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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Dec 29. 2020

'동물학대'가 뭔지는 아세요?

장마가 한창이던

여름이었다.


하루가 끝나고

집에서 챙겨 온 우산을 챙겨

회사를 나섰다.


다행히 비는 잠시 그쳐 있었다.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물에 젖어 미끄러웠다.


한 손엔 짐을 들고

다리에 힘을 주면서

조심스레 걷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계단을 무사히 내려와

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지나서야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가 일하는 지자체 보호소의

자원봉사자였다.



"주무관님, 이거 어떻게 방법 없을까요?"



그녀가 보내온 사진과 동영상에는

트럭 안에 켜켜이 쌓인 수십 마리의 개가 있었다.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식용 목적의 개를 운반하는 차량은

대개 그렇게 동물을 싣고 다니니 말이다.


그녀의 메시지 한 통으로


퇴근하자마자 시원한 맥주를 연거푸 들이마시고

일찍 잠이 들려던 나의 계획이 무산됐다.


동물보호법 내용을 찾아 읽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제가 지금 갈게요. 트럭 앞에서 경찰 불러주세요. 혹 제가 도착하기 전 경찰이 먼저 오면. 동물보호법 제9조 제1항 제2호 근거로 신고했다고 말씀해 주시고, 시청 담당자가 여기로 오고 있다고 전해주세요."


 

발걸음을 돌려 트럭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20여분이 걸렸다.


경찰은 아직 오지 않았고

내게 연락했던 자원봉사자는 트럭 옆에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장마철의 높은 습도로 인해

거리를 걷기만 해도 온 몸이 끈적였고

동물들은 좁은 공간에 뒤엉켜 있었다.


어떤 개는 다른 개의 목덜미를 물며 스트레스를 표출하고 있었고  목덜미를 물린 개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또 어떤 개는 한없이 기운이 빠진 눈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어떤 개는 새빨개진 눈으로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작은 케이지 안에 몸집이 커다란 개 3-4마리가 구겨져 있는 상황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려 봤다. 내가 할 일들이란 게 어차피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무엇이든 해야 했다.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트럭 안에 있는 동물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던 도중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을 살피는 경찰에게 무슨 일로 신고를 했는지, 지금의 상황이 어떤지 설명하고, 이런 일로 신고해봤자 별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그들이 트럭의 차량 조회를 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5분이 지났을까.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던 운전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이 붉은 채로 나타난 그는 이곳에 차를 세워놓고 저녁식사를 하던 중이라고 했다. 경찰은 운전자를 나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데려가서는 조용히 무언가를 설명했다. 그리고는 그들은 다시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 분이 시청에서 동물보호 담당하시는 분이래요. 동물보호법 위반 사항 있는 걸로 확인되면 과태료 조치할 수 있으니까 협조해주세요."



경찰이 운전자를 타이르자 그는 나에게 인적사항을 불러주었다.


지방에서 몇 시간을 운전해서 올라왔다던 그는 트럭의 실소유자가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빌린 트럭으로 동물을 운송하던 중이라고 했다. 오늘 저녁은 이곳에서 머문 뒤 이른 새벽에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예정이었다고.


며칠 뒤, 나는 그를 동물학대로 검찰에 고발했다.

'과태료' 처분이 아니라 '동물학대'로 고발을 한 것이다.


동물보호법 제9조는 동물의 운송 규정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중, 제1항 제2호는 "동물을 운송하는 차량은 동물이 운송 중에 상해를 입지 아니하고, 급격한 체온 변화, 호흡곤란 등으로 인한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을 것"이라고 운전자가 동물을 운송하며 지켜야 할 사항을 정해놓았지만, 과태료 부과를 위해서는 그 동물들이 같은 법 제32조 제1항의 동물이어야 했다.


다시 말해, 개와 고양이 등의 동물의 경우에도 '반려동물'로서 '판매'의 목적으로 운송하는 경우에만 이를 위반한 운전자에게 동물보호법 제9조에 따른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었다.  


식용 목적인 '가축'에 해당하는 동물을 운송할 때에는 이 법에서 정한 바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 정책 담당자와 시청의 법률 전문가에게 문의했지만 그들도 고민 끝에  같은 결론을 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내 눈앞에서 동물들이 좁은 공간에 뒤엉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법이 없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고이 접어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를 동물보호법 제8조 제2항 제4호 및 시행규칙 제4조 제6항 제2호를 근거로 고발했다.


그가 "동물의 습성 또는 사육환경 등의 부득이한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을 혹서ㆍ혹한 등의 환경에 방치하여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의 판단과는 별개로 확보한 동영상과 사진 등의 증거자료와 최대한 객관적으로 작성하려고 노력한 고발장을 검찰에 보내면서도 어차피 질 싸움을 시작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민단체뿐 아니라 행정기관에서도 같은 싸움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이런 상황이 이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일'이 아니라 '바로 잡아야 하는 일'이 되었다는 사례가 남지 않을까.


결국, 인식의 변화는 그런 사소한 사례가 쌓이는 곳에서 퍼져나갈 것이다.


몇 주 뒤 검찰에서 관내 경찰서로 수사지휘가 내려왔고, 나는 고발 내용 조사를 위해 경찰서에 내방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동물학대가 뭔지는 아세요?"



작은 방에서 고발인 조사가 시작되었고

나의 인적사항과 소속을 확인하는 절차를 마친 뒤

내가 처음 받은 질문이었다.


질문을 받고 머리가 갑자기 멍해졌다.



"'동물학대'가 뭔지 알았으니까 고발을 했겠죠?"



나의 대답 아닌 대답에

조사를 담당하던 형사는

평온하게 질문을 이어 나갔다.



"동물보호법에서 말하는 동물학대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고발하신 거죠?"


"그렇죠."



몇 차례 질문이 이어졌고, 그는 내가 하는 말의 전부를 기록했다. 그러더니 잠시 멈칫.



"아. 뭐, 이 쪽 일도 하시고, 목격하셨고, 불쌍해서 그런 건 알겠는데. 보통 '동물학대'는 길에서 목을 매달거나 죽이거나 하다못해 때려서 어디가 부러지거나, 뭐 이런 걸 학대라고 보죠. 지금 이건 그냥 더운 날씨에 방치한 게 동물학대라고 보는 건데."


"그냥 방치가 아니라, 방치를 해서 신체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였고, 동물보호법에서는 그것도 '동물학대'라고 명시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게 동물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였다는 걸 어떻게 입증하실 건데요?"


"덥고 습한 날씨에 좁은 케이지 안에 수십 마리가 1시간 이상 방치되어 있었는데,  이게 동물들의 신체에 고통을 주었다는 것에 대해 제가 직접 수의학적인 자료를 가지고 와서 입증해야 하나요? 입증할 수 있어야만 고발할 수 있는 건가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건가요?"



반복되는 질문과 의도가 뻔한 말들에

목소리는 점점 격양되었고 말은 빨라졌다.


담당 형사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시청에 고발장 검토해주는 변호사 없어요?"



그에게 질문 아닌 질문을 받고

나 역시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한 시간 30여분 이어진 고발인 조사에서

같은 질문을 최소 10번은 받았다.



"그래서 그게 왜 동물학대라는 거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까 했는데요."


"다시 설명해주세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지 동물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해서

고발한 것뿐인데도 이렇게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만약 내가 직접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했을 때


내가 겪은 일이 '고통'이었고 '피해'였다는 사실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여 호소하는 일은

얼마나 더 큰 어려움일까, 하는.   


하루에 쓸 수 있는 기운을 대부분 소진하고 나서야

나는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주가 더 흘러,

해당 사건은 '증거 불충분(무혐의)'으로 종결되었다.


나는 비록 그 과정을 지나오며

업무에 쏟아야 하는 에너지와 시간이 더 필요했고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지도 못 했지만

때론 '시도'만으로 의미가 있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좁은 공간에 짐처럼 구겨 넣은 생명들을 보며

눈앞에서 숨을 헐떡이는 생명들을 보며

서로를 물고 죽이려는 환경에 놓인 생명들을 보며


"이게 왜 동물학대인 거죠?"라는 질문이

굳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되겠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 행동이 왜 동물학대인지' 설명하는 것으로 적절한 답을 찾아가는 중일 테니 말이다.


그날의 내 작고 서툰 목소리도

변화를 위한 과정에

한 겹 더해져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트럭에 실려있던 동물들이

이른 새벽 향한곳에서


너무 심한 고통과 잔인한 일들은

겪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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