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꿈속의 꿈속의 꿈, 바닥에서 10cm 정도 떨어진 허공을 천천히 날아다니는 꿈, 여우와 이야기를 하는 꿈 등 별의별 희한한 꿈들을 꿨었지만 많은 것들은 얼마 가지 않아 머릿속에서 흐려져 버리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꿈이 하나 있다. 10년 넘도록 나의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꿈. 그건 바로 내 앞에서 엄마가 살해당하는 꿈이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8살의 내게 그 꿈은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캄캄한 새벽, 엄마와 나는 머물고 있는 주택이 있는 골목길로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왼쪽에는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었고 오른쪽에는 단독 주택들이 일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의 공기는 스산하고 오싹한 분위기를 풍겼고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걷다 보니 집 문이 보였다. 한 3블록만 더 가면 도착인데, 우리는 들어가지 못했다.
저 멀리 맞은편에서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담배를 태우며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중충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 남자는 우리를 가로막았다.
나는 겁에 질렸고 엄마를 애타게 쳐다보았으나 엄마는 그저 꿋꿋이 그 남자를 향해 걸었다. 그렇게 가까워진 그 남자와 우리는 2미터 정도의 간격을 유지한 채 멈췄다. 그 남자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극도로 긴장했다.
남자는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꽁초를 바닥으로 던졌다. 꽁초에서 시작된 작은 불은 바닥에 휘발유가 뿌려져 있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켜져 거대한 벽을 만들었다. 우리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내가 불길에 휩싸이지 않게 하려 나를 꼭 감싸 안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온몸이 타 목숨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어느새 불길은 사라졌고 그 남자는 칼을 들고 있었다. 몇 발자국만 더 가면 집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저기까지 어떻게 가지? 나는 살고 싶다는 두려움과 간절함으로 엄마의 시체를 번쩍 들어 올려 괴한의 계속되는 습격으로부터 내 몸을 보호했다. 그렇게 죽은 엄마의 몸을 방패 삼아 집 문 앞까지 도착했고 힘겹게 문고리를 돌리는 순간,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듯 까만 배경화면에 흰색 글자들이 펼쳐졌다. 아마 나도 죽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짧고 강렬한 꿈이 마무리되었다.
꿈에서 깬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대성통곡을 했다.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엄마는 내 울음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었다. 놀란 엄마가 나를 껴안으며 무슨 일이냐고, 무서운 꿈을 꿨느냐고 물었다. 나는 차마 나 살자고 엄마를 방패 삼아 도망친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그저 '엄마가 죽는 꿈을 꿨어요' 하며 펑펑 울었다. 엄마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엄마 여기 멀쩡히 살아있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도 꿈속에서의 죄책감이 살아 움직이며 종종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나서야 엄마에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평생 꿨던 꿈 중 제일 생생한 꿈이다. 그리고 최근 꿈속의 장소와 흡사한 곳을 발견했다. 밤이었고, 오묘한 죄책감과 긴장감을 느끼며 재빨리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