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따라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어, 나도 씨야 좋아하는데.”
거짓말을 쳤다. 사실 나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즐겨 듣는 음악들은 있었지만 특정 가수에 꽂혀 덕질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왜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했을까? 그 이유는 같은 반 친구 J와 친해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같은 가수를 좋아하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했다.
그 말을 하기까지 나름 철저한 계획과 노력이 필요했다. 틈만 나면 컴퓨터를 킨 후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그룹 ‘씨야’의 정보들을 상세히 검색했다. 데뷔 날짜, 앨범 제목, 멤버들의 이름, 나이, 생일, 심지어 혈액형까지 알아보았다. MP3는 모두 씨야의 곡들로 채워졌고 매일 노래를 듣고 불렀다.
그리고 친구 J와 함께 매일 그룹 씨야에 대한 수다를 떨었다. 어떤 노래가 좋은지, 최근 어느 음악 프로그램에 나왔는지 등등. 그 친구가 씨야에 대해 말을 늘어놓는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 점이 부러웠던 걸까. 주위 친했던 다른 친구들도 모두 다 좋아하는 가수나 그룹이 한 명쯤 있었다.
나도 “넌 가수 누구 좋아해?”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한 명 만들고 싶었다. 어떤 이유로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룹 소녀시대의 리더 태연을 좋아한다고 결정했다. 써 놓고 보니 말이 참 웃기다. 씨야에 대해 알아본 것처럼 태연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누군가 물어봤을 때 내가 좋아한다는 사실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그건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나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같은 반 대부분의 친구들이 내가 태연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도 그 거짓말을 실제로 믿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오글거리지만 친구 J와 나는 서로에게 ‘씨야 바라기’, ‘태연 바라기’ 등의 글귀들을 메모장에 예쁘게 적어 선물해주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도 피해보지 않고 굳이 칠 이유가 없는 거짓말이랄까. 단지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친 거짓말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실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더 숨긴다는데 오히려 반대인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좋아하지 않는 걸 굳이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않으니까. 아, 그냥 말을 아끼게 되는 것 같다. 거짓말 하기는 싫어서.
그런데 거짓말을 진심으로 믿어버리게 되는 과정에서 그룹 씨야가 정말로 좋아졌다. 순수한 목적으로 좋아하게 된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호감이 생겼다. 오죽하면 나와 목소리가 전혀 다른 씨야 멤버들의 중저음 목소리를 따라 하겠다고 방 안에서 온갖 난리를 치다가 목이 엄청 상해버리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는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 좋아하는 것을 따라한 이야기 었다면 앞으로 나올 이야기는 그냥 사람 자체를 따라 하게 된 이야기이다. 돌이켜보면 나 자신이었던 적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출신 중학교는 영어 교육의 중심지였던 대치동 근처에 위치해 있었기에 다양한 영어 교육을 접할 수 있었으며 주위 어울리던 친구들의 취향도 영어와 밀접해 있었다. 당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미드(미국 드라마)였는데 가장 즐겨보던 미드는 <Bigbang theory>라는 4명의 괴짜 공학도 이야기를 다룬 코믹 드라마와 고등학교 뮤지컬 동아리의 내용을 담은 <Glee>라는 음악 드라마였다. 영어 공부하라고 부모님께서 사주신 전자사전에 드라마를 다운로드하여 매일 밤마다 푹 빠져 보곤 했다. 한글 자막만 킨 채로!
드라마를 그저 좋아하는 것에 그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들의 스토리의 매료된 나머지 일상 속에서 캐릭터들을 따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들을 웃기려고 따라한 것도 아니었고 특기 같은 걸로 만들려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일상 속에서 그들을 연기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아마도 내 생애 첫 캐릭터 연기였을 것이다.
<Bigbang theory>의 Sheldon 에게도 푹 빠졌었지만 훨씬 더 오래 간 건 <Glee>의 Rachel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넘도록 그녀를 따라하며 살았다.
<Glee>의 Rachel Berry라는 캐릭터는 저 옛날 브로드웨이의 스타인 Barbra Streisand 나 Patti Lupone 같은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하는 고등학생이다. 단점이 있다면 조금 재수 없다는 것? 그런 성격 탓인지 학교 친구들에게 은근히 따돌림을 당한다.
하지만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보이는 그녀의 걸음걸이는 항상 당당했으며 자신의 말에 확신이 있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자신만의 고집과 신념이 있었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노래를 무척 잘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녀가 가입한 뮤지컬 동아리에는 음악을 사랑하는 선생님과 동료들이 늘 함께했다. 그들 또한 Loser라고 불리는 비주류 학생들이었다.
모난 성격 탓에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대신에 실력이 있고 매일 자기 계발에 힘쓰는 Rachel 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고 어느샌가 내 마음속에 쏙 들어와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꿈을 이뤄야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던 시기에 그녀는 나의 롤모델이 되어주었다. 왠지 나도 저런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도 저런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은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졌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가던 무렵 관련 고등학교에 합격하게 된 이후로 매일 <Glee> 같은 삶을 꿈꿨다. 그렇게 입학하게 된 방송연예과는 25명이 3년 내내 같은 반을 유지해야 하는 구조였고 그 점은 나를 무척 설레게 했다. ‘노래와 춤과 연기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3년 내내 같은 반이라니. Glee 랑 정말 비슷하잖아!’. 나는 완전히 Rachel 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와 내가 닮은 부분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순전히 내가 그녀를 닮고 싶다는 욕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녀를 베끼게 되었다. 학교 복도를 걸을 때는 항상 야심 찬 눈빛을 띤 채 따박따박 걸어 다녔고, 똑 부러지지만 약간은 재수 없는 듯한 말투를 구사했으며, 꿈에 대한 포부를 남들에게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심지어 사복을 입을 때는 그녀가 자주 입고 나오던 셔츠+스웨터 조합까지 따라 하고는 했다.
Rachel 에게는 독특한 습관이 하나 있는데 자신의 이름을 쓴 뒤에 반드시 그 옆에 별 스티커를 붙이는 습관이다. 습관이라기보다 하나의 의식 같은 건데 스타를 상징하는 별 스티커를 붙이면 자신이 곧 스타가 될 거라는 의미이다.
그걸 또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지. 문구점에서 금색 별 스티커를 왕창 사서 내 이름이 쓰인 곳곳에 붙였다. 누군가 왜 별 스티커를 붙이냐고 물으면 “스타가 될 거라는 의미야.”라고 말하고는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나는 그녀를 따라 하고 있지 않다’라는 강한 자기 최면/합리화와 동반되었다. 내가 그녀를 따라 하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고 물론 나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 따라쟁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늘 이렇게 생각하고는 했다. Rachel과 나는 엄청 닮았기 때문에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말을 하는 거라고. 의도적으로 따라하는 게 아니라고 사실을 부정했다.
따라쟁이의 Rachel 따라 하기는 1년 정도가 지나자 사그라들었다.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게 지치기도 했고 절친 M에게서 “너 맨날 글리에 걔 레이첼 따라 하잖아.”라는 말 듣고 나서 엄청난 민망함을 느낀 뒤 내 속에서 천천히 없애나갔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털어놓는 사실들이 은근히 많다. 사실 좋아하는 캐릭터 따라 하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닌데 들키지 않길 바라면서 내심 조마조마했던 게 기억이 난다. 참 많이도 누군가를 따라 했었다. 캐릭터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 친구들, 주위 어른들… 지금도 온전한 나 자신이라고는 말 못 하겠다. 그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라고 애써 생각해보려 하지만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따라하기에서 벗어나기
아주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생각이나 말을 많이 따라 했다. 특히 엄마. TV 드라마에서 어떤 장면이 나오는데 엄마가 그 장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와 똑같이 말하고는 했다. 연예인 중 누가 예쁘다,라고 말하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 저게 예쁜 얼굴이구나.’ 나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모든 걸 그냥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생각이라는 게 아예 없던 시절인 것 같다. 나만 그랬던 건지 정말 궁금하다. 어린 내가 보기에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온전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 보였단 말이다. 참 멍청한 아이였다.
머리가 조금 크고 나서는 누군가의 생각을 닮아가는 게 두렵게 느껴졌다. 온전한 나의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그런 것 같다. 이혼 이후 부모님의 말이 내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엄마는 말하곤 했다. “네 아빠 똑같이 닮아가니?”. 아빠는 말했다. “네 엄마랑 똑같이 닮아가고 있어.” …….. 물론 둘 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내뱉어진 말들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닮아간다’의 속 뜻은 ‘왜 그 인간의 안 좋은 점만 닮아가니’ 겠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 속에서 결론 지은 것은 바로 “아무도 닮지 말아야겠다.”였다.
하지만 그런 나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들은 내 머릿속을 침투했고 그것들은 내 생각 속 질서를 어지럽혔다.
그 두려움이 도화선이 되어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온전한 생각과 의견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내게 인문학적 지식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입시/수능 공부 말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전시회에 가고 많은 기사를 접하고… 공부하는 이유가 누군가를 닮기 싫어서 혹은 누군가의 생각에 휘둘리는 게 싫어서라니. 어찌 보면 자존심 문제인 건가.
여전히 어떻게 하면 온전한 나의 생각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한다. 기껏해야 스무 살 조금 넘게 살았지만.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보려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소설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스스로 묻는 말이다. 이보다 더 공감될 수는 없다. 어쩌면 평생을 나 자신이 아닌 채로 살아갈지 모른다. 이제는 그게 엄청 무섭거나 걱정되지는 않지만 가끔 고민되는 것은 사실이다. 불필요한 생각일까? 온전한 나 자신이 되면 그 뒤엔? 별다른 차이가 있을까?
이 생각을 여러 번 시도한 결과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걸 깨달았고 내일 무슨 글을 쓸지나 고민하는 것이 나의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모토를 나에게든 누구에게든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 말을 수행해야 하는 순간 그 모토를 따라 하는 게 되어버리니까.
마지막으로 이 모든 걸 총 정리할 수 있는 농담 하나를 써본다.
You can’t trust everyone. -ever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