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국내에서 정체성을 다루는 첫 책이 출간되었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박선웅 교수의 '정체성의 심리학'의 정체를 저자가 직접 안내한다.
정체성이나 정체성 위기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이 있었으나 정체성에 대한 본격 심리서적은 없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정체성과 다른 여러 심리학적 개념을 혼동하며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르며 살다가 뒤늦게 정체성 혼돈이 오거나, 삶의 중요한 시기에 갑자기 정체성을 찾겠다며 산티아고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정체성은 정말 그런 식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박선웅 교수는 책 <정체성의 심리학>에 정체성에 대한 전방위적인 지식을 담았다. 저자에게 이 신간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
본격 정체성에 대한 책 감사히 잘 읽었다. 본 저서에서 정체성이 잘 형성되어 있는 사람은 (1) 영혼의 엑스레이 사진을 가지고 자신을 잘 들여다보며 (2) 자신의 목적지가 찍힌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있으며 (3) 삶에 대한 지침, 즉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적혀있다.
셋 다 어려운 것 같은데(...) 혹시 셋 다 어려워하는 사람을 위해 이들 중 무엇을 먼저 신경 써보면 좋겠다 하는 팁이 있을까?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감각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죠. 뭐가 맛있고, 뭐가 아프고, 뭐가 부드럽고 하는 등. 하지만, 영혼의 감각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 쓰고 살지 않는 것 같아요. 무엇이 내 마음을 뛰게 하는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무엇이 나를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가 등에 대해서는 많이 무뎌져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이런 것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할 때, 자신의 영혼이 어떤 감각을 느끼는지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일 때 영혼의 엑스레이 사진을 볼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자신에 대해 알게 되면, 자신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정할 수 있고, 삶에서 해야 하는 많은 일들에 대한 우선순위도 자연스럽게 설정할 수 있을 겁니다.
댄 맥애덤스Dan McAdams의 모델을 가지고 정체성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세 가지 요소를 알게 되면 누군가를 알게 되는 것이라고. 일반인들에게는 꽤나 생소한 개념일 수 있는데 이 인터뷰에서 간단히 소개해주면 좋겠다.
맥애덤스가 “우리는 누군가를 알 때 무엇을 아는가?”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논문의 내용이에요. 다른 사람에 대한 앎은 크게 세 가지 수준, 즉 기질적 특성, 특징적 적응, 인생 이야기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겁니다.
기질적 특성은 우리가 보통 다른 사람의 성격에 대해 얘기할 때 흔히 쓰는 표현들이에요. 누구는 말이 많다, 성급하다, 성실하다,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 등등. 심리학에서 성격 5요인이라 불리는 외향성, 신경성, 개방성, 우호성, 성실성 등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특성들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몇 분만 얘기를 나눠봐도 대략 알 수 있는 특성들입니다.
특징적 적응이란 사람들이 각자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응하는지에 관한 것으로, 가치나 목표, 동기, 애착 유형 등을 말합니다. 우리는 수업에 따라 어떤 과목은 A+를 받자고, 어떤 과목은 F만 면하자고 목표를 세우고는 합니다. 각 수업이라는 서로 다른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는 기질적 특성과는 독립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같은 과목을 듣는 사람들 중에서 신경성이 높은 사람도 우호성이 높은 사람도 A+를 받겠다는 목표를 가질 수 있죠.
마지막으로 인생 이야기는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삶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란성 쌍둥이가 같은 육체를 가질 수는 있지만, 같은 이야기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외향성(기질적 특성)이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의사라는 목표(특징적 적응)를 가질 수 있지만, 왜 의사가 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정말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 마지막 단계인 인생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이죠. 자기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해 MBTI 결과를 보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진짜 자기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여다봐야만 합니다.
오.. 그렇다면 나의 기질적 특성을 잘 모르겠다면, 나의 적응이나 인생을 아직은 잘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나에 대한 첫 번째 평가가 내 기질적 특성일 수도 있겠다. (아, 그 사람..? 어떤어떤 사람인 것 같던데..?) Hmmteresting...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내 정체성을 찾아가면 분명 좋은 일인 것 같기는 한데, 왜 꼭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정체성 찾기를 강조하나...?
좋든 싫든 우리는 우리로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제가 강동원을 너무나 좋아하고 강동원이 너무나 부러워 강동원이 하는 모든 것을 따라 해도 저는 강동원이 될 수 없죠. 저는 결국 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저로서 잘 살기 위해서는 저에 대해 알아야만 합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얼 잘하고 무얼 못하는지,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는지 등을 알고 그러한 정보에 기반해서 삶의 중요한 선택을 할 때 그러한 선택들이 결국 우리를 더 좋은 삶으로 이끌 겁니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답변, 즉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겁니다.
나는 결국 나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묘한 안심을 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체성을 잘못 찾은 것인지, 너무 잘 찾은 것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다소 맹목적으로 보일 정도로 하나의 삶의 의미에만 집중하는 분들을 보게 된다.... 괜찮은 걸까..?
좋은 포인트입니다. 제가 각자의 인생 이야기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정체성이란 어느 날 신이 부여한 지상명령 같은 게 아니에요. 자신의 삶 속에서 꾸려나가야 할 무언가 이죠. 그래서 저는 정체성의 범위는 자기가 기꺼이 감내할 수 있을 만한 영역까지라고 생각해요.
최근 많은 명성을 얻은 장류진이라는 소설가가 있어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는데 계속해서 소설이 쓰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직장 다니며 온라인 강의도 듣고 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써서 최근 10년의 직장생활을 접고 소설가로서 세상에 나왔지요. 이 분의 인터뷰를 보면 계속해서 ‘생활인’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자기가 벌어서 먹고살아야 하는 삶이라는 거죠. 직장생활을 하며 바쁜 시간을 쪼개고 남들 놀 때 못 놀아도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은 이 분이 소설가로서의 삶을 위해 기꺼이 감내했던 부분이죠. 어느 날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았다며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골방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은 (최소 100억대 현금 부자가 아니라면) 그리 현명한 선택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정체성 이야기를 하다가 꼭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강사들이나 책들이 있다. 어쩐지 듣고 있자면 꽤나 불편해지는데, 이 책에는 이런 내용도 짚고 넘어간다. 설명을 부탁드린다.
최근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자존감 열풍이 관련 주제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상당히 걱정스럽습니다. 이런 책들에서 다루는 내용은 대부분 80년 대에 나왔던 자존감 연구결과예요. 그 이후 업데이트가 많이 되었는데 이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과거 자기가 배웠던 내용을 들고 나와 사람들에게 설파하고 있어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좋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죠. 그런데 자기‘만’을 사랑하는 것은 문제가 많아요. 나르시시즘의 대표적인 특징이죠.
과거에는 나르시시즘이 극단적으로 높은 자존감이라 생각했습니다. 허나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그게 아니에요. 자존감과 나르시시즘은 뿌리부터 달라요. 자존감은 자신 역시 남들만큼은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평가예요. 그래서 나와 남에 대한 존중이 함께 공존하는 수평적 판단이죠.
하지만, 나르시시즘은 ‘내가 너보다 월등하다’라는 수직적 판단이에요. 그런데 자기를 사랑하라는 말을 통해서는 이 둘을 구분할 수가 없고, 그래서 자존감을 올리겠다고 시작했다가 나르시시즘만 올리고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존감을 어떻게 올릴지도 문제예요.
과거에는 그냥 거울을 보며 자신은 소중한 존재라고 주문을 걸 듯 지속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최근 연구는 그렇게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자존감(연약한 자존감)과 가치 있는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올라간 자존감(튼튼한 자존감)을 구분합니다.
최근의 연구결과를 아는 학자 중에서 인위적으로 주문 외우듯 자존감을 높이는 데 찬성하는 사람은 99.9%의 확신을 가지고 얘기하건대, 없습니다.
자존감은 목표가 아니라 좋은 삶을 산 것에 대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출발점이 바로 정체성을 찾는 것입니다.
워라밸을 강조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워라밸이라는 단어에 현혹돼 일을 마치 자기 삶을 방해하는 뭔가로 바라보는 것은 건강한 문화는 아니다. 저자의 이 주장은 참으로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보기에!! 이 인터뷰에서도 꼭 설명을 부탁드리고 싶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워라밸은 워크work(일)와 라이프life(삶) 사이의 밸런스balance(균형), 즉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지나치게 일에 치우쳐 사는 삶을 탈피하자는 의미로 사용되죠.
저는 이 말의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워라밸이라는 표현 자체는 그리 달갑지 않아요. 일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깨어 있는 시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일을 자신으로부터 소외시켜 삶과 대척점에 두고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9시에 퇴근해 6시 땡치면 퇴근을 해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생각하기에 정말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의미의 균형’이에요.
자신이 하는 일에서 모종의 의미를 발견하는 거죠. 이 일 덕분에 우리 가족과 함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부터, 일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 나아가 일을 통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에 이르기까지 모종의 의미를 찾는 거죠. 그렇게 일이 자신의 삶의 중요한 의미로 다가올 때 직장생활도 더 즐거워지고 자신의 삶도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좋은 인생은 좋은 인생 이야기로 완성된다'라고 적었다. 좋은 인생 이야기의 구성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제 책의 이론적 기반인 서사정체성(narrative identity) 연구에 따르면, 좋은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자신의 측면을 잘 통합해 내고,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런데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어떤 경험을 통해 지금의 자신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나서, 두 가지를 보면 됩니다.
첫째, 그 이야기가 자기 자신을 충분히 만족스럽게 표현하고 있는지. 둘째, 글 속에서 묘사된 자신이 남들이 생각하는 꽃길은 아닐지라도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제대로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되는지.
우리는 살면서 정말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매일 많은 이야기를 할 겁니다. 허나 대부분의 이야기는 말해지는 순간 숨과 함께 증발하고, 몇몇의 이야기만 우리 곁에 남습니다. 왜,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 곁에 머무는지는 정말이지 미스터리예요.
하지만, 그렇게 남은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오늘 저녁이 되었든 50년 후가 되었든 우리가 죽어 하나의 이야기로 남는다면, 어떤 이야기일지, 어떤 이야기가 되고 싶은지 생각하며 산다면 훨씬 더 좋은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읽다 참 궁금해지는 인물도 있었다.
'당시 나는 이 선배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논술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용돈을 벌었다. 언제인가 얼마나 많은 답안을 채점하는 게 좋겠냐고 묻자, 선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돈에 쪼들리지 않을 만큼 많이,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적게.'
그때 그 선배의 나이가 많지 않았을 텐데 참 멋진 통찰을 준 것 같다. 이러한 원칙이 독자의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설명을 좀 부탁드린다.
정체성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소위 깨달은 자들의 통찰이 많죠. 재밌는 것은 그 통찰이 서로 상충하는 경우도 많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사고로 죽을지도 모르니 오늘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오늘이 남은 인생의 첫날이니 오늘이 삶의 첫날인 것처럼 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충하는 원칙 중 하나를 골라야 할 필요는 없어요. 그 두 원칙 사이에서 적당한, 즉 자신에게 알맞은 균형점을 찾으면 됩니다.
제 연구에 참여했던 한 참여자는 죽음에 대한 두 극단 사이에서 자신의 삶의 원칙을 “내일 죽어도 후회하지 않게, 내일 죽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게” 사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그 균형점이 어디인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죠.
몇 년 전 인터넷상에서 맛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돈을 모으기 위해 마셔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쟁이 붙은 적이 있어요. 더운 날 시원한 커피 한 잔 마시지 못한다면 지금의 내 삶이 지나치게 우울할 수 있죠. 허나 그렇다고 매일 비싼 커피를 마시면 분명 자신의 자산은 줄어들 겁니다.
얼마나 많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오늘 내 마음이 초라하고 가난하지 않을 만큼 많이, 내일 내 삶이 초라하고 가난하지 않을 만큼 적게.” 얼마나 많은 사람과 연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사람과 사랑을 알 수 있을 만큼 많이, 사람과 사랑을 비교하지 않을 만큼 적게. 다시 말하지만, 두 원칙 사이의 균형점은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고, 자신의 정체성은 그 균형점 위에서 꽃 피울 겁니다. “그 지점이 도대체 어디야?” 하며 답답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영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분명 찾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분들에게 당부 혹은 제안을 한다면?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많이 혼났습니다. 너무 어렵게 쓴다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서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게끔 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체성,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답변을 포기한 질문”이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 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그에 대한 답은 자신이 찾아야만 하는 거죠. 그래서 정체성은 요즘 현대사회에서 더 중요합니다.
<수상록>이라는 책을 쓴 몽테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적지가 없는 사공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이 있을 때 그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 순풍인 거죠. 갈 곳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바람도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바람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정체성을 갖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정했을 때 여러분의 삶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만나는 겁니다.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삶의 목적지는 어디인지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정체성의 심리학에 대한 짧은 강연 시리즈 중 하나를 함께 보내드립니다.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7QAcO-mQhw mind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임상심리학회 홍보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의원 및 학술위원. 정신병리 및 심리치료의 효과를 임상과학 및 뇌신경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연구를 지속함.
>> 한국인을 위한 심리학 잡지, <내 삶의 심리학 mind> 온라인 사이트가 2019년 7월 8일 오픈하였습니다. 내 삶의 비밀을 밝혀줄 '심리학의 세계'가 열립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심리학자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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