런 정책 한 두 개로 폄하할 수 없다는 주장, 그리고 세종 때 그런 정책이 시행된 것은 사실이지만 세종 때 노비를 심하게 다룬 양반들을 벌 준 기록들도 있으니 세종의 애민 정신은 의심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나는 역사에 흥미는 있으나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라 이 논쟁에 대한 의미를 언급할 능력도, 이 논쟁에 대한 의견을 말할 능력도 없다. 오늘 이 논란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세종은 성군인가’라는 논쟁에 흥미를 느꼈던 지점은 왜 사람들이 ‘성군’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하거나, 빼앗으려는 일에 대해서 이렇게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까지 열중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타이틀의 효능
사람들은 게으르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 부지런한 사람들도 많지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게으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뇌는 게으르다. 쉬는 것을 좋아한다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뇌가 게으른 이유는 ‘피곤하니까!’이니...
하지만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리다가 퇴근하여 침대에 누워 ‘피곤하니까’ 청소와 요리를 건너뛰고, 넋을 놓은 채 배달 음식 앞에서 TV나 핸드폰을 잡고 있는 우리들을 비난할 수 없듯이 (뭐, 우리 부인님은 나를 비난하기는 하지만..) ‘피곤하니까’를 외치는 우리의 뇌를 비난할 수는 없는 듯싶다. 우리 뇌는 이미 너무나도 열심히 일하고 있으므로...
세상은 복잡하다. 그 복잡한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우리 뇌가 중노동한 결과이다. 요즘 인공 지능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무섭게 발전하고 있지만, 효율성의 측면에서 인간의 뇌와 비교할 수는 없다. 이렇게 중노동을 하다 보니, 우리 뇌는 틈만 나면, 기회만 있으면 쉬고 싶어 한다. 정확하게는 조금 더 쉽게, 효율적으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이때, 타이틀은 종종 매우 도움이 된다.
어머니도 모르는 우리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을 해 보자.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며, 매우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50년 가까이 나를 키우신 우리 어머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고 하시니,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어떤 타이틀이 그 사람에게 붙여진다면, 그 사람을 이해하는 매우 쉬운 방법이 생긴다.
예를 들면, 개인인 ‘최훈’ 앞에 ‘심리학자’라는 타이틀이 붙는다면, ‘심리학자’라는 고정관념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최훈’에게 적용시키면 된다. ‘심리학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명확하게 말하기는 힘들지만, 대략 남의 말을 잘 들어주며, 상담의 전문가이며, 한 두 마디의 대화로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독심술사인 듯, 최면술사인 듯 한 고정관념이 있다면, ‘최훈’은 그런 유형의 사람일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수많은 시간을 들여서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보다 ‘심리학자’라는 타이틀을 통해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간편하고 쉽다.
물론 오류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심리학자이지만, 상담 심리학자가 아닌 지각 심리학자로 상담에는 매우 취약한 사람이므로...) 생각보다 정확도가 나쁘지 않다. (이건 일종의 바닥 효과일 수 있다.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오류가 많이 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즉, 타이틀의 부여는 우리 뇌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주 가성비가 괜찮은 일인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고정관념의 효과는 사회 심리학에서 주로 다루는 연구 주제이다. 미국에서는 인종과 관련된 고정관념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고, 우리나라에서는 지역감정에 대한 초점을 맞춘 연구가 많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고정관념의 효과, 타이틀의 효과가 가장 기본적인 정신 과정인 감각(정확하게는 지각)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더 밝게 보이는 백인 얼굴
Levin과 Banaji(2006)는 인종이라는 가장 대표적인 고정관념이 얼굴색의 지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소개했다. 연구자들은 컴퓨터를 사용하여 흑인의 전형적인 얼굴과 백인의 전형적인 얼굴을 만들고, 그 피부색을 동일하게 조작하였다. 실제 동일한 피부색을 가진 백인과 흑인의 얼굴을 제시하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그 피부색이 얼마나 밝게 보이는지를 평정하도록 하였다. 실험 결과는 독자들이 예상한 그대로이다. 실제로는 동일한 밝기의 피부색이었지만, 참가자들은 흑인의 피부색을 백인보다 더 어둡다고 평가하였다. 인종이라는 타이틀이 피부색의 밝기라는 가장 기본적인 시각 정보에 대한 지각에 오류를 갖게 한 것이다.
최근 이 연구에 대한 비판이 가해지기도 했다. Firestone과 Scholl(2015)은 Levin과 Banaji의 연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했는데, Levin과 Banaji의 연구에 사용된 얼굴 사진들을 뿌옇게 보이도록 blur처리를 한 후에 인종과 그 피부색의 밝기를 평정하도록 하였는데, 의외로 인종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는 경우에도 흑인의 피부색을 더 어둡다고 보고 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흑인의 피부색을 실제보다 더 어둡다고 지각하는 것은 인종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효과라기보다는 얼굴 구조 등의 요소들이 밝기 지각 과정에 영향을 끼친 결과라고 설명하였다.
타이틀과 시지각
이렇듯 논쟁이 있긴 하지만, 제공되는 특정 타이틀이 가장 기본적인 시각 속성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확실하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왼쪽이던 오른쪽이던 6개의 선분이 있다. 주목할 것은 3번과 4번 선분의 길이이다. (a)와 (b)그림의 3번, 4번 선분의 차이가 어떻게 보이는가? 사실 그림에서 사용된 1번에서 6번 선분은 (a)이던 (b)이던 동일하다. 하지만, (a)에서처럼 하나의 네모 안에 6개의 선분이 있을 때는 1번 선분에서 6번 선분으로 갈수록 점진적으로 길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b)에서처럼 두 개의 네모로 구분해 놓으면 3번 선분과 4번 선분의 차이가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이는 동일한 집단에 속한 자극들의 차이는 과소평가하고 다른 집단에 속한 자극들의 차이는 과대평가하기 때문인데, 3번 선분과 4번 선분이 한 집단에 속하여, 동일 집단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면 그 차이가 적게 보이지만, 두 집단에 각기 속하게 되어 다른 집단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면 그 차이가 더 크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지각하는 결과물은 실제 물리적인 세상과는 다르다.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에는 우리의 마음이 개입되어, 우리가 믿는 대로, 아니 믿고 싶은 대로 보게 된다. 복잡한 세상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 뇌가 사용하는 전략 때문이고,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해당 자극을 다르게 이해하고 지각한다. 아마도 이 때문에 ‘성군’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전쟁이 발발한 게 아니었을까?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이해하면서 산다. 사회적 동물로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남을 이해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이는 우리의 생존에 매우 필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우리가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내 뇌가 피곤한 만큼 그 사람을 쉽게 이해하려고만 한다면, 그 사람을 타이틀로, 또 어디서 주워들은 정보로 판단하게 되지 않을까? 지금 연애를 하고 있다면, 친한 친구와 함께 걷고 있다면, 아니면 아직은 어색한 사이의 사람과 함께 마주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자. 어떤 타이틀이나 고정관념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그 사람을 더 알아가려고 노력해보자. 이러한 노력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타이틀을 부여하고 거기에 따라 판단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곳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테고, 그 정확도도 담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게 내 앞의 사람을 대하는 심리학도의 자세일 테니... mind
<참고문헌>
Firestone, C., & Scholl, B. J. (2015). Can you experience ‘top-down’effects on perception?: The case of race categories and perceived lightness. Psychonomic Bulletin & Review, 22(3), 694-700.
Levin, D. T., & Banaji, M. R. (2006). Distortions in the perceived lightness of faces: the role of race categories.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135(4), 501-512.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 인지심리 Ph.D.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학, 석사를 마치고, Yale University에서 심리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Boston University와 Brown University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거쳐 현재 한림대 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만화, 아이돌, 스포츠를 지각 심리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평생 덕질을 하듯 연구하며 사는 것을 소망하는 심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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